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너에 대한 이야기를

베를린이라는 물성을 내 마음에 켜켜이 녹여내고 싶었어.

by 쓰는 사람 지민


말로 닿을 수 없는 기억들

독일, 그리고 베를린. 다녀온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때의 시간은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서 잔잔히 머물러 있다.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음에도 막상 글로 꺼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언어로 그 벅찬 감정을 다 표현할 자신이 없거니와 한번 말로 고정해 버리면 유동하던 기억이 분절되고 박제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건너온 나의 감정과 베를린의 조형물 앞에서 느낀 역사적 시간, 그리고 지금의 내가 마주한 사유들― 서로 다른 시간의 파편들이 3차원의 한 지점에서 교차하며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경계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숨결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섣불리 언어라는 칼을 대어 생명력을 잘라내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려는 순간, 감정은 종종 그 본연의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리곤 하니까.



오랜 시간 언어를 붙잡지 못했던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 기억들은 말로 설명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감각들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Gadamer)는 말한다.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다(Sein, das verstanden werden kann, ist Sprache)."

그에게 언어는 단순히 내면의 생각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세계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형식이자 존재가 머무르는 유일한 지평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경험은 온전히 이해된 상태가 아니, 언어라는 형식을 입을 때 비로소 막연한 감각을 넘어 명징한 ‘사건’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기억의 왜곡이었으나 사실 언어로 호명하지 않는 한 그 기억들은 내 안에서 영원히 미완의 상태로 떠돌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겨울 햇빛에 데워진 사람들의 눈빛,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도시의 온도, 건물 골조에 스민 그날의 감성들은 언어로 다 담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어의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제 그 불완전한 그물을 던져야만 했다.


나는 오래 품어온 기억의 항아리를 이제는 열어 보기로 했다. 기억들은 내 감각 층위 사이사이에 남아 여전히 내 안에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언어로 옮기지 않고는 그 감정들을 진정으로 간직하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그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남은 조각들을 통해 다시 삶의 태도와 존재의 형식을 세우는 일― 그것이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배움이라 믿었다.

구름 밑 루터, 본회퍼의 나라가 보인다. 저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계절의 입구에서

이 여행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어느 겨울, 나는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내몰리듯 떠난 여정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나의 다음 계절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준비할 만큼 충분히 건강하지도 정보를 수집할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았다. 심장은 무겁고 몸은 고단했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아마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독일’이라는 이름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행이 끝나면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교실에 돌아가리라는 막연한 확신도 있었다. 낯선 장소와의 마주침으로 새로운 시선을 준비하고 무너진 마음의 조각들도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비행기 창 아래로 낯선 대지가 펼쳐졌을 때, 나는 안도와 기쁨으로 충만했다.

종교학자 루터와 본회퍼의 나라.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그리고 상처와 회복의 역사를 함께 품은 그 땅. 상처와 회복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그 땅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지금 다른 계절의 입구에 서 있다’는 감응이 피어올랐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에서 중앙역으로 향하는 길, 플랫폼에 홀로 서서 기차를 기다리다 문득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순간도 누군가에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갈까. 아니, 어쩌면 내게도 그렇게 남게 될지 모른다.

베를린에서의 다섯 날 동안, 나는 낯선 도시를 걷고 낯선 이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기록하지 못한 기억은 희미해질 줄 알았지만 감사하게도 그곳의 시간은 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다. 언어로 남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기억의 자리에서.


프랑크푸르트 반호프 창문으로 스며든 겨울 저녁 햇빛에 얼굴을 비벼보다. 베를린 반호프로 이동하는 기차에 몸을 실으며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