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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Oct 28. 2019

정시와 수시, 황금비율을 찾아서

줄을 잘 세우는 사회가 아닌 최소한의 줄만 필요한 사회를 꿈꾸며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시정연설 후, 정시 확대가 기정 사실화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5일에도 페이스북에 '교육에서의 공정한 가치 실현'이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렸다. 이대로면 조국 사태의 결말이 검찰개혁이 아니라, 정시 확대로 끝날 판이다.


정시 확대에 대한 우려의 글이 쏟아지고 있으나, 사실 다수는 정시 확대를 환영하는 듯하다. 네이버-다음 할 것 없이 온갖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정시 확대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 외에도 여러 커뮤니티가 있겠지만,  이럴 때는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최선이다. 네이트 판 10대 방에 들어가 보았다. 이들의 댓글을 인용하기로 한다.(https://m.pann.nate.com/talk/reply/view?pann_id=348084976&currMenu=talker&stndDt=20191023&vPage=1&gb=d&order=N&rankingType=total&page=9)



황금비율의 근거는 무엇인가?


댓글에는 정시와 수시의 황금비율에 대한 온갖 주장이 난무하다. 정시 대 수시 비율로, 100:0부터 50:50까지. 그래서 정확한 비율을 제시하는 댓글을 가져와봤다.


정시 100%가 제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성적으로 학생 줄세우기라고 하는데...수능이 돈없는 애들도 위로 올라갈수있는 유일한 방법아니냐??

정시 90% 수시 10%가 가장적당함 왜냐고? 진짜 수시의 취지에 맞고 수시가 반드시 필요한 학생은 10%면 차고넘치거든 나머지는 다 가짜지

몇몇애들 그럼 강남애들만 대학가잖아 ㅠㅠ 우린 절대 못가~~ 이러는데 하,,, 수시 20해야지 80은 너무 복에 겨웠음 어휴 노력안하는 수시무새들을 위해 20은 줄게

정시 70 수시 30이 좋을 것 같아. 정시는 수능 70 내신 30 비율로 하고. 수시 학종은 너무 불투명하고 불공정해

나 지금 고3이라 수시 비율 압도적으로 많은 입시제도 아래에서 대입 준비하고 있는데 진짜 저건 무조건 찬성임 솔직히 수시정시 비율 50:50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정시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것 같아


이 댓글을 보며 역시 별 근거가 없네- 라는 생각보다는 글쓴이들의 마음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정시, 즉 수능은 절대적인 공부의 양에 비례해서 결과가 나온다. 남들 잘 때 잠도 덜 자고, 유튜브도 덜 보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만 하는. 강남 애들이 수능 점수를 높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수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그들의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다른 말로 하면 수시는 비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더 공정하다는 논리다. 여러 기준 복잡하게 잡지 말고 한 가지만 준비해서 명확하게 결과가 드러나는 시험을. 아이들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수능이란 사실 얼마나 간단한가. 점수를 받기 위해 힘을 들이고 그 점수대로 줄을 세우는. 수시같이 모호한 기준보다는, 차라리 내가 1점이 낮아서 대학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쉽다. 학생들은 이걸 '공정함'이라고 부른다.



수시-정시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교사-학생의 갑을관계


댓글을 보면, 수시를 반대하는 이야기에 자꾸 교사가 등장한다. 정시의 비중이 늘면 능력 없는 교사들의 입지가 줄어들 건데, 수시에서는 교사의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교사가 갑질을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


당연히 찬성이지. 애엄마고, 나도 수능시대 사람인데, 주관적인 평가는(내신) 정말 후하게 쳐줘야 최대 30%. 정시 비중 70, 아니 80 되어야 맞다고 본다. 내신?!?! 무슨 내신? 선생 비위맞춰야 대학가는 시기는 끝내야지. 개천에서 용나는게 없어지는것도 내신, 생기부때문인거야.

개좋음 학교 선생님들이 생기부가지고 갑질하는 거 줄어들고 각종 비리 있는 수시보다 클린하게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정시가 훨 낫다고 생각함


나만 해도 정시와 수시가 5:5의 비율인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수능을 보지 않는 과목, 내신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 시간에는 아이들이 기본으로 잔다. 선생님들도 깨우지 않는다. 수능을 보는 과목이라 하더라도 선생님이 실력이 없으면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이어폰을 꽂고 차라리 인강을 듣는다.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에, 실력 없는 교사의 강의를 듣느니, 나한테 도움이 되는 강의를 듣겠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사립학교는 사립학교대로 뒷구멍으로 들어온 실력 없는 교사들 욕, 공립학교는 공립학교대로 자기 계발도 안 하는 실력 없는 공교육 교사들 욕을 그리도 많이 했다. 정시 비율이 늘면 공교육이 무시되는 건 사실이다.


