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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Apr 14. 2020

"책 한 권 팔면 얼마 남아?"

당신의 상상, 어쩌면 그 이상.

책 한 권 팔면 얼마 남아?



책을 출간하고 나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도 출판사는 돈을 못 번다고 하니 다들 걱정 어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긴 한다. 책도 상품이다. 책을 팔아 이익을 남겨야 출판사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출판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같은 정보를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다들 업계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쉬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비밀일 이유가 뭐가 있는가.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노동의 대가를 모든 사람들이 정당하게 받고 있는지, 과연 우리는 정당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책을 만들고 유통을 시작하면서 책의 가격과 그 배후의 사정에 대해 드디어 정확히 알게 됐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고 독자들의 손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업과 사람들을 거치는지. 대략 1만 원 대의 책 한 권의 수익을 대체 몇 명이 나눠갖고 있는지.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이 사 오던 케이크를 떠올려보라. 잔정이 많았던 담임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생일 맞은 아이들의 생일을 한 번에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시곤 했다. 대략 한 반에 35명 학생들이 나눠먹기 위해서는 케이크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잘라서는 안 된다. 더 세밀하게 격자로 잘라야 한다. 이를테면 가로 6번, 세로 4번. 이렇게 자르면 마치 저렴한 뷔페의 디저트 코너에 있는 케이크처럼 아주 작은 크기로 나눌 수 있다.


책 한 권도 딱 그렇다. 책을 한 권 팔면 얼마가 남는지 설명하기 위해, 정가 15,000원의 책 1쇄를 1,000부 찍었다고 가정해보자. (요즘 중대형 출판사도 유명하지 않은 작가 책은 1쇄를 500부 찍기도 한단다. 출판 시장이 그만큼 축소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이상적으로 한 달안에 책을 만들어 한 달 내에 1,000부를 몽땅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이 책에 관련된 사람들은 한 달에 얼마씩 받아갈 수 있을 것인가. 비즈니스의 핵심.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책을 만드는 비용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책에 몇 명의 인력이, 몇 개의 업체가 협업했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물론이고, 한 권의 책에는 표지를 그려 줄 그림 작가, 편집 디자이너, 교정/교열자, 추천사 써 줄 사람, 인쇄소, 제본소, 창고 및 배본사(유통), 서점, 홍보업체가 합세한다. 비교적 기본이라 하는 것만 나열해도 열 군데를 거치게 되는데 이들과 함께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각각 비용이 지출된다. (번역책인 경우에는 저작권 에이전시도 추가된다)



작가(약 10% / 약 150만원)


사실 나는 작가 인세가 10% 밖에 안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정가 15,000원의 책을 만들면 작가는 1,500원을 받는다. 절대 많지 않다. 책을 1,000권 팔아야 작가는 150만원을 받는다.(선인세라는 관행이 있어서 계약금으로 이 비용을 먼저 준다.) 이는 한 달 최저임금도 안 된다. 책 외에 강연이나 기타 수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작가가 어느 정도 유명해져야 하니, 당연히 1,000권 넘게 책을 팔았을 때야 가능한 이야기다. 대체 작가는 저 돈을 받고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는 것일까. 게다가 책을 쓰는 데 걸리는 기한은 몇 달, 길면 몇 년도 걸린다. 그렇게 걸려서 받는 돈은 사실 터무니없어 보인다.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기고가 들어오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작가가 10% 밖에 안 가져가면 출판업계는 작가를 착취하는 구조인 걸까? 그런 건 또 아니다.



표지디자인/삽화(약 7% / 약 100만원)


표지 디자인과 삽화의 경우 책의 성격에 따라 인세 계약을 할 수도 있고 매절 계약을 할 수도 있다. 인세 계약은 글 작가처럼 책 판매량에 비례하여 돈을 주는 방식(이렇게 할 경우 당연히 비율은 글 작가보다 낮다.) 매절 계약은 한 번에 돈을 지급하고 저작권을 출판사가 갖는 방식이다. 삽화나 표지는 보통 매절 계약으로 진행한다. 어쨌든 이 또한 적은 비용은 아니다. 책 표지의 수준과 삽화 여부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



