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상흔도 단단한 지층이 되기에

브란덴부르크 문과 운터덴린덴

by 쓰는 사람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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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층 위에서

지하철역의 어스름한 계단을 오르자 베를린의 머금은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왔다. 입가에 흩어지는 하얀 입김을 가로지르며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안개 사이로 브란덴부르크 문이 위용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임을 알 수 있었다.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의 거리 사이로 스미는 겨울 볕을 따라 천천히 발을 뗐다. 수천 년 동안 게르만 민족의 거친 말발굽과 프로이센 마차의 쇠바퀴가 다져놓은 시간의 층계 위에 나의 가냘픈 존재가 살포시 얹히는 순간, 발바닥을 타고 흐르는 묘한 전율에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길바닥을 채운 투박한 돌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틈새마다 박힌 기억과 회한, 비탄의 조각들이 나를 장엄히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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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의 무게

문 위에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탄 승리의 여신인 ‘콰드리가(Quadriga)’를 바라보았다. 한때 나폴레옹이 승리의 전유물로 파리로 가져갔으나 프로이센의 파리 점령 후 되찾아온 파란만장한 상징물이다. 히틀러 치하에서는 나치의 광기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냉전기에는 동서독을 가르는 철조망과 총구가 마주하던 경계선이기도 했다.


브란덴 부르크 문을 바라보며 나는 ‘기념비(Monument)’라는 단어가 가진 물리적인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단순한 석조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야망과 좌절, 그리고 회복의 군들이 굳어 하나의 형상이 된 ‘역사의 결정체’였다. 무너지고 점령당하고 분열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이어지는 수천 년의 사건들이 이 도시 위에 지층처럼 차곡차곡 겹쳐져 있었다. 베를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간의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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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Regressive): 역사 속 나의 좌표

윌리엄 파이너는 교육과정의 자서전적 방법론인 '쿠레레(Currere)'의 첫 단계로 역행(Regressive)을 제시한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둘러싼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는 과정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느낀 아찔함은 바로 ‘역행’의 순간이었다. 교사인 나는 아이들에게 역사와 기원을 가르치지만 정작 나 자신이 이 거대한 지층 위에 놓인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은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거리에 놓인 돌들은 ‘우리의 삶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앞서간 이들이 쌓아 올린 고통과 희망의 지층 위에 간신히 얹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역사 앞에서 내가 쥐고 있던 지식의 편린들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겸허히 인정하게 되었다.



종합(Synthetic): 보이지 않는 층계까지 끌어안기

과거의 부름에 응답하는 '역행'은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는 종합(Synthetic)의 단계로 이어진다. 수 세기의 비탄과 야망이 서린 이곳의 지층 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교육적 고뇌가 얹어지며 나는 비로소 교육의 참된 본질을 다시 묻게 되었다.


교육은 단순히 박제된 과거를 전달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학습자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발견하고 그 지층의 무게를 자신의 삶으로 기꺼이 수용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교과서의 활자 너머로 자신이 딛고 선 이 땅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망이 켜켜이 쌓여 있는지를 목격할 때, 역사는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특히 내가 만나는 자신의 세계를 다소 느린 속도로 일구어가는 아이들에게 이 '지층'의 의미는 더욱 절실하다. 베를린의 돌길이 증명하듯, 역사는 승리의 기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분열되었던 상흔들까지도 껴안으며 두터워졌다. 세상의 빠른 속도와 효율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종종 경계 밖으로 밀려나곤 하는 아이들에게, 이 거대한 지층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 역시 결코 생략될 수 없는 소중한 한 층임을 깨달게 되길 바란다.


만약 아이들이 자신의 발밑에 놓인 지층의 무게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현재라는 찰나에 표류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수용한 자만이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 세기 전 누군가가 흘린 눈물이 지금 내가 딛고 선 돌을 적셨음을 깨닫게 된다면 아이들은 연민을 넘어선 '역사적 책임감'을 배울 것이다. 타인의 상흔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 아찔한 공감이야말로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가장 신중하고도 책임감 있는 첫발을 내딛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단단한 지층이 되어줄 수 있다는 의지는 내가 특수교육 현장에서 피워내고 싶은 가장 뜨거운 '종합'의 순간이다.



다시, 길 위에서

베를린은 나에게 거대한 시간의 층계를 내어주며, 과거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한 선율도 선명해질 수 있다고 속삭여주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뒤로하고 걷는 나의 발걸음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한 힘이 실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지층 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시간을 상상한다. 길가의 보리수나무들이 봄을 기다리며 묵묵히 겨울을 견디듯 나 또한 이 깊은 역사적 토양 위에 나만의 교육적 내러티브를 뿌리내리고 싶다. 아찔했던 시간의 두께는 이제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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