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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n 13. 2019

영화〈박열〉의 아쉬움

일제강점기 조선인 공산주의자 시리즈를 적으면서 그 당시 공산주의자들을 다룬 책, 영화 등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지. 그 중에 〈박열〉이란 영화가 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동주〉를 만들었고, 〈왕의 남자〉를 제작한 이준익 감독 제작이라고 하니. 나쁘지도 않을 것 같고. (동주를 보진 않았지만) 그래서 유투브에서 박열을 결제해서 봤지.


근데 말야. 한 10분정도 되지 않아서 조금 불편해지는 지점이 생기더라고. 일단 그 당시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그려내는 것에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어.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위해 고증에 엄청 신경 쓴 것을 자신감있게 드러냈지. 첫 장면부터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선언해.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할 지언정, 영화적 장치들, 그리고 인물을 묘사하는 데에는 분명 공백이 있기 마련이잖아. 인물들의 대사와 영화의 빠르기, 그리고 몇몇 사건들이 다소 어리숙하게 느껴지더라고.




'사실'을 다루려고 할때에는 사실을 다루려는 엄중함, 혹은 그 속도도 같이 고려를 하면 좋겠어. 실은 많은 고증 영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태를 따온 영화들이 꽤 많지 않나. 다큐멘터리의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이 영화처럼 장르적인, 혹은 대중적인 느낌보다는 더 진중한 느낌이 강하다 생각하거든. 그래, 이건 장르영화에 오는 아쉬움일 수 있겠지. 그런데 이런 소재를 장르로 다룸으로써 소재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조금 잃어버린 느낌도 들었어. 장르로 잘 소화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박열이란 인물만큼이나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관심도 있었어. 그와 박열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한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유일한 일본인들이었어. 나는 식민지 시대에 박열이란 사람을 존중하고, 옹호하며, 인정했던 두 사람의 존재가 더 충격적이었어. 그래서 차라리 영화를 그 두 사람의 입장에서 박열을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왼쪽.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  |  오른쪽. 후세 다쓰지 (야마노우치 타스쿠 분)



영화 박열의 유치함은 사실 박열이란 인물이 너무 영웅적으로 그려진데서 있다고 봐. 물론 현실의 박열은 비범한 사람이었지만 그 비범함을 감당할, 그리고 그것을 해석할 사람이 필요했었지. 그런데 박열이 영화의 화자가 되면서, 박열 스스로가 자신의 비범함을 관객에서 설득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말았어. 원래 잘난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기 잘남을 떠들면 없어보이는 것처럼 오히려 그런 전략은 그리 상급의 것은 아니잖아.


후미코의 시선으로 박열을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후미코란 인물은 조선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야. 조선이란 땅을 직접 경험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차별도 몸소 보았을 테지. 후미코에서 박열은 무엇이었을까. 후미코에게 박열은 어떤 세상을 보여주는 단서였을까. 나는 그런 상상이 더 재밌었어. 그런 시각으로 영화를 풀어나갔다면, 박열이란 인물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테고. 후미코란 인물에도 공감이 되었을 거야. 그게 참 아쉽더라고.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인물들을 조명하여 영화를 만든 것은 참 좋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해. 윤동주와 박열과 같은 사람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야.  나는 이 시기에 인물들이 가진 매력이 다른 시대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아직 '김구'와 '박헌영', '여운형' 이런 거인들이 남아있는데. ㅋㅋ 그런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는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이준익,〈박열〉, 2017


글.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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