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어떻게 악이 되는가

공포의 지형학(Topographie des Terrors)

by 쓰는 사람 지민



기념물의 침묵에서 벗어나 나는 ‘공포의 지형학(Topography of Terrors)’으로 향했다. 공포의 역사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지형으로 기록해 놓은 공간이다. 과거 SS와 게슈타포 본부가 자리했던 곳에 세워진 전시관은 단정하고 고요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기록과 사진들이 폭력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날짜, 명령문, 그리고 서명들이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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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그리고 회색지대(Gray Zone)

기억에 오래 남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나치 군인들이 유대인의 수염을 깎으며 조롱하는 장면이다. 잔혹한 폭력이 유희처럼 자행되었던 모습을 보며 나는 몸서리쳤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이웃이자 동료였던 사람들을 철저히 배신했다.


나는 그 사진 앞에서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재판정에서 보았던 아이히만을 떠올렸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했다. 거대한 악은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나치 전범들은 무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어진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려 노력했던 성실한 관료들이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사유(Thinking)’가 없었다. 명령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질문하지 않는 ‘성실한 무사유’가 수백만의 죽음을 낳은 것이다.


역사가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음을 본다. 우리는 ‘피해자는 무조건 선하고 가해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 공식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곤 한다. 하지만 진실은 늘 불편하고 복잡한 ‘회색지대’ 속에 있다.

나치가 지배하던 광기의 시대에도 목숨을 걸고 저항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일인 본회퍼 목사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같은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살기 위해 혹은 동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치의 행정 절차에 협조했던 유대인 지도자들(Judenrat)도 있었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사회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우리 편’을 감싸기 위해 진실을 덮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악 또는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무서운 ‘자유의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피해자라는 위치가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가해자의 집단에 속해 있다 해서 양심을 버린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그녀는 고통스럽게 증언했다.

KakaoTalk_20250521_220348161_18.jpg 유대인의 수염을 강제로 깎으며 조롱하는 나치 경찰의 모습
KakaoTalk_20250521_220348161_14.jpg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특수교사로서의 서늘한 질문: 피해자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나의 교실을 떠올린다.

나는 특수교사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 이름 앞에 붙은 ‘특수’라는 두 글자를 떼어내고, 오직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사’의 이름으로 자문해 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교실에는 배움의 속도가 더디거나 장애로 인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세상은, 때로는 우리 교사들조차 그 아이들의 ‘어려움’을 핑계 삼아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리곤 한다. 아이가 힘겨워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혹은 이것이 효율적이니까 그런 이유들로 고민과 사유의 과정을 거세한 채, 잘 다듬어진 ‘완제품으로서의 사고’만을 정답이라며 손에 쥐여주지는 않았는가.


나는 내 학생들이 영원한 ‘피해자’나 ‘약자’의 정체성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약하니까, 나는 장애가 있으니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보호받기만 하면 돼.”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의 존엄을 해친다. 사유하지 않는 약자는 영원히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맡겨지는 객체로 남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특수교육의 심장이 ‘기능’이 아닌 ‘사유’에 있다고 믿는다. 비록 배움이 느리고 교사가 몇 배는 더 긴 시간을 인내해야 할지라도, 나는 그들에게 피해자가 아닌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함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질문하고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사유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편견과 맞닥뜨릴 일이 더 많은 아이들이기에 그들의 수준에서 더 집요하게 “왜?”라고 묻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을 세상의 ‘혐오’와 ‘고립’으로부터 지켜줄 가장 단단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침묵이라는 가장 야비한 동조

그리고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학교라는 조직 내의 알력 다툼 속에서 부당하게 고립되었을 때, 대다수의 동료는 침묵했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평소엔 친절하고 상냥했던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니까”, “친하게 지내면 나까지 불이익을 받을까 봐”라는 이유로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때 악은 거창한 뿔 달린 괴물의 형상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과 ‘외면’ 속에 기생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야비한 동조였다.

그것은 1940년대의 베를린이나, 2020년대의 대한민국 교무실이나 다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거대한 독재자가 아니라 내 옆자리에 있는 동료, 그리고 나 자신이 언제든 ‘생각 없는 구경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그때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해준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다 보고 있었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깨어있는 한 사람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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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자를 기르기 위하여

보내지 못한 잔상들을 모퉁이에 가만히 세워놓고 전시관에서 나오자 바로 옆에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이어져 있었다. 철조망과 총탄 자국이 자욱한 회색 콘크리트 벽이 맥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독일인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침묵하지 않기 위해 그때의 고통을 여전히 그 땅 위에 두었다.


‘학살된 유럽인을 위한 기념물’부터 ‘공포의 지형학’까지 나는 말을 할 자격도, 해석할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애도의 침묵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방관의 침묵이 아니었다. 일상 속 평범해 보이는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하고 부당함 앞에서는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서슬퍼런 다짐의 일환이었다.


진정한 교육이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며 부당한 흐름 앞에서 “잠깐, 이건 옳지 않아”라고 멈춰 설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고, 전시관의 차가운 기록들이 나에게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너희는 약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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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1. 백종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반비, 2018

2. 앤 C. 헬러,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역사비평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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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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