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여러분! <수리부엉이의 저슷두잇>에서는 연구자의 일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혼자서 아등바등 연구하시느라 힘드셨죠? 수리부엉이는 일하는 방법과 시간관리에 두각을 보이는 부엉이입니다. 수리부엉이의 이야기를 듣다보고 찔리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지기도 할 거예요. 멸종위기에 놓인 부엉이 여러분! 수리부엉이와 함께 연구합시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수리부엉이에게 질문해 주세요! 부엉!
세상만사가 그렇듯, 연구라는 활동을 정말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시작할 때야 어떤 현상에 대한 호기심 혹은 내 스펙이 높아질 것에 대한 기대를 잔뜩 품고 있었기에 미처 몰랐죠. 연구가 이렇게 힘든 일인걸요! 결국 어느 순간 연구란 누군가에게는 직업이 되어버리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아요. 물론 뿌듯한 순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료하죠. 분명히 내가 선택한 일인데 대체 연구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첫째, '글'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글 쓰는 건 배워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연구자가 연구를 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연구자의 결과물, 완결된 형태의 글로 알 수 있습니다. 흔히 '논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반드시 논문의 형태가 아닌 결과물도 많습니다. 형태야 어떻든 연구자의 결과물은 반드시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죠.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스무살 이전까지 형식을 갖춘 글을 써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글은커녕 문장도 제대로 써본 경험도 없죠. 그런데 스무살이 넘으면 갑자기 글을 써내야 합니다. 이마저도 스무살 초반에 시작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죠... 연구 주제와 방법에 대해서는 수업을 통해서나 책으로 배울 수 있지만, 글을 쓰는 법과 문장을 쓰는 법은 어디서부터 배워야할지 막막합니다. 연구 그 자체도 쉽지 않은데 글로 풀어내야 한다니 아무리 여러 번 해도 막막합니다.
둘째, 철저히 혼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연구는 사실상의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공동연구로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맡은 부분에 있어서는 결국 혼자서 해내야만 합니다. '연구 뿐이냐,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냐'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혼자'서 하는 일의 난이도가 높습니다. 내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내가 증명해야 하죠. 심지어 제대로 증명됐는지를 증명하는 것도 혼자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대로 증명된 건지는 알 수가 없어요. 상품을 개발하는 일이라면 시장에 내놓아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텐데, 연구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죠. 그러다보니 내 연구에는 내가 의미 부여를 해야합니다. 조금은 겁도 나고 쓸쓸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내가 대화하는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는 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을 의지하여 이 험난한 과정을 가야 한다니... 꽤나 외롭기도 하죠. 또 있습니다! 누가 내 시간을 관리해주지 않아요. 다른 일처럼 중간에 확인해주는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서 완성본을 만들어내야 학술지에 내든, 책을 내든, 혹은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데, 과연 나 혼자 해서 완성이 되긴 할까요?
셋째, 결과물의 영향력 혹은 효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연구의 효능감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연구의 결과물은 팔리는 상품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연구를 마치고 분명히 결과물을 내어놓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닌 거 같아요... 심지어 동료라고 생각했던 연구자들끼리도 자기 분야가 아닌 이상 서로의 글을 읽지 않아요. 자기 분야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협소하구요. 그러다보니 사실 내수경제도 잘 안 돌아갑니다. 그저 내 경력을 쌓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 거라면 대체 이거 왜 하는 걸까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쓴 글들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연구소에 속한 연구자라면 월급이라도 받을텐데, 독립 연구자들은 내 연구의 효능감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냥 자족하면 되는 걸까요?
넷째, 감성과 이성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그놈의 균형... 균형....
연구는 이성과 합리성이 기본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은(이공계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사회 현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죠. 그런 시각 없이 논리 구조에만 함몰되다 보면 마치 퍼즐과 같은 논리 게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연구의 대상은 변화가 없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에요. 끊임없이 변하죠. 그리고 연구자는 변화가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호흡해야 하고 타인과 교감해야 하고, 감정이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감정에 너무 치우치다보면 논리와 합리성을 잃을 수도 있죠. 감정과 이성. 이 두 가지를 모두 열어두고 균형을 맞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죠! 우리가 '좋은 연구'라고 부르는 것들이 어떤 연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거에요.
연구가 대체 왜 힘든지 정리해보았어요. 연구자는 이렇게 정리하는 게 일이죠. 이런 것마저 정리하다니! 이 글에 공감하신다면 당신은 진정한 부엉이입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여러분 다행으로 여기세요. 모든 부엉이가 이렇게 힘드니까요! 다음 회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구자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올게요! 여러분!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어요! 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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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리부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