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울다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 Berlin)

by 쓰는 사람 지민


이념의 경계에서

공포의 지형학을 나와 유대인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도시의 골목을 따라 걷던 중 체크포인트 찰리를 지났다.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나는 문득 보이지 않는 틈을 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이념이라는 얇은 막이 얼마나 많은 삶을 단절시켰던가. 한때 동서독을 가로질렀던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마치 응축된 시간의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체크포인트 찰리: 동서독으로 향하는 관문소로 동독에서 바라볼 때 서독에서 바라볼 때 각각 미군과 소련군의 사진을 볼 수있다.



텍스트에서 실재로: 관념이 깨지다

내가 베를린에 온 진짜 이유는 어쩌면 유대인 박물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유대인’은 역사적 실존이라기보다 막연한 신앙의 언어였다. 구약 성경이라는 텍스트 안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 수없이 불순종했지만 끝내 버림받지 않은 ‘이스라엘’. 나는 그들을 역사 속 현존하는 민족이 아니라 구속사(救贖史) 속의 신학적 상징으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조차 내 마음속 그들은 다분히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박해와 비탄의 기록 앞에서 내가 알던 ‘성경 속 이스라엘’은 낱낱이 부서져버렸다. 유리관 너머의 낡은 사진과 유품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찢기고 짓밟힌 ‘사람’이었음을 절규하듯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을 향한 막연한 친근함은 날 선 고통의 물성(物性)으로 나를 찔러왔다. 머릿속 관념이 눈앞의 현실과 부딪히고 신학이 거친 역사가 되어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극심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말씀, 영적인 실체가 되다

박물관에는 시온주의(Zionism)와 반시온주의, 즉 잃어버린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의 열망과 그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세력 간의 피 튀기는 역사가 팽팽한 현처럼 놓여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자료를 찾고 공부를 더해가자 성경 말씀이 비로소 살과 뼈를 입은 실체로 다가왔다.

창세기 12장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하신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유대인 역사의 영적 기원이 되어 수천 년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했던 예수님의 예언처럼, 박물관을 채운 비극의 기록들은 나라를 잃고 흩어진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의 고통이 예언된 말씀의 성취임을 처참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던 그 텍스트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임을 목격했다. 수천 년 전의 하나님의 언약이 1940년의 베를린과 2024년의 나를 관통하여 말씀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영적인 실재가 된 것이다. 그 거대한 섭리 앞에서 나는 전율했다.



공간으로 울다

전시관에는 기도 속에서 마음에 품었던 이들이 피와 수치와 절망 속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처절한 시선 앞에서 어떤 복잡한 말이나 사유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박물관 건축가가 의도한 감정의 서사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는 이 건물을 세 개의 축(Axis)으로 설계했다. 독일을 떠나야 했던 ‘망명의 축’, 죽음으로 끝나는 ‘홀로코스트의 축’, 그리고 그럼에도 역사는 이어진다는 ‘연속성의 축’이다.


‘망명의 정원(Garden of Exile)’은 49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바닥은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어 발을 들이자마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평지를 걷는 것에 익숙한 몸이 균형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망명자들의 불안이 뱃멀미처럼 느껴졌다. 기둥 꼭대기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 심겨 있었으나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어 내 손에는 결코 닿지 않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과 같으리라.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간 ‘홀로코스트 탑(Holocaust Tower)’은 감옥이라기보다 거대한 무덤에 가까웠다. 난방도 냉방도 없이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24미터 높이의 차가운 콘크리트 사이로 ‘쾅’ 하고 철문이 닫히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삼켰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저 높은 천장 꼭대기 아주 좁은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한 줄기뿐이었다. 잡을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그 아득한 빛 아래서 나는 서서히 얼어붙는 공포와 절대적인 고립감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무엇보다 나를 압도한 것은 건물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거대한 빈 공간, '보이드(Void)’였다. 리베스킨트는 건물의 심장을 도려내듯 공간을 비워내 채워질 수 없는 부재와 상실을 대변했다.

그리고 좁고 높은 콘크리트 벽 사이, 깊은 골짜기 같은 저 바닥에는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수천 개의 무쇠 얼굴들이 강물처럼 깔려 있었다. 꼭 들어가보고 싶은 공간이었으나 행사 준비로 인해 직접 밟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 위를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히는 차가운 금속음이 마치 희생자들의 비명처럼 저 높은 텅 빈 공간에서 공명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공간을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고통 자체를 살아 있는 공간으로 형상화한 곳이었다. 살고자 한 자의 간절한 기도이자 죄를 짊어진 자의 회개 기도였다.



예술적 깨어있음

나는 거대한 모순 앞에서 계속해서 질문했다. 괴테와 바흐의 나라이자 예술과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이 어떻게 타인을 그토록 잔혹하게 해할 수 있었을까?

문학비평가 조지 스타이너(George Steiner)는 그의 저서 <언어와 침묵(Language and Silence)>에서 끔찍한 역설을 지적했다. 나치 장교들은 밤에는 슈베르트와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연주를 자랑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역시 제국의 선전 도구였다. 고상한 예술적 취향이 결코 도덕적 행동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잔혹한 증거였다.


맥신 그린(Maxine Greene)은 저서 <상상력의 해방>에서 이 예시를 인용하며, 이를 ‘상상력의 실패(Failure of Imagination)’라고 명명했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교육학적으로 가져와 홀로코스트는 “도덕적 상상력이 결여된 상태”, 즉 타자의 고통에 대해 마취된 상태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설했다.

그렇기에 그린은 예술이 우리를 구원하려면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마비된 의식을 깨우는 ‘깨어있음(Wide-awakeness)’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리베스킨트의 유대인 박물관은 바로 그 지점을 제시한다. 베어나간 벽과 기울어진 바닥이 주는 불편함은 우리의 잠든 도덕적 상상력을 날카롭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자존을 묻다

“우리는 우월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민족이었다.”

전시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고백이지만 그 문장을 박물관에 담아둔 것은 독일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를 미화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새겨 남겨두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독일인들의 단단한 '자존'을 느꼈다. 공격을 피하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처절한 회개를 통해 자기 인식이 복원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 앞에서 무너지다

유대인의 역사를 영적인 맥락에서 보게 되자 비로소 나의 삶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내 인생의 고난들을 그저 “힘들었다,” “아팠다.”라는 감정의 언어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의 고통이 말씀의 성취 과정이었듯 내 삶의 굴곡 또한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영적인 맥락 안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나를 정의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내 안에도 '택함받은 자'라는 은밀한 오만과 배타적인 선민의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납작 엎드려 기도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유한한 피조물로 다시 빚어지고 있었다.

전시장 틈으로 쏟아지던 빛은 아름답거나 찬란하지 않았다. 어떤 감상도 허락되지 않고 잔인할 만큼 투명했다. 그 투명함 앞에서 나의 신앙은 비로소 위선을 벗고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진정한 회개는 슬픈 감정을 느끼거나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진리 앞에서 핑계를 대던 입을 다물고 시퍼렇게 살아있던 자아를 완전히 멈추는 것이었다.


베를린은 역사의 어두운 밑바닥을 지우지 않은 채 그 위에 고요히 회개의 빛을 비추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정직한 빛 아래서 나의 견고했던 자아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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