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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Oct 04. 2019

나는 우드카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본격적이어야만 하는 취미활동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다가 잠깐 색연필 깎는 시간은 정말 달았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친구들의 색연필을 받아왔고, 이마저도 부족하면 옆 반에서도 받아왔다. 잘 펴지는 공책을 받쳐 놓고 커터칼로 색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용도별로 다르게 깎는 것, 친구들이 취향을 반영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필기용 연필은 뾰족하게, 밑줄 긋는 용은 둥글둥글하게, 채점용은 비교적 뭉툭하게, 미술용 4B연필은 시원시원하게. 색연필에 코팅 되어있는 부분까지 예쁘게 다듬어주면 완성이다. 작은 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나무를 깎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나중에 다른 취미를 갖게 되거든 칼을 써서 나무를 다듬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양쪽을 깎아쓰는 색연필은 깎을 때도 왠지 1+1기분 


올해 8월 경, 사무실과 가까운 나무공방에서 우드카빙 클래스를 진행 한다는 걸 알게 됐다. 1주일에 한 번씩, 총 5번의 수업. 나는 과연 새로운 취미를 가질 수 있을까, 기대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드카빙은 연필을 깎는 것과는 달랐다. 연필은 이미 잘 가공된 나무라면, 우드카빙에 사용되는 나무들은 날 것 그 자체였다. 편백나무부터 메이플까지 단단함의 차이도 컸고, 방향에 따라 결이 달라서 깎는게 쉽지 않았다. 결을 잘 맞춰서 깎는다해도 나뭇가지가 자라는 부분 등은 엇결이로 나기도 해서 쉽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나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사용하는 도구도 달랐다. 


공방에서 빌려주신 도구는 칼, 끌(환끌, 아사끌), 스푼나이프. 이외에도 망치, 다양한 종류의 대패, 줄 등을 이용했다. 우드카빙을 배우며 찾아보니 공방마다 사용하는 도구에 차이가 있기도 하더라. 첫 시간에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특히 애증의 스푼나이프. 끌로 숟가락 속을 기본적으로 파낸 후에 스푼나이프를 이용해서 더 깊게 파고 다듬는 작업을 하는데. 정말 까다로운 도구였다. 그래도 한 달 넘게 다루면서 꽤 익숙해졌지만 내가 사용하면서도 잘 사용하고 있는지조차 분간이 안 가는 어려운 도구들이었다.


가장 오른쪽이 애증의 도구 스푼나이프


우드카빙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도구 관리가 중요하다. 도구가 무뎌지고 날이 잘 서 있지 않으면 나무를 깎을 때 쓸 데 없이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도구를 쓰다가 왜 이렇게 힘이 많이 들지 싶을 때 날을 갈고 사용하면 쉽게 깎인다. 나무를 다루는 건 생각보다 힘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힘이 적게 들어갈지를 계속 생각해야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도구를 써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도구를 잡아야 할지, 자세를 어떻게 취해야할지를 적절히 고려해야 힘을 덜 들이고 나무를 깎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간은 많이 걸리고 쉽게 지쳐버린다. 비단 나무를 깎는 데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무를 깎을 때 나던 편백나무 향이 좋았다.


가장 처음 작업한 숟가락. 엉성하다. 목이 너무 가늘고, 깊이도 애매하다. 우드카빙을 하면서 적당한 숟가락 깊이를 모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세상에 태어나서 거의 가장 처음 만난 도구이자 평생을 사용하는 도구가 숟가락인데. 도무지 '적당한' 숟가락의 깊이를 모르겠다. 숟가락 뿐이 아니다. 젓가락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젓가락 길이는 얼만큼인지, 적당한 젓가락 두께는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어느 정도가 '적당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다양한 기계를 사용하면서, 사용할 줄만 알지 이게 어떻게 작동되는지 나는 평생 모르겠지.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 라고 종종 생각해왔는데 숟가락과 같은 일상의 도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에서 우드카빙은 연필깎기와 큰 차이점이 있다. 연필깎기는 목표가 정확하다. 얼만큼 깎아낼지, 용도에 따라 어떻게 깎아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우드카빙은 감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아마 둥근 막대기를 주면서 적당한 색연필 두께로 깎아보라고 하면 나는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공방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숟가락을 10개 넘게 깎으면 그제서야 사용할만한 숟가락이 나온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해보고 뭐가 잘못됐는지를 깨닫는 과정을 반복했을 때 제대로 된 도구가 나온다. 내가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을 때는 아무 느낌 없었는데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밥 먹을 때마다 숟가락이 다르게 보인다.



대패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배운 공방에서는 대패를 사용해서 젓가락을 깎았다. 나무를 깎을 때 힘을 적게 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대패다. 막연히 대패는 다듬는 도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녀석 깎는 도구였다. 칼로 젓가락을 깎는 법을 가르쳐주는 공방도 있지만, 시크한 우리 공방 선생님은 젓가락은 대패로 깎으면 5분밖에 안 걸린다며 슥슥 밀더니. 정말로 젓가락이 금방 나왔다. 손으로 깎아서 만든 젓가락 한 짝은 완벽하게 동일할 수 없다.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완벽히 똑같이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깎을 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드카빙의 매력이겠지. 신이 나서 대패로 슥슥 깎다보니 젓가락이 너무 얇아져버렸다. 숟가락도 마찬가지였다. 집중해서 깎기만 한다고 좋은게 아니더라. 멈추고. 확인하고. 멈추고. 확인하고. 그 멈추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작업해본 나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호두나무!


우드카빙으로 만든 도구와 공장에서 만든 도구의 차이는 뭘까. 우드카빙도 무조건 손으로만 하는 것 같지만 큰 틀은 기계로 잘라내야 한다. 마무리는 칼로 하더라도 기계의 힘이 필요하다. 결정적인 차이는 기름을 바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나무에 기름을 바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일이 스며드는 시간도 필요하고. 강하게 오랫동안 문질러서 열을 내고 나무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했다. 공장에서 나온 나무 제품들은 반짝거리는데, 내가 만들고 기름을 바른 건 아무리 해도 그렇게까지 반짝이지는 않았다.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공장에서 나오는 나무 숟가락은 거의 비닐을 씌운 느낌(?)이라고 하더라. 이것 참 숟가락 하나 만드는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한 달 동안 많이 만들어봤다!


이번 우드카빙을 통해 만든 결과물들이다. 사실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건 몇 개 안된다. 어렵지만 우드카빙은 아주 즐거웠다. 계속 하고싶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하려고 생각해보니 필요한 기본 물품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개인이 사기에 마땅치 않은 물건들도 있고. 무엇보다 작업하기 좋은 책상과 작업실이 필요하다. 사포질은 절대 집에서 하기에 적합한 작업이 아니다. 선생님은 취미로 함께 모여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곳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여럿이 모이면 공동구매도 할 수 있고, 함께 작업공간을 마련하기도 하니까. 우드카빙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 초반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할 비용 2. 우드카빙하기에 적당하게 잘린 나무 지속적 확보 3. 안정적인 테이블이 있는 작업공간 이 필요한 셈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가 싶기도 하다. 지금의 취미나 다름 없는 글쓰기는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냥 당분간은 연필이나 계속 깎아야 하나 싶기도 한데, 뭔가 영 아쉽다.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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