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다시 세우는 것은 뜨거운 파동이다

베를린 필 하모닉

by 쓰는 사람 지민




독일 여행의 첫날 저녁, 나는 베를린 필하모니 앞 벤치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인해 몸은 이미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저녁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의식은 안개 속을 걷는 듯 뿌옇게 흐려졌다. 고갈된 체력 탓에 모든 감각이 무뎌질 법도 했지만 오히려 설렘과 긴장이 내 안의 현을 팽팽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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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 하모니 외관


문득 내가 앉아 있는 이 땅의 기록을 떠올렸다. 화려한 노란빛 외관을 자랑하는 이 공연장 부지는 과거 나치의 장애인 학살 계획인 ‘T4 작전’의 본부가 있던 비극의 현장이다. 가장 잔인한 역사가 쓰였던 땅 위에 인류가 빚어낸 가장 숭고한 화음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몽롱한 의식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흐릿한 정신을 다잡아 깨우는 대신 의식과 이성이 걷혀진 자리에 오직 ‘지각하는 나’만을 남겨두기로 했다. 이성이 무방비한 상태에서 나의 존재가 음악의 파동에 어떻게 공명할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풍경은 흥미로웠다. 한국 클래식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뜩 힘을 주어 차려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주름진 목 위로 낡았지만 선명한 빨간 머플러를 무심하게 툭 걸친 할아버지, 꾸밈없어도 각자의 세월이 멋으로 배어든 관객들이 마치 동네 산책을 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홀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예술은 특별한 날 꺼내 입는 화려한 외출복이 아니라, 매일 마시는 차나 커피처럼 삶 속에 녹아 있는 일상이었다.

예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뒤섞인 풍경을 보며 나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삶의 양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무엇이 아름다운지 알고 예술을 삶의 일부로 환대할 줄 아는 사람들의 세련된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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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공연장으로 향하는 베를린 시민들 / (우) 공연장 로비에서 저녁 요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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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앞까지 나와 환호하고 연주자들을 격려하는 모습 연주자들이 퇴장할 때까지 박수는 이어졌다.



*플레이 리스트*

-드뷔시 Sonata for Cello and Piano in D minor

-프로코피예프 Sonata for Cello and Piano in C major, Op. 119

-라흐마니노프 Sonata for Cello and Piano in G minor, Op. 19

-(Encore) 라흐마니노프 Vocalise


이윽고 첼로와 피아노의 <드뷔시 첼로 소나타 D단조> 연주가 시작되었다. 피아노가 낮은 저음을 쿵 하고 내려놓자 첼로가 그 깊은 무게를 묵직하게 길어 올리며 공기를 채워나갔다. 평소 너무나 사랑하는 프로코피예프와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베를린 필하모니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순간, 나는 그것이 단순히 귀에 머무는 소리가 아님을 직감했다. 형체 없는 파동이 내 피부를 투과해 들어와 뼈와 근육, 심지어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박동까지 바꿔놓는 거대한 공명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음의 진동이 세포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내 존재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다시 빚어내는 듯한 전율 속에서 나는 내가 알던 이전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물성을 가진 존재로 다시 빚어지고 있었다.


메를로-퐁티(M. Merleau-Ponty)가 말한 ‘살아있는 주체(Corps Propre)’로 ‘신체가 세계와 가장 뜨겁게 맞부딪칠 때 일어나는’ 현상학적 사건이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내가 느낀 '기절할 것 같은 환희'는 이성이 치밀하게 계산해낸 감동이 아니었다. 소리의 진동이 나의 ‘살(Chair)’과 뒤섞이며 일어난 순수한 ‘화학적 작용’ 그 자체였다.

이성이 깊이 잠든 사이 첼로의 낮은 울림은 어느새 내 심장의 고동과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거대한 음의 심해 속에 기꺼이 용해되어 들어갔다. 지성으로는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심연 속에서 예술은 내 영혼의 결을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다시 빚어내고 있었다. 그날의 연주는 내가 알던 나를 해체하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만들어냈다.


여행 기록을 정리하다 우연히 연주자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깊고 예민한 울림으로 온 세계를 매료시킨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흐으' 하고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연주자가 누구인지 미처 몰랐을 때조차 그 밤의 연주는 이미 완전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종종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듣던 그 밤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 안겨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이따금 떠올리곤한다.

'배움 또한 이 음악처럼 누군가의 몸에 파동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영혼에 도달하는 지식은 차가운 텍스트가 아닌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뜨거운 파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베를린의 그 밤은 나에게 지극한 선물인 동시에 교사로서 평생 풀어가야 할 가장 아름답고도 근원적인 숙제를 던져준 셈이다.


인류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잠든 땅 위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차림의 사람들 틈에 섞여 가장 비일상적인 전율을 목격했던 그 날의 선물에 이제야 비로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날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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