근데 정시 확대되면 고등학교 안가고싶을듯.. 솔직히 선생들 ㅈㄴ무능하고 잘 가르치지도 못하는데 사교육계에는 훨씬 더 똑ㄷ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 널림

그냥 우리 싹다 학교 가지말고 집에서 정시만 몇년간 파서 정시 100으로 대학가자

어느정도로 확대될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솔직히 정시 준비할거면 학교를 왜가? 학교선생님들보다 인강쌤들이 훨씬 잘 가르쳐주고 과외, 학원으로 다 배우는데.. 예전처럼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시대인것도 아니고... 그럴거면 그냥 자퇴하고 2년 빡세게 공부해서 대학가지; 지금도 그런 애들 꽤 있는데 뭐..


수시 혹은 정시 확대에 따라 학생과 교사의 갑을 관계가 계속 달라진다. 여기서 문제는 누가 갑인 것이 차라리 나은가가 아니다. 애초에 교사와 학생이 왜 자꾸 갑을 관계여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게 다 입시 때문이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그다음 기회가 좁아지는 사회이니 입시에 대해 이렇게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서 교사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입시를 돕거나 빠져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차라리 줄을 세워 달라고 말한다.


그동안 수시를 확대해 온 근거는 학생들을 점수에 맞춰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점을 부각해 대학에 지원하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함이었다. 교사들은 환영했다. 학생부 교과전형 외에 학생부 종합 전형도 있어서 시험이 아닌 다른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기도 하고, 체험활동도 늘릴 수 있었다. 교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었지만, 차근차근 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교사가 갑질을 한다 생각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래도 원래 우리가 해야 하는 교육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서 고통을 겪어가는 중이었다. 고통의 끝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 지향하고자 하는 교육을 교사 스스로, 학생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조국 사태 이후 사람들은 차라리 줄을 공정하게 잘 세워달라고 한다.


대학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정시가 맞지. 대학부터가 일렬로 줄 쫙 세워져 있는데 어떻게 인성이니 성실성이니 다양성으로 뽑아... 그게 부당한 거지

정시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부모 입장이라면 자기 자녀들이 공부를 못해서거나 혹은 학생 본인들이라면 지방러인 경우임 서울 경기권에는 내신보다 모고 등급 훨씬 더 잘 나오는 애들 널렸음 그리고 대학 자체가 전국에 있고 전국에서 학생 뽑아 가는 건데 성적 기준이 전국적이어야 한다고 봄

수시가 처음 의도는 좋았지 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강남에서는 기를 쓰고 스카이 가려고 애쓰고 다른 지역 학생들도 대학 수시로 가려고 내신 챙기느라 수행평가 때문에 밤 늦게 자고 수업 듣고 시험 준비하고 수상 준비 하고 이러면서 몸에 병생기는데 내신에 지장갈까봐 쉬거나 그럴 수도없고 차라리 정시가 낫지;;

수시 면접 학종 싹다 없애고 진짜 옛날처럼 수능으로 줄세워야됨. 그리고 과목도 예전처럼 늘려서 문이과 상관없이 사탐과탐 다하고. 과목수만 줄이니까 난이도만 올라가서 엉망진창이됨. 요즘 고등학생들 보면 너무 불쌍하다..

우리땐 수시 ㅈㄴ 싫어했는데.. 수시는 내신으로 가지만 수능은 진짜 머리로 가는거라서 분별이 확실히 되지. 사교육이야 어차피 수시면 수시대로, 정시면 정시대로 판쳐서 쌤쌤임 ^^ 노력하는 애보다 머리좋은애가 공부잘하는게 오히려 맞을수있음

솔직히 정시 인강 열심히 듣고 기출만 계속 풀면 성적 오르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음 서울권 대치동 애들만 유리하다하는데 그건 그냥 핑계임 오히려 유리해지는거 아닌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수시든 정시든 어차피 계급과 자본이 높은 아이들은 대학을 잘 갈 거니까 차라리 내 눈으로 걔가 몇 점을 받아서 대학에 갔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정시가 낫다는데. 우리 반에서 밤낮, 주말 없이 수능 준비하는 애가 체험활동 다니고 뭘 하는지 모르겠으나 어디서 상도 타오고 하는 애보다 대학을 더 잘 가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데. 내신은 암기 위주의 교내 경쟁이라면 정시는 그래도 난이도가 높은 전국구 경쟁이니까 차라리 내신이 정시보다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는 입시 외에는 다른 교육은 없다. 학교가 해야 하는 최선의 일은 공정하게 대학을 보내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정이 필요한 건 입시와 선발이지 교육이 아니다.


