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베를린 악기 박물관(Musikinstrumenten Museum)

by 쓰는 사람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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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기다리던 고즈넉한 오후, 나는 그 곁에 오선지처럼 이어져 있는 악기 박물관을 찾았다. 베를린의 거리는 여전히 낯설고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그 공간은 이방인인 나를 이상할 정도로 따스하게 받아주었다.


단순히 실내의 온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도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음악과 그 선율을 빚어낸 악기들이 머물고 있다는 안도감이 긴장했던 내 마음을 무장해제 시켰으리라. 입구를 지나자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악기들이 오랜 친구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고 와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없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은 감상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적 설명이 걷힌 침묵 속에서 악기들은 그 어떤 해설보다 더 또렷하고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간이 내려앉은 현, 수만 번의 손길이 닿아 닳아버린 건반, 이제는 숨이 멎은 듯 고요한 관악기들에는 제작자의 이데아와 연주가의 인생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전기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숭고함과 위대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시간의 박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견뎌온 실존처럼 느껴졌다. 맥신 그린이 말한 ‘미적 체험’이란 어쩌면 지식으로 대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감각을 열어 대상의 현존(Presence)을 마주하는 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 잊고 있었던,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기쁨’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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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중년의 박물관 매니저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가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전시장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Music education(음악 교육) 전공인가요?”

그의 질문에 나는 한국에서 온 특수교사라고, 그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바흐, 쇼팽, 리스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자신이 지켜온 공간과 사랑해 온 것들에 대한 깊은 자부심, 그리고 그것을 알아본 사람에 대한 따스한 환대가 담겨 있었다. 그 시선 앞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를 아주 오랜만에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타인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사랑 또한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KakaoTalk_20250413_212455531_09.jpg 악기 박물관 1층 로비, 맨 오른쪽에 매니저 님이 서 계신다.


그 따뜻한 여운을 안고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공간 가득 ‘요한 요아힘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의 일대기와 업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18세기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스승이자 플루트 연주자, 그리고 악기 제작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Musiker - Pädagoge - Instrumentenbauer” (음악가 - 교육자 - 제작자)

짧은 문구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였다. 한 사람 인생의 층위에 음악이 이토록 입체적으로 놓일 수 있다니.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종종 ‘지식 전달자’라는 좁은 기능적 역할로 축소되곤 한다. 교과는 삶과 분리되고 가르침은 기술(Techne)로만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크반츠에게 가르침이란 자신이 직접 나무를 깎아 악기의 울림을 만들어 그 악기로 연주하며 느낀 환희를 제자에게 전이시키는 통합적인 행위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의 지식(Techne)과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구분했지만 크반츠에게 이 경계는 무의미하게 허물어져 있었다. 그는 교육과정과 교수 자료를 제작하는 동시에 스스로 연구하며 가르치는 자였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육과정(Curriculum)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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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반츠와 프리드리히 대왕

상수시 궁전에서 제자들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의 교실을 돌아보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삶의 총체적인 기쁨을 보여주는 ‘통합된 존재’였을까, 아니면 교과서의 파편화된 지식만을 건네는 건조한 전달자였을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의 삶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300년 전의 음악가 요한 요아힘 크반츠를 향한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크반츠가 보여준 삶은 윌리엄 파이너(William Pinar)가 그토록 강조했던 ‘교육과정 재개념주의’의 살아있는 표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파이너는 교육과정(Curriculum)의 어원을 라틴어 ‘쿠레레(Currere)’에서 찾으며 그것을 고정된 트랙(명사)이 아닌 ‘트랙을 달리는 생생한 체험의 과정(동사)’으로 재해석했다. 교육과정이란 외부에서 주어진 지식의 묶음이 아니라 오히려 가르치는 이가 자신의 생애 속 체험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재구성하여 ‘살아있는 텍스트’로 전환해 내는 실존적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크반츠는 그 존재만으로 하나의 거대한 교육과정이었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었고 그의 가르침은 악보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삶 속에 녹아든 예술적 성취와 고뇌, 그리고 제자와 나누었던 교감의 총체가 교사 크반츠가 설계하고 실천한 교육과정의 실체였다.



나에게 ‘교육과정’은 더 이상 교무실 책장 한구석에 꽂힌 매뉴얼이나 한 시대의 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은 ‘교사의 인생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것’이어야 하며 제작자인 나의 삶과 함께 호흡하고 익어가는 이야기여야 한다.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고, 파이너가 제안한 ‘자서전적 글쓰기’를 통해 나의 내면을 성찰하는 작업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게 실존적 감각을 곤두세우고 나만의 교육적 내러티브를 형성해 나갈 때, 비로소 교사의 삶은 생명력 있는 교육과정으로 재탄생한다. 이 창조의 과정에서는 성공뿐만 아니라 뼈아픈 실패와 시행착오도 일어나겠지만 그 마저도 배움의 재료가 되어 교육과정 안으로 온전히 포섭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격적 교육과정’이 아닐까.



베를린의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박물관을 나서는 내 가슴속에는 오래된 현들이 다시 팽팽하게 조율된 듯한 설렘을 느꼈다. 단순히 고악기를 관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일상에 파묻혀 희미해져 가던 내 안의 울림, 가르치는 자로서의 온전함을 확인하러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안에서 겨자씨만 했던 작은 통찰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환경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그리고 예술 교육…. 앞으로 내가 연구하고 펼쳐나갈 ‘자율 교육과정’들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과 사유가 짙게 밴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 베를린 악기 박물관에서의 침묵과 사유는 교사의 삶이 곧 교육과정임을 자각한 가장 뜨거운 시작점으로 기록될 것이라.




프리드리히 대왕은 산수시 궁전에서 플룻 연주 공연을 하곤 했다고 한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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