편집자(약 10% / 약 150만원)


편집자는 사실상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원고를 받은 다음에 진행되는 모든 일을 지휘한다. 편집자의 월급도 당연히 책을 판 돈에서 나간다. 중대형 출판사는 그동안 출간한 책이 있으니 지속적으로 판매되는 책으로 돈을 벌어 운영하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책이 아주 많이 팔리지 않는 한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편집자를 별도로 두기 어렵다. 즉, 만일 정가의 10%를 편집자가 가져간다면 한 달에 1,000권을 팔아야 150만원을 줄 수 있는 구조다. 돈 벌기 참 힘들다. 1인 출판사가 정말로 '혼자'하는 것에 만족해서 계속 혼자 운영하는 건 아니다. 나야 적게 벌어도 누구 월급 줄 만큼은 벌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니 혼자서 다 해야지 별 수 있나.



추천사(약 2% / 약 30만원)


이는 일시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지만 전체 책의 비용을 생각했을 때 적지 않다. 추천사를 써주는 사람이 유명할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유명한 사람이 써주는 추천사는 사실 크게 영향력이 없다. 추천사라는게 내 책의 가치를 알아봐 준다는 점에서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 써주는 추천사가 중요한 법. 따라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추천해주지 않는 이상 자기 책은 자기가 추천하는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편집디자인(약 10% / 약 150만원)


내지 편집 디자인의 경우도 책의 비율이 아니라 한 번에 지급된다. 이것 또한 책의 볼륨, 디자이너의 경력 등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다 보니 1인 출판사들은 보통 본인이 편집 디자인까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디자인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보다 '텍스트'를 다룬다는 점에서 일반 시각 디자인과는 다른 정교한 작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훌륭한 편집디자이너가 만든 책은 확실히 가독성이 다르다. 다행히 우리 출판사의 소피는 훌륭한 디자이너다.



교정/교열(약 10% / 약 150만원)


교정/교열도 한 번만 지출된다. 굳이 여기에 또 돈을 써야 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하다. 내용 좋고 그림 좋고 디자인 좋은 책을 만들어놨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오탈자가 많다면 정말 부끄럽다. 사실 교정/교열자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맞춤법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일관성 있게 확인해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차가 분명한 출판사들은 총 세 번 교정/교열을 보고 최종교(이걸 통상 OK교라고 부르는데 물론 최종이 최종이 아닐 때도 많다. 종이에 잉크가 마르기 전까지 수정은 계속된다)까지 확인한다. 그러니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1인 출판사는 사실 이 과정을 정교하게 거치기 어렵기 때문에 좋은 역량을 지닌 지인을 활용하기도 한다. 세상에, 아직 책이 인쇄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용의 50% 썼다.



인쇄소/제본소(약 12% / 약 180만원)


자 이제 책을 찍어보자! 정말 아꼈을 때를 생각해서 12%를 잡았다. 인쇄 비용은 책의 형태, 종이 재질, 제본 방식 등에 따라 역시 천차만별이다. 정말 예쁜 책을 찍고 싶고 후가공까지 하고 싶다면 여기서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일 인쇄사고라도 나면 당연히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쇄소와의 소통은 사실 많이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만 처음 시작한 출판사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인쇄소 혹은 제본소를 골라야 하고, 업계의 관행이나 용어도 있고, 현장의 기사님들도 만나야 하고, 실수는 없는지 꼼꼼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비용은 덤이다.



창고/물류(약 1% / 약 15만원)


1,000권이 넘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창고가 필수다. 사무실에 책을 보관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책은 생각보다 부피나 무게나 엄청나다. 또한 책 창고는 보관뿐 아니라 서점 등 판매처에 배본이나 택배 발송 업무도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독립출판이 이 부분을 잘 모르고 집에서 일일이 하기도 한다. 우리는 늘 무료배송이나 2,500원 배송비에 익숙하지만 택배를 직접 발송해보면 택배비가 절대 싸지 않다. 택배 발송 수량이 일정 수량을 넘을 때 택배사와 계약을 통해서 택배비를 낮출 수 있는데. 작은 출판사는 주문량이 많지 않아 이렇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순전히 비용으로만 따지면 집에서 우체국을 왕복하느니, 저렴한 창고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창고 비용도 보관 부수와 창고 상태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넓다. (여기서는 작은 출판사가 1권의 책을 냈을 경우 예상되는 한 달 창고비와 물류비용을 책정해보았다.)



