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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n 20. 2019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들

대부분의 일반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 

유튜브나 언론 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10대들을 보면 놀랍다. 미디어에는 주입식 교육 속에서도 스스로의 배움을 찾아내고, 유엔에 가서 한국 내 아동권의 현실을 설명하고, 청소년들에게도 선거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생각하는 단체를 조직해서 목소리를 내고, 춤과 노래가 뛰어나거나, 적극적으로 차별에 반대하며, 다른 교육을 지향해 대안학교를 선택한, 주체성과 적극성을 지닌 10대들이 등장한다. 이런 10대들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아이들에게 감동받고, 이들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곧잘 씁쓸해진다.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타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태도를 훨씬 빨리 익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고, 취미나 특기는 잠자기 혹은 게임이고, 열심히 배운다는 게 뭔지 알지 못하고, 같이 밥 먹고 놀 정도의 친구만 있으며, 친구들과는 부쩍 게임 속에서 주로 만난다. 문장을 만들어 말하기보다는 주로 줄임말이나 단어를 나열해서 소통하고, 정확하고 명확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하는 걸 어려워한다. 자신이 재밌게 놀기보다는 재밌게 노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익숙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타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태도를 훨씬 빨리 익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사회와 맞물리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들이 복잡함보다는 간단함, 긴 호흡의 배움보다는 순간의 흥미를 좇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는 정체하거나 후퇴하고, 그 결과는 그 사람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10대들의 이러한 태도와, 이런 10대 시기를 거친 현 20대들의 모습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법도 한데. 보통의 어른들은 지금 10대들의 태도를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각자도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너 이래 가지고 앞으로 뭐 먹고살려고 그래!!" 이런 맥락 말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는 현재 어떤 목표를 갖고 있을까.


2019년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신년사 중 



몇 년 전부터 눈에 띄는 '창의융합형 미래인재 양성'은 2019년 교육부의 목표 중 하나다. 먼저, 창의융합형 인재란 정해진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라고 한다. 과학기술적 능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두루 갖추는 인재라고 한다. 교사가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교육방법을 추구한다고 한다. 


창의융합형 인재에 대해 깊은 분석을 한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점이 걸린다. 먼저,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으나. 교사가 가르치는 걸 지양한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걸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이 이런 역량을 갖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 두 번째로, 아직도 아이들에게 미래를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세월호 이후 우리는 정확히 알게 되지 않았나. 이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현재가 너무 중요하다고. 


10대들에게 미래란 성공 혹은 실패로 나뉜다. 이미 경쟁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모두가 인재가 되지 못한다는 걸. 모두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모두가 원하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상위'계급에 속하지 못하는데 사회에 나가서도 본인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없으니 그 무엇도 열심히 할 동력이 안 선다. 이런 아이들에게 과학과 인문적 역량을 두루 갖추라고? 미래를 위한 투자기간으로 현재를 설명한다면, 아이들은 현재의 삶에 의미를 두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스스로 학습을 중요시한다는 창의융합형 인재에 대한 글을 찾다 보면, 앞으로 사람들은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기에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AI는 인간과 달리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으니 기획자나 예술가, IT 분야 기술자 등의 직업만이 인간이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제 AI가 소설도 쓴다고 하니 이마저도 긴장해야 할 수도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0/2019022000136.html) 아. 이제 사람과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 로봇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니.



로봇과 인간의 빅매치. 누가 이길 것인가. 



결국 배운다는 건 사람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



그래. 이게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미래라고 치자. 창의융합형 인재가 지향하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걸까. 문자 그대로라면 사람은 스스로 배울 수 있지만, 면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는 오픈소스가 정말 많지만, 결국 배운다는 건 사람이 매개가 되어야 한다. 사람이 매개가 되지 않는 배움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의 횡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법을 배울 때, 내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영역을 알게 될 때,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익힐 때, 사랑에 빠지고 교감을 나눌 때, 우리는 학습을 넘는 배움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스스로 학습을 바라는 건 아니잖아요.



진정 인간이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창의융합형 인재가 되어 나라도 살아남자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뭔지, 지금 이 순간과 오늘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뭔지, 타인과 교감과 영감을 나누고 소통한다는 것이 뭔지, 질문을 하고 사회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게 뭔지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수록 인간다운 게 무엇이고 인간다운 것이 왜 필요한지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경쟁이 아니라는 걸 느리게라도 온 사회가 배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배움을 멈춘 부모,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배움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오늘도 힘겹게 혹은 아무 생각 없이 현실을 살아나가고 있을 10대들에게 필요한 건 유튜브 속의 형이 아니라 눈을 마주치며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금은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서 10대들이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건 '운'에 가깝다. 스스로 배움을 멈춘 부모,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배움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창의융합력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능력이라면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전에 창의융합형 교사 양성이 먼저이지 않을까. 공교육이라면 학생들이 처한 환경과 출발점은 달라도,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달라도, 모두에게 좋은 교사를, 좋은 교육을 만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만 한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현재 진행형인 삶의 의미를, 개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존중하는 태도가 쌓여 만들어지는 사회의 의미를, 막막하기만 한 미래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10대의 누구나가 만날 수 있다면 적어도 이들의 힘겨운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괜찮아지지 않을까.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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