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는 방식도 있단다"
베를린에 도착했다.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인 민박을 택했다. 베를린 특유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숙소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한국의 정서가 은은하게 스며 있는 민박 집의 분위기에 나는 긴 이동의 여독과 낯선 도시에 대한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4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베를린.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지만 민박집 사장님은 내가 도착하기까지 안전과 행로를 확인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내가 크리스천이며 특수교사라는 걸 짐작하고 계셨다고 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하고 따뜻했다. 사장님은 파이프 오르간을 전공해 독일로 유학을 왔고 결혼과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베를린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날 밤, 우리는 부엌에 마주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수교사로서 버텨온 시간 동안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 크리스천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손에 쥐고 싶었으나 놓아야 했던 것들,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품고 온 기도 같은 기대까지. 그분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시며 눈빛으로 다정하게 보듬어주었다.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여정 가운데 부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장시간의 이동으로 매우 지쳐 있었지만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왜 여기일까. 나는 왜 이 먼 곳까지 왔을까.’
눈을 감아도 그 생각은 베를린의 밤공기 속에서 오히려 뚜렷해졌다.
그때 문득 존 듀이의 말이 떠올랐다.
듀이는 경험을 단순히 일어난 사건들의 모음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경험의 계속성’을 앞선 경험이 이후의 경험을 가능한다고 설명한다. 경험이 단절되지 않고 성장의 방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것이 ‘교육적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던 이유는 시차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낸 모든 날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장으로 이어지기 위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연결고리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듀이가 말한 ‘상호작용’은 개인의 내적 조건과 외적 환경이 만나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나의 내적 상태와 베를린이라는 환경이 서로 반응하며 이전의 경험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었던 셈이다. 무너진 마음을 안고 베를린에 왔음에도 이 도시의 존재 방식을 마주하며 조용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단순히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이 더 깊은 사유로 확장될 수 있는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아온 것 같았다.
부정과 회한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도시, 그리고 죄의 기억마저도 다시 삶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도시. 어쩌면 내가 베를린 같았기에 여기에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처와 회복이 공존하는 이 도시처럼 나도 내 삶의 모든 흔적을 품은 채 다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도 있단다.’
베를린은 꿈 곁에 서서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