서점(약 30% / 450만원)


서점 없이 책을 파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서점이 가져가는 비율이 높아도 어쩔 수 없다. 서점에서는 주로 공급률이라는 단어를 쓴다. 책을 몇 %로 서점에 제공할 것인가. 보통 서점은 60%-70% 사이의 공급률을 말한다. 즉 15,000원의 책을 팔면 9,000원-10,500원 사이에서 책을 사 간다. 도매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가격은 도매인데 사가는 물량은 도매가 아니라는 사실! 출판사로부터 한 두권만 가져가더라도 해당 가격에 가져간다. 서점이 출판사와 거래하는 방식은 출판사에게 책을 먼저 산 뒤에 판매하는 매절과, 책을 일단 가져가고 책이 팔린 후에 정산하는 위탁으로 나눌 수 있다. 위탁으로 사간 책들 중에 팔리지 않는 책은 종종 출판사로 돌아오기도 한다...



홍보비(약 4% / 60만원)


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으니 파는 건 쉬웠으면 좋겠는데,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는 않다. 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책이 자연스럽게 팔리지는 않는다. 대중과 관련 업계 대상으로 홍보해야 한다.  홍보비용을 많이 들이는 만큼 책이 많이 팔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출판사는 홍보비용에 들이는 비용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애매하게 홍보해봤자 사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예상이 안 된다. 출판사 인스타로만 홍보해서는 될 일이 아닌 건 알지만 마케팅은 역시 어렵다. 그래도 필요한 곳에 책을 증정하기도 하고 작은 굿즈를 만들 수도 있고. 최소한 이 정도의 홍보비는 지출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잡아 보았다. (요즘 마케팅이 제일 고민..)



운영비(약 4% / 60만원)


운영비는 임대료, 관리비 등 출판사라는 회사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당연히 출판사마다 드는 비용이 다르다. 이보다 더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총계를 맞추기 위해 마이너스되지 않도록! 남은 금액만 측정했다.


매출 15,000.000원. 지출15,000,000원. 수익은?



그래서 얼마가 남는가.


결론은 매출 15,000,000. 지출 15,00,000원, 수익 0원. 아. 이것이 바로 출판사의 현실.


하지만 2쇄를 들어가면 책을 만들기 위해 지출됐던 표지 디자인, 편집디자인, 교정/교열, 추천사로 지출됐던 약 30%는 남는다. 즉 15,000원의 30%인 4,500원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출판사는 이 돈으로 다음 책을 준비해야 한다. 작가와 계약을 하거나 번역 책 판권을 사는 등 재투자를 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수익은 0원이다.

(물론 출판사의 회계는 위와 같은 기준과 계산법으로만 운영되지는 않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방식으로 설명했으니 참고만 바란다!)


결국 케이크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커지지 않는 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조각은 작을 수밖에 없다. 출판계에서 케이크를 키운다는 건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독자를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유명한 사람을 작가로 만들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어마 무시한 기획을 내야 하는데. 역시 어렵다.


그렇다면 책의 가격을 올려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사겠지? 그러면 책의 가격을 다시 낮춰서 독자들이 많이 사도록 유도해야 할까? 그러면 자본이 충분한 서점들만 살아남지 않을까? 그런데 어차피 지금도 그런 구조 아닌가! 이럴 바에야 저렴하게 내놔서 독자층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나은건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최근의 도서정가제의 유효성에 대해 다시 논의가 불붙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출판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아래층에서 출판사를 하는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최순실이 유일하게 안 건드린 게 출판업이래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그만둬욧!


선배가 이렇게 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뇌리에는 저렇게 박혔다. 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 여전히 막막할 때는 선배의 말을 되씹어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오히려 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두려움은 적다. 걸어가다 보면 더 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난 여전히 돈은 안 남아도 책은 남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글. 오힐데

최근 <나는 통일을 땡땡합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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