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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Apr 24. 2020

통일교육에 대한 새로운 제안

전제와 목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사실 "통일교육이 뭐야?", "나도 통일교육 받은 적이 있었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통일교육은 학생도 시민도 손톱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는 그런 교육이죠. 하지만 '통일교육'에 관련된 정부기관, 민간기관, 학자, 활동가 사이에서 '통일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통일교육을 통해 학생/시민들이 통일에 우호적인 입장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정부는 통일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떄문에 통일부 산하에 통일교육원을 두어 정부예산도 주고,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공무원/시민/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진행합니다. 정부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통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기관도 많습니다.


하지만 강조에 비해 통일교육은 잘 진행되지 않고 효과도 미비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통일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량의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북한학, 교육학, 행정학 등 분야를 막론합니다. 이분들의 연구 내용을 조금 거칠게 요약하면 아래 세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교육비중이 다른 교육에 비해 너무 낮다. 학교통일교육의 시수를 늘리자.

2. 교육방법이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 체험형・활동형・토론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자.

3. 교육내용이 너무 구식이다. 제대로 된 통일교육은 민주시민교육, 평화교육으로의 방향을 담아야 한다.


교육비중, 교육방법, 교육내용의 개선. 얼핏 보면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는데요. 이 방법들은 통일교육의 목표는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 목표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한 개선방법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조금 더 대담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통일교육의 목표는 문제가 없나요?




통일교육이 필요한가요?


'통일교육지원법' 제2조에 따르면 통일교육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 의식,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평화적 통일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태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매 해 통일교육원에서 발간하는 '통일교육지침서'에서는 "통일교육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국민들에게 올바른 통일의식을 심어주고, 통일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며,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실천 의지와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통일을 대비하는 교육입니다. 통일교육원 홈페이지에서 통일교육의 목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통일교육원 홈페이지 https://www.uniedu.go.kr/uniedu/home/cms/page/objective/main.do?mid=SM00000558


말이 너무 딱딱하네요. 쉽게 설명하자면. 적인지 동포인지 대체 모르겠는 북한과 애매한 관계에 있지만, 북한이 적인 건 사실이니까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면서, 어쨌든 언젠가 북한과 통일은 해야겠으니 그 날을 위해서 민주시민의식과 평화의식을 길러내자! 가 되겠네요. 그런데 저는 이 목표에 관해 크게 두 가지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을 전제하는 교육은 민주시민교육/평화교육과 모순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실 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은 지속적인 시민사회의 요청으로 통일교육에 포함됐습니다. 이 점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니었나 싶긴 합니다. 하지만 민주시민교육은 말 그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역량이란 민주적 가치를 위해 시민 개개인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이를 사회에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평화교육도 정의는 여러가지지만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여러 형태의 폭력에 저항합니다. 그런데 통일교육의 경우 '통일'을 반드시 해야하는 것, 우리에게 이로운 것, 지향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합니다. 만일 어떤 시민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요? 시민에게 통일에 동의하는 것이 훌륭한 민주시민이야- 라고 가르쳐야 하는 걸까요? 한국의 시민들은 이미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선거가 그렇겠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에서 '재난지원금'을 주는 문제를 결정할 때도 시민들의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는 그만큼 시민들의 의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통일 문제에서는 예외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건전한 안보의식과 균형있는 북한관 확립도 모순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북한을 적으로 전제하는 안보관과, 북한을 이웃으로 전제하는 균형있는 북한관은 부딪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중 어디에 무게를 두냐에 따라서 북한을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건전한 안보관을 우선으로 둔다면 "사실 북한은 '적'이긴 한데-" 라고 생각할 것이고, 균형있는 북한관을 우선으로 둔다면 "사실 북한은 우리의 '이웃' 혹은 '동포 '이긴 한데-" 에서 시작합니다. 출발점이 다른 두 가지 시각을 함께 배치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혹은 북한 정부와 북한 인민을 분리시켜서 적과 동포의 기준을 나누어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실천적인 영역에서는 두 가지 관점을 모두 다룰 수 있지만, 상충되는 목표를 함께 배치한 것은 모순적입니다.



통일교육은 전제와 목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분단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분단 이후 3세대, 4세대에게 통일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통일을 할 경우 남북 서로에게 유리할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통일은 헌법에도 제시되어 있기에 향후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국가적 과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않아도 모두가 통일을 원했던 시기에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전에는 통일에 대부분이 찬성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유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통일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이유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통일'에 대한 상상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다른 상상을 하고 있지요.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을 반대할 경우 어떤 남북관계를 희망하는지 생각이 다릅니다.


지금처럼 통일교육이 '통일'을 전제로 교육대상을 설득하는 교육을 한다면 저는 통일교육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통일 문제'에 관해 논의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칭이 통일교육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조금 더 큰 전제가 작동합니다. 시민은 내가 사는 국가가 당면한 과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결정을 취해야만 합니다. 국가의 정치 형태를 결정할만큼 거대한 규모의 문제인 통일 문제에 대해 시민들은 자신의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는 단순히 외교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치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진영 논리로 북한에 대한 입장, 통일에 대한 입장이 나뉘는 것을 봅니다. 정당을 선택하고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남북 관계 문제는 빠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민의 올바른 정치적 판단과 책임있는 선택을 위해서라도 통일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는 점점 더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당사자, 다양한 이슈가 등장합니다. 다양한 입장을 둘러보고, 깊이 생각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좀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 문제는 남북관계 문제로 확장되어야만 합니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북한과의 관계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단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통일을 지향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분단의 반대말은 통일이 아닙니다. 저는 남북을 한 국가로 전제한 상태에서 '분단'이라는 말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 국가가 되지 않아도 분단상태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선택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배제한 선택지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시민들의 선택지를 확장하고 더 다양한 입장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시민들의 선택을 확인했을 때, 시민들이 특정한 방식의 '통일'에 합의한다면, 이 사회는 통일이 되어도 책임감 있는 시민들에 의해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합의하지 않은 채로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려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통일교육은요,


통일교육은 '통일의 형태를 포함한 남북관계 형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갖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자 역할임을 알려주고,
시민 개개인이 미래 남북관계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통일교육은 '통일의 형태를 포함한 남북관계 형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갖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자 역할임을 알려주고, 시민 개개인이 미래 남북관계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명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통일교육이 아닌 다른 명칭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 교육은 통일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로 위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아래와 같은 교육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민주시민교육이든 평화교육이든 교육방식은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1. 통일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와 논란거리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2. 통일 문제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최대한 많이 살펴봐야 합니다.

3. 통일의 여러가지 방식과, 통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 남북관계의 여러 형태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4.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통일교육 현장에서 제가 느껴왔던 건 대략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누가 이런 생각을 알아줄까 싶어 책 한 권에 담아보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이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꽤나 만족해 온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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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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