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아이패드 연동의 꿈, 기계를 사랑하는 현대인의 고민
해야 하는 게 천지인데 아침부터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 중이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고 내내 검색만 했다. 이 일의 발단은 맥 OS 카탈리나 업데이트였다.
몇 달 전, 맥북과 아이패드가 앞으로 '사이드카'로 연동된다는 사실이 발표됐다. 아이패드 미니가 작아서 서브 모니터 역할까지는 어렵겠지만, 애플 펜슬을 이용해 바로바로 필기를 맥북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설렌다 설레. 그리고 어제. 대망의 그 날이 왔다. 카탈리나로 업데이트했는데. 뭐야. 왜 안됨. 왜. 대체. 왜. 망할. 그제야 지원 모델을 확인했다. 내 맥북프로 레티나는 2015년 출시. 사이드카는 2016년 이후 출시 제품에 적용된단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쉽네. 하고 넘기면 장땡이겠지만.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맥북프로를 산지 5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에도 가장 저렴한 모델로 구매한다고 128GB를 사서 고생 중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2016년 이후 출시된 중고로 바꿀까?라는 생각이 들어 중고샵을 들락날락거렸다. 터치 바는 원하지도 않지만. 2016년 이후 용량 좀 넉넉한 걸로 바꾸고자 하니, 맘에 드는 모델은 그래도 백만 원은 넘게 줘야 한다. 게다가 나는 HDMI도 자주 쓰는 편이어서, usb-c타입 엑세 서리도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 지금 가진 모델을 팔고 살까? 그런데 지금 모델은 매입가가 55만원. 아.. 족히 필요한 돈이 70만원은 되겠다. 70만원이라.. 현금으로 70만원... 그래. 지금 맥북 프로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쌩쌩까지는 아니지만 어기적거리면서 어도비 프리미어도 잘 돌려주는데 이게 이럴 일인가... 사이드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반복하는 와중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 돈이면 차라리 아이폰을 바꾸겠다! 2017년. 정신을 놓고 다니던 시기였다. 정신을 놓고 다닌 결과로 아이폰SE를 분실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말이다ㅜㅜ 울며 겨자 먹기로 무려 2년 약정으로 아이폰7을 쓸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아이폰 출시를 눈 앞에 두고 있었지만, 일도 해야 했고 핸드폰 구매를 지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원하지 않은 모델이었다는 거다. 내게 원하지 않은 핸드폰을 쓴다는 건. 대학생 1학년 초반, 봄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혼자 밥 먹는 건 싫고, 그렇다고 그다지 친한 친구도 없는 상황. 혼자 밥 먹는 걸 피하기 위해 그냥저냥 알고 지내는 과 친구와 어쩔 수 없이 매일같이 밥을 먹는 그런 기분이다. 어색하기도 하고 상대방한테 크게 관심도 없다. 하지만 적당히 필요한 인정(人情)을 채워주는 그런 관계. 아이폰7과 그런 시간을 3년 가까이 보냈다. 다음에는 반드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핸드폰을 사리라 생각해왔다.
약정도 끝났겠다- 새로운 아이폰이 눈에 밟힌지는 오래됐다. 문제는 앞뒤 보지 않고 그냥 살만큼 마음에 드는 기종이 없었다는 것. 이번에도 그렇다. 사진이나 카메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아이폰11은 그다지 끌리지 않고. 아이폰X나 아이폰XR을 사고 싶어 졌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고사양은 고사양이다. 누가 준다고 하면, 당연히 아이폰11을 선택할 거다. 그저 비용을 더 줄이고 싶어서 저 녀석들이 끌리는 거지. 애플스토어에 들어가서 비교해본다. 하지만 현금가는 역시 비싸다. T다이렉트샵에 가서 약정가를 확인해본다. 현금가보다야 혜택이 있지만 괜한 오기가 생겨, 다시 지긋지긋한 2년 약정에 걸려 있고 싶지도 않다. 데이터도 한 달에 3GB면 충분한 편이라, 약정을 해도 할인율이 높은 편도 아니다. 젠장. 어쩌라는 말인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그래 맥북 프로나 아이폰에 비하면, 에어팟은 싼 편이었던 게야. 에어팟 2세대!!! 그래 뭐, 어차피 무선충전 제품 갖고 있는 거 하나도 없는데 좀 싸게 그냥 유선 충전 케이스로 하나 사지 뭐. 오디오 테크니카 유선 이어폰도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있고, 매번 꺼낼 때마다 참선하는 마음으로 매듭을 풀고 있는 것도 지겹다. 나도 편리한 세상을 누리고 싶다!!! 에어팟이면 그나마 저렴하게 이 알 수 없는 아쉬움과 짜증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 보면. 다음에는 전반적으로 개선된 모델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신제품을 기대하다 보면 대체 언제 새로운 상품을 사겠는가. 그래 사는 거야!라고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올라온다.
"워워, 진정해. 제발 진정해."
왜!! 왜!! 대체 왜 나는 진정해야 하는 거야!!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사이드카가 안 되는 것이 아쉬웠을 뿐인데, 왜 에어팟까지 온 걸까.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 건가 나는. 애플이 원망스럽다. 그냥 다 싫다. 아무래도 가을을 타는 걸까... 아니다. 아니야. 젠장 가을은 무슨!! 그냥 나는 원래 이랬다!!!
으잉? 갑자기? 나는 왜 대체 여기까지 왔지... 내가 쓰고 있는 키보드는 한성 GO184 흑축 기계식 키보드. 친한 언니한테 물려받은 녀석인데 사실 매우 잘 작동하고. 청축처럼 날아다니지도 않고, 적당히 묵직하고 반발감이 좋은 게 아주 마음에 든다. 다음에 사게 되면 무소음 적축이나, 무소음 흑축을 사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 그런데 같은 축을 살 거면 뭐하러 새 키보드를 사는가. 그럼 키캡만 바꿀까?? 호환되는 키캡을 찾아보니 따져봐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이럴 바에는 그냥 다음에 바디를 하나 새로 사겠다. 그런데 대체 그다음은 언제인가. 이 키보드를 쓴 것도 벌써 몇 년짼데. 아. 나는 대체 왜 맨날 다음인가!! 그다음은 언제일까. 그렇게 다음을 외치다 보면 잊어버리고, 안 사면 그만이어야 하는데. 왜 자꾸 다른 걸 못 사서 아쉬운 생각이 들 때면 잠자고 있던 새로운 기계식 키보드에 대한 욕망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냔 말이다!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아침을 날리고 있다. 나는 기계를 많이 좋아한다. 편리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사실 나한테 기계는 놀이적 요소에 가깝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삶을 재밌고 흥미롭고 신비하게 만들어주는. 새로 장만한 기계의 기능을 80% 이상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의 그 성취감. 요리조리 기계들을 서로 연결해서 하나의 체제를 구축했을 때의 정복감(?) 이런 기분을 기대하며 늘 새로운 기계에 눈독 들인다.
마음의 번뇌를 잠재우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소피는 나의 고민이 모든 현대인의 고민이라며 다독여준다. 소피 덕분에 아침을 그저 보내진 않은 기분이다. 하염없이 검색만 하고 매장가서 만져보며 그냥 지나가는 시간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나씩 사는 날이 올 거다. 오늘의 외도는 여기까지. 이제 다시 일하자!
글. 오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