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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un 24. 2019

뉴퍼블리싱의 시대, 논문의 미래는?

고전적이지만 이미 훌륭한 컨텐츠인 논문이 있다.

영상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라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은 쏟아지고, 여전히 글을 탐닉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런데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글이 종이를 넘어 스마트 기기로 알아서 들어오는 이 시대에 왕따처럼 구석에 처박혀 아무도 찾지 않는 한 형태의 글이 있다. 이 녀석은 사실 글을 읽는 사람들조차 그 존재를 잘 모르며, 찾고자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뉴퍼블리싱의 시대에 자신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비호하는 일부 조직과 사람들의 생태계에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이 녀석이 누군지 아시겠는가? 이 녀석의 이름은 논문이다. 



논문이란 무엇인가. 


논문은 저자가 선택한 주제와 질문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해당 연구를 통해 나온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논리에 맞게 풀어낸 글이다. 글의 성격이 그렇다 보니 논문은 일관성 있게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굉장히 지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 저명한 이들의 박사 논문이나 학술지 논문들은 단행본 형태로도 발간되어 이미 사람들이 접하고 있다. 또한, 과학분야의 경우 연구 논문을 통해 중요한 발견을 발표한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논문은 단행본으로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도 어렵다. 한국에서 석사, 박사논문을 낸다고 하면 보통 검은색의 표지를 앞세워 앞으로 다시는 인쇄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 것이 현실이다. 이대로 안녕. 학술지 논문의 경우, 여러 연구자의 글을 엮어 인쇄물의 형태로 발간하지만. 왜 사람들이 찾아 읽지 않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래의 이미지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좌) 라면받침으로 가장 좋다는 논문 판형! (우) 물론, 저는 해당 학술지를 챙겨 읽습니다!


물론 논문은 인터넷에서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모든 논문을 검색해볼 수 있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이라는 사이트가 있지만, 논문을 써보지 않은 이라면 존재조차 잘 모를뿐더러. 석사-박사 논문을 제외한 학술지 논문은 대부분 유료로 제공된다. 정작 학술지에 기고한 저자는 사람들이 논문을 많이 다운로드한다고 해서 그에 따른 수익이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학술지 논문을 무료로 다운로드 하기 위해서는 해당 학술지 홈페이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주변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의 도서관 아이디를 빌려서 다운로드해야 한다. 


결국 논문은 두 사람만 읽는다고 한다. 저자와 지도교수. 

아, 지도교수도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는다고 하니 결국 논문은 한 사람만 읽는 셈이다. 간혹 다른 이들이 논문을 읽기도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거나 참고하기 위해 읽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오늘은 논문의 문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니, 논문을 둘러싼 생태계와 플랫폼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논문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무료로 제공된다면 사람들이 논문을 읽을까?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 논문의 문법과 형식 때문이다. 먼저, 나의 경우 논문을 통해 글쓰기를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딱딱한 문법과 문장을 많이 쓰고 있는 걸 보게 된다.(그러니까 문장 앞에 '먼저,' 를 왜 쓰냐고)  문장뿐 아니라 논리의 극강을 보여주는 논문의 형식도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단 기본적으로 로마자부터 온갖 숫자와 괄호를 활용해 글 간 위계질서를 명확히 보여줘야 하고. (그러니까 문장 앞에 '기본적으로' 는 왜 쓰는데)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하면 논문의 존재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깨알 같은 각주를 무조건 달아줘야 한다. 그리고 이 각주 또한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것이 Chicago, APA, MLA, Vancouver 같은 국제 규격은 기본이며 심지어 각 대학이나 학술지마다 그들만의 형식을 갖고 있어 아주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논문의 형식에 예민하다. 


누가 봐도 재미없는 문장, 복잡해 보이는 내용에 주장을 뒷받침하는 길고 긴 목차들을 겨우 넘어야만 결론에 이를 수 있으니. 뉴퍼블리싱이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시대에 논문은 '뉴'는 커녕 '퍼블리싱'에도 가까이 가기 어렵다. 



읽기 쉽지는 않지만 좋은 논문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기존에 진행된 연구들을 공부하고, 몇 달은 혹은 몇 년을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여, 저자의 주장을 확립하고 논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한다. 대충 썼거나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저자가 아닌 이상, 논문이 아주 나쁘기는 어렵다. 그리고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논문의 주제가 굉장히 다양해졌고, 시의적절한 현실의 이야기를 담은 논문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각 전공별로 시대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살펴보려면 매 학기 쏟아져 나오는 석-박사 논문만 찾아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물론 트렌드와 전혀 상관없는 전공도 있다.) 논문이라는 글의 형태가 갖고 있는 가치와 그 글을 써내는 저자들의 재능과 성실이 합쳐지면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양산되기 마련이(라고 믿어본)다.


한때 엄청 떠돌 던 논문 작성 짤인데, 사실 대부분의 논문 저자들은 자신의 논문이 이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논문의 힘을 믿어본다..!


그래서 내 고민은 이렇다. 


극강의 논리를 보여주는 현재 논문의 형태와 문법이, 정말 저자의 의도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아마도 후자이지 싶다.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계속 이런 형태의 글을 쓰는 것이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이겠으나. 그 바닥을 조금만 떠나서 보면 이들의 노력과 글만큼 사회적인 낭비가 없다. 뉴퍼블리싱의 시대에 많은 이들이 훌륭한 저자와 글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리고 논문 '바닥'에서는 굳이 찾지 않아도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지가 나오는)때가 되면 어김없이 글이 쏟아져 나온다. 저자가 논문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주장과 분석에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쓰는 걸 수도 있지만(변태)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아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흩어져있는 지식들을 모아 정리하고, 새로운 지식과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내가 혹은 세상이 갖고 있는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 일 수 있다. 내가 쓰는 글의 '목적'이 그렇다면 나만 읽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잘 쓴 논문의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숱도 좀 치고, 말투도 조금만 바꾸면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양질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 

그러면 그걸 논문이라고 할 수 있겠냐-라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의 논리를 유지한다면 그것이 결국 논문의 지향과 같을 것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내 연구 결과를 읽는다면. 그리고 사실은 내 글에 어울리는 형식과 문법이 따로 있었다면. 까짓 거 논문이 아닌 다른 형태면 어떠겠는가. 바야흐로 2019년, 뉴퍼블리싱의 시대인데 말이다!






글.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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