공교육은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닌, 학생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따라서 입시에서는 공정함이 필요할지 몰라도. 교육에서 필요한 가치는 오히려 평등에 가깝다. 모두가 일정한 기준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는 평등. 우리는 교육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입시와 채용을 연결 짓기 때문에, 입시가 교육의 전부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자꾸 공정함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와 지향은 무엇일까. 아래는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이다.


교육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국민의 절실한 요구입니다.정부는 그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우리 교육은 지금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교육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특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상실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공정하지 않다는 국민의 냉엄한 평가를 회피하고, 미래로 가는 교육 혁신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공정한 교육제도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지금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교육 개혁 과제입니다.
국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대입제도부터 공정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가치가 충돌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있습니다. 역대 정부는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점수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마다 소질과 적성이 다른 점을 반영하는 다양한 전형으로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국민들이 입시를 공정하게 하는 교육제도를 마련하라고 하면 다른 중요한 가치들은 제쳐놓고 정시를 확대하면 되는 건가. 이런 방향성은 교육을 입시로만 제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 교육이 가야 하는 길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전국구 경쟁의 확대는 아닐 것이다. 10년 간, 수시를 확대하면서 실패한 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수시가 필요하다는 데 그동안 공감을 못 해왔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우리의 교육이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혁해 가는 과정인지, 왜 여전히 고통스럽고, 무얼 보완해야 하는지 설득하지는 못할 망정, 교육을 입시로 제한하여 공정함만 논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나도 절망스럽다.



또 하나의 비율 67.6% vs 32.4%


수시 정시 비율만으로 나라가 들썩들썩한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비율이 있다. 67,6%와 32.4%, 2018년 대학 진학률이다. 구체적인 비율을 찾기 전까지는 하도 대학 진학률이 높다고 하니 80-90%에 달하는 줄 알았지만, 찾아보니 67.6%였다. 아 그러면 32.4%는. 지금의 정시 수시 비율과 아무 상관이 없는,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32.4%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떤 공정함이 논의되고 있는 걸까.


교육을 생각하면 바로 입시가 떠오르는 나라에서. 교육의 평등함은 언제 얘기할 수 있을까. 이 논의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누가 신경이나 쓸까. 결국은 67.6%가 다수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는 1-2점 차이로 상위권 대학을 두고 경쟁하는 소수의 아이들이 기득권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이 제도만 이렇게나 중요한 거다.






1998년에 나온 '열맞춰'를 부르며


내가 좋아하는 저항 곡이 몇 개 있다. 글을 쓰다보니 한 곡이 생각났다. 1998년, 무려 20년 전에 나온,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H.O.T.가 부른, 뜻도 몰랐을 공수래공수거를 외치던 열맞춰. 열맞춰는 정확히 '열 맞춰'라고 써야 할 거다. 그 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케케묵은 권위 명예와 돈과 욕심 많은 것들 바꿔야 해 / 자기 것만 알고 남은 짓밟고 다 내꺼 다 내꺼 / 1등 아니면 다 안된다는 생각 2등부터 고개 들지도 마 / 이제 모든 굴레 벗어나고 싶어 숨막혀 / 무조건 억제하고 다그치고(열 맞춰) 낙오하면 버림받고(열 맞춰) 모든 개성들은 잘라버려(열 맞춰) (아아아아악!!!!) / 모두가 꿈꿔왔던 세상 어느 누구도 지배하게 둘 수 없어 / 인간을 재는 기준과 잣대는 모두 없어져버려 / 공수래 공수거 바람처럼 부질없는 것 / 왜 다들 그렇게 잡지도 못 할 걸 쫓고 있나 / 공수래 공수거 거품처럼 사그러질 것들 / 욕심을 버리고 하늘을 봐 / 그대를 노려보는 눈이 느껴지는가


줄을 세운다는 건 그런 거다. 2등부터는 고개도 들지 말고. 억제하고 다그치고. 개성들은 잘라버리는. 누군가가 누구를 지배하는. 줄을 세우려고 하는 자들, 줄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 모두 우리를 노려보는 하늘의 눈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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