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 뮤지엄
케테 콜비츠.
미술사 책 귀퉁이에서 스치듯 보았던 이름이었을 뿐 그녀에 대해 깊이 아는 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베를린의 낯선 미술관에 발을 들인 순간, 마치 내 영혼이 마침내 당도해야 했던 자리처럼 강렬한 무언가가 나를 잡아끌었다. 이성은 해제되고 오직 직관만이 이끄는 곳. 이상할 만큼 낯익은 그 공간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공간을 채운 것은 단순한 정적이나 애도가 아니었다. 아마도 한 인간의 생애가 통째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앞두고 느끼는 팽팽한 긴장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액자나 청동 조각 따위의 물리적 형태에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누군가의 인생. 그 밖으로 흘러넘치는 비탄과 울분 앞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이 처절한 흔적들을 그저 '예술품'이라 부르며 '감상'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하게 소비해도 되는 것일까.
전쟁, ‘나와 너’의 세계가 전멸하는 곳
“댁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1914년 날아든 한 줄의 통지문은 어머니 케테 콜비츠의 세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아들 페터가 살아있던 시절, 그녀의 드로잉 속 아이들은 부드러운 곡선과 따스한 명암 속에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은 그녀의 손끝에서 다정한 곡선을 영원히 지워버렸다.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칼을 쥐었다. 나무를 파내고 돌을 쪼아 만든 판화 연작 <전쟁>과 <어머니들>에는 더 이상 온화한 모성이 없다. 그곳엔 칠흑 같은 어둠과 거칠고 투박한 직선들이 가득하다. 판화에 새겨진 메마른 선들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사람의 삼켜버린 통곡 같아서 바라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특히 조각상 <어머니들의 탑>은 숨을 멈추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빈틈없이 몸을 밀착해 만든 둥근 탑이었다. 그 품 안에 아이들을 숨긴 어머니들은 살과 뼈로 난공불락의 성채를 쌓아올린 듯 했다. 밖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내 아이를 데려가려거든, 나를 먼저 밟고 가라"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비탄이 고여 있었다.
왜 그토록 처절했을까.
전쟁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말한 ‘나와 너(I-Thou)’의 관계를 철저히 지워버리는 비극이다. 국가와 이념이라는 거대한 명분 앞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귀한 사람(Thou)은 그저 대체 가능한 병력이나 숫자, 즉 ‘그것(It)’으로 전락하고 만다.
콜비츠의 어머니들이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내 품 안에 있는 따뜻한 ‘너’가 차가운 쇳덩이나 무의미한 숫자로 취급받으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울부짖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청동 조각상 위에 내 따뜻한 손을 가만히 얹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콜비츠의 마음과 닿아있는 ‘그것(It)’
단단히 엮인 어머니들의 팔과 그 안에 숨죽인 아이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보며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내밀한 갈등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교사를 노동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노동의 신성함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하며 올바른 연대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나는 '교사'라는 이름 위에 '노동자'라는 명찰을 덧붙이는 일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내가 나 자신을 '노동을 제공하는 이'로 규정하게 되면 내 무의식 속에서 아이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되고, 가르침이라는 그 떨리는 만남이 완수해야 할 건조한 '과업(It)'으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을까. 나 자신의 연약함이 무서웠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경고했다. 대상을 기능과 효율로만 대할 때 인격적인 '너(Thou)'는 사라지고 차가운 수단인 '그것(It)'만 남는다고. 나는 내 교실이 노동의 현장이기 이전에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성소가 되기를 바랐다. 아이들을 ‘업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나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몸부림은 어쩌면 아이들이 전쟁의 도구로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탑을 쌓았던 콜비츠의 그 마음, 그 슬픈 저항과 결이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된 삶은 만남이다
작품이 쏟아내는 비탄을 뒤로하고 로비로 나왔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벨기에 문화부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오랜 시간 전시장에 머무르며 감정에 젖어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벤치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우리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해야했기에 문장은 뚝뚝 끊겼고 문법은 엉성했다. 감정을 다 전달하지 못하는 짧은 언어 실력이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의 진심 어린 눈빛이 어설픈 언어의 공백을 메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박물관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대화의 보이지 않는 참여자들처럼 나란히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두 이방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뭉클한 광경이었다. 국적도 쓰는 언어도 살아온 인생의 궤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전쟁과 상처'라는 공통된 분모 위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때 마르틴 부버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참된 삶은 만남이다.'
