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아닌 동사로 산다는 것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

by 쓰는 사람 지민



빛과 침묵이 흐르는 공간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 건물은 1968년에 완공된 후 20세기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전설이 되었다. 사방의 투명한 유리 외벽과 강철의 짜여진 골자는 독일 특유의 단정함이 돋보였다.

1968년 이후 베를린 장벽의 건립과 붕괴, 그리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감내해야 했던 질곡의 시간들은 이 건물의 유리벽 너머로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보통 역사의 상처는 두꺼운 콘크리트로 덮거나 가리기 마련이지만, 사방으로 막힘없이 트인 유리를 통해 베를린의 풍경과 그 속에 서린 역사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이 유리에 비친 빛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겨울 태양은 유리면을 따라 낮게 흐르며 공간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건물의 묵직한 침묵을 느끼며 나는 단순히 ‘관람객’이 아닌, 이 공간과 호흡하는 ‘수용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맥신 그린(Maxine Greene)이 말한 교육은 아마도 이런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 배움은 설명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자코메티의 <베네치아의 여인>—버팀, 혹은 삶을 향한 기도

전시실을 천천히 걷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책으로만 봤던 이미지를 실제 눈앞에서 보니 그 앙상함은 상상보다 더 처절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깎이고 말라 뼈만 남은 인체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끝내 부서지지 않은 채 서서 마지막 남은 강인함을 드러내는 듯하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취한 최소한의 자세가 생을 향한 간절한 기도처럼 느껴졌다.


그 작품 앞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미적 체험(aesthetic experience)’이란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과 온몸으로 관계 맺으며 의미를 길어 올리는 과정이라고 한 그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감각을 모두 풀어 헤치고 싶어졌다. 어느 것에도 기대지 못하는 몸, 단단히 닫아 두었던 마음, 그럼에도 끝내 어딘가를 향해 있던 내 안의 응시. 호흡과 긴장까지 끌어들여 말없이 조각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버틴다’는 것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무게를 딛고 그 너머를 향하여 몸을 돌리는 치열한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 순간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하는 ‘지극히 사적인 시간’으로 탈바꿈하는 듯했다. 예술은 나를 조용히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베네치아의 여인(Femme de Venise)>



아돌프 루터의 <오목거울 오브제>—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뉜 나를 마주하다

자코메티의 여운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다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반사 벽 앞에 멈춰 섰다. 아돌프 루터의 작품이었다. 거울은 매끈한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오목한 파편마다 내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비치고 있었다. 똑같은 옷차림과 자세, 비슷한 표정이지만 완전히 다른 시선과 각도에서 본 나는 모두가 나였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나였다. 어떤 나는 또렷하게 보였고 또 다른 나는 희미하게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또 몇몇의 모습은 아예 왜곡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쉽게 나뉘고 어긋나며 살아왔는지 떠올랐다. 그 거울 속에 비친 빛을 응시하며 조금씩 스스로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것 같았다.


맥신 그린의 예술교육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고 질문을 허락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작품은 나를 규정하지 않고 다만 여러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있었다. 거울 속에 흩어진 형상들을 보며 나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존재로 규정해 오지 않았나 돌이켜보았다. 명사가 아니라 흔들리며 재구성되는 동사에 가까운 존재로서 ‘나’를 다시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 작품에서 느낀 감정의 단면과 기억의 조각 그리고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을 기록하기 위해 계속하여 셔터를 눌렀다.

아돌프 루터(Adolf Luther, 1912–1990)의 <오목거울 오브제(Hohlspiegelobjekt)>



소년과의 만남—‘만약 내가 너라면’ (As if)의 상상력

내면의 깊은 울림에 잠겨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 운동화를 신은 한 소년이 내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뒷짐을 진 채 단정한 자세로 작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진지한 옆모습에 이끌려 나는 조심스럽게 함께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맥신 그린이 강조한 ‘상상력(imagination)’ 개념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상상력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의 경계를 넘어 “만약 내가 너라면(as if)”이라고 가정해 보는 윤리적 능력이다.

‘만약 내가 저 소년의 눈으로 이 조각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낯선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함께 보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의 지층에 켜켜이 쌓인 인문학적 배경지식과 선입견의 퇴적물을 걷어내고 오직 아이의 감각으로 이 작품을 마주한다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클래식과 현대 예술의 성지인 베를린의 토양에서 자란 이 아이의 눈에 비친 작품의 온도는 나와는 분명 다를 터였다.


작품은 나와 소년 사이를 잇는 투명한 다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고독 속에 서 있었지만 같은 대상을 함께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연결되는 것 같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는 공감의 출발이자 공동체 회복의 시작임을 나는 그 짧고 오묘한 만남을 통해 온몸으로 체감했다.



Teaching Artist

신국립미술관을 나서는 길, 마지막 셔터를 누르며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다짐이라기보다 그날의 예술적 체험으로 얻은 결론에 가까웠다.

자코메티 앞에서 나를 직면하고 루터의 거울 앞에서 고정된 자아를 깨뜨리고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타자와의 연결을 상상한 하루였다. 이 모든 과정은 작품을 분석하는 지적인 공부가 아니라 내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묻는 기회가 되었다. 배움은 그렇게 삶의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곤 한다.

이 경험은 나의 교육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무르기보다 맥신 그린이 말한 ‘교육예술가(teaching artist)’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너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고 있니?”

“만약 네가 이 상황이라면(as if) 어떻게 느꼈을까?”

라고 질문을 건네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학생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사유하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다.


베를린의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 투명한 공간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술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서서히 삶의 태도를 바꾸도록 다독인다.

거울 속에서 흔들리던 조각들이 모여 만든 내 모습은 비록 흔들릴지라고 그 모습 그대로 충분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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