낯선 벨기에인과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호기심 이상의 깊은 존중이 녹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그 곳을 스쳐 가는 관광객 '그것(It)'으로 대하지 않고 고뇌하는 한 인간 온전한 '너(Thou)'로 대우하고 있었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온전한 '너'로 대우받고 있다는 안전함을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용기를 얻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건넨 존중의 눈빛 덕분에 나는 비로소 한국에 두고 온 내 교실과 교사로서의 내 삶을 객관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었다.
“인간을 맷돌에 갈아넣는 일,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전쟁이 끊어놓은 관계를 낯선 우리가 서로를 '너'로 호명하며 다시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 연결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짓이겨지는 교사라는 씨앗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에 있는 ‘노이에 바헤(Neue Wache)’로 향했다.
텅 빈 공간에 천장 한가운데 뚫린 둥근 창으로 차가운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조각상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곳에서 어머니는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죽은 자식을 품고 있었다. 세상의 혹독한 추위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그 처연한 모습은 마치 보호막 하나 없이 세상의 폭력 앞에 내던져진 우리들의 형상 같았다.
콜비츠의 유언 같은 문장이 밤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씨앗은 분쇄되어서는 안 된다(Seed for sowing should not be milled).”
100년의 시간을 건너 위태로운 한국의 교단을 마주하고 있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었다.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르치는 것 그 자체다(We teach who we are).”라는 문장으로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단순히 교사의 인격이 훌륭해야 한다는 도덕적 훈화가 아니다. 교사 또한 완성체로 교단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삶을 온몸으로 통과해내며 끊임없이 자신만의 싹을 틔워야 하는 ‘씨앗’이라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교사는 교과서의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겪은 실패와 성찰, 그 치열한 성장의 서사를 양분 삼아 아이들과 접속하는 존재다. 교사가 먼저 한 인간으로 오롯이 살아있지 않다면 그들이 건네는 지식은 생명력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한가. ‘교사’라는 연약한 씨앗들이 사회적 방관과 악성 민원, 과도한 기대라는 거대한 맷돌 아래 무참히 짓이겨지고 있지 않은가.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가 교사를 '성장하는 주체(Thou)'가 아닌 '소비 가능한 자원(It)'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스승이 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지만 정작 자신은 한 뼘도 자라나지 못한 채 감정과 영혼만 처참하게 마모당하고 있다. 자신은 도구(It)로 취급받으면서 타인을 인격(Thou)으로 대우해야 하는 이 기이한 모순. 이것이야말로 교사의 내면에 잠재된 성장의 싹을 가장 잔인하게 잘라버리는 맷돌이다.
가루가 되도록 분쇄된 씨앗에서는 그 어떤 싹도 틔울 수 없다. 씨앗이 죽은 땅에서 숲이 우거질 리 만무하다. 교사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성장할 수 없는 교실은 결국 관계(Thou)의 기적이 사라지고 서로를 소모하며 버텨내는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폭력적인 ‘그것(It)’의 세계일 뿐이다.
씨앗을 지키기 위하여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의 말대로 교사가 곧 가르침의 원천이라면 교사의 내면이 파괴된 곳에서 교육은 불가능하다. 토양을 파헤치고 맷돌로 갈아엎은 황무지에서 아이들이라고 온전할 수 있겠는가.
콜비츠가 온몸으로 아이들을 감싸 안으며 ‘어머니들의 탑’을 쌓았듯 이제는 우리가 무너진 교단을 딛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단단한 옹벽이 되어주어야 한다.
짓이겨진 영혼으로는 누구도 가르칠 수 없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교사는 자신의 삶으로 가르치는 존재이기에 교사의 존엄이 지켜지는 일은 곧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과 동의어다.
베를린의 한 미술관에서 느꼈던 그 전율을 기억하며 나는 콜비츠의 문장을 빌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시 적는다.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과 잇따른 동료 교사들의 죽음, 그 뼈아픈 희생을 목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다짐이자 기도이다.
전쟁 같은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것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그 아이들을 온 존재로 끌어안아야 할 ‘교사’라는 이름의 씨앗 또한 단 한 순간도 분쇄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