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도망친 곳에서, 다시 사람을 배우다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

by 쓰는 사람 지민


잊고 있었던 시절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아침, 민박집을 나서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시 올게, 그러니까 안녕.’

지금 이 감정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으로 나 자신과 약속을 맺은 것이다. 난생처음 혼자 떠나온 낯선 땅이었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짓눌려 있던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견뎌온 서울과 학교에서의 환대는 늘 뚜렷한 계산과 목적이 있거나 학습된 예의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늘 이면을 살피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나를 평가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긴장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들의 온기가 자연스럽게 스며 나를 감싸 안았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안식’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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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호의

필하모니 공연이 끝난 늦은 밤,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가 엉뚱한 곳에 내리는 바람에 불빛조차 희미한 어두운 길을 한참이나 헤매었다. 캄캄한 거리에서 핸드폰 배터리마저 방전 직전이라 낯선 도시 한복판에 고립된 채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다. 가까스로 찾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나는 놀란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옆에 서 있던 중년의 독일인 남성에게 말을 건넸다.

당황해서 더듬거리는 나의 언어는 엉망이었을 테지만 그는 망설임 없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지하철 타면 돼요. 조심히 가세요.”

그의 눈빛과 말투에는 나를 향한 의심이나 귀찮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낯선 이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닿기를 바라는 순전한 호의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날 푸른 눈동자가 그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정이 훌쩍 넘어 민박집에 도착했다. 사장님은 그때까지 불을 끄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잘 돌아올 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늦어 걱정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잔뜩 굳어있던 내 어깨도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사장님은 두서없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들으시며 그저 잘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하셨다. 누군가 나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베를린이 건넨 위로의 방식

다음 날 아침, 부엌에서 한 아가씨와 마주쳤다. 광주에서 왔고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마주치는 젊은 교사들에게 알게 모르게 지쳐 있었다. 그들의 뚜렷한 개인주의가 낯설고 버거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곤 했다. 어차피 좁혀지지 않을 거리라면 굳이 따뜻한 곁을 내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대뜸 먼저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더니 밖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연락을 보내왔다. 나와 무언가를 공유하려는 그 살가운 마음이 핸드폰 너머로 전해지며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미소를 보며 날이 서 있던 마음은 맥없이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학교에서의 긴장과 교사라는 역할의 무게를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학교에서 그토록 좁혀지지 않던 거리감이 꼭 나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자책과 방어기제가 힘을 잃고 스르르 풀려버렸다.


그녀가 스위스로 떠나던 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며 남은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뒤에서 덩달아 함께 손을 흔들어주던 독일 사람들은 나의 남은 여정을 배웅해 주는 것 같았다.



타인의 완벽한 배려

린다우행 기차에 올라타 가까스로 자리를 찾았지만 육중한 캐리어를 둘 곳이 없어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프랑스인 엄마가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좁혀 공간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제가 짐을 봐줄게요.”

그리고 짐을 지키느라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친절함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기에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딸 다프니는 고양이 분장을 한 채 ‘야옹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치원 행사 때문에 하루 종일 고양이로 지내기로 했다며, 엄마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장난스러운 제스처 속에도 아이의 엉뚱한 상상을 제지하지 않고 존중하는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한국 선생님들, 많이 힘들죠?”

나의 지친 기색을 읽은 걸까, 아니면 세상 모든 교사들의 고단함을 짐작하는 걸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헤아려 주는 그 마음에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젖어들었다.

린다우 역에 도착해 작별할 때, 우리는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라며 서로를 향해 웃어 보였다.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사람과의 이별치고는 너무나 로맨틱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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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장 작은 존재들

그 외에도 나를 무장해제 시킨 수많은 ‘순수한 존재’들이 있었다. 버스에서 나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까꿍 놀이를 했던 남자 아기, U반 지하철에서 나를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건네던 꼬마. 처음엔 동양인의 생김새가 낯설어 쳐다보나 싶었지만 이내 그 눈빛이 순수한 호기심과 호의라는 걸 알게 되어 나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기 전 베를린 중앙역 푸드코트에서도 잊지 못할 만남이 있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듯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오겠다고 손짓을 했다. 인형처럼 예뻤던 아기는 내 품에 포근히 안겨 작은 손으로 내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종이 포크를 가지고 놀았다.

“처음 보는 동양 언니라서 이 순간을 아마 오래 기억할 거예요.”

엄마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이름도 모르는 아기였지만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내 품에 안고 있다는 감상에 젖어 조그만 손을 어루만지며 눈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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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장면. 기차 안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다가와 내 볼을 핥고 간 강아지가 있었다. 그 따뜻한 체온과 촉감, 그리고 환한 미소로 지켜봐 주던 주인의 표정은 말보다 훨씬 큰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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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본질을 다시 묻다

그 모든 순간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마주치지 못할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의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로 하여금 내 안에 고여 있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서서히 풀어졌다.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떠나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받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결국 사람이었다. 베를린과 린다우,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지는 짧은 여정 속에서 나는 관계의 본질을 다시 묻게 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의 관계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목적과 수단으로 맺어지는 ‘나와 그것(I-It)’, 그리고 전인격적으로 만나는 ‘나와 너(I-Thou)’이다. 서울 그리고 학교에서의 나는 교사라는 역할과 책임, 평가하고 평가받는 시선 등 기능과 역할로만 대하는 ‘그것’들의 세계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나에게 어떤 자격이나 역할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 대 존재로 마주하는 투명한 ‘나와 너(I-Thou)’의 만남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온전한 만남 속에서 나는 비로소 ‘기능’이 아닌 ‘사람’으로 숨 쉴 수 있었다.


프랑스인 엄마가 보여준 행동 또한 넬 나딩스(Nel Noddings)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연적 배려(Natural caring)’의 현현(顯現)이었다. ‘도와줘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감이나 부채감에서 억지로 짜낸 친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마음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태이다. 나는 그녀의 배려를 받아들이며 ‘배려받는 자(Cared-for)’를 경험함으로써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관계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나는 다시금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외로움이 어떻게 안식이 될 수 있는지, 낯선 품이 어떻게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익혔다.



에필로그

학교에서 나는 여전히 서로를 기능과 역할로만 대하는 ‘나와 그것(I-It)’의 세계 속에서 빗장을 걸어 잠글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금 단단한 경계선을 긋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삭막한 현실 너머에 대가 없이 서로의 존재를 마주해 주는 ‘나와 너(I-Thou)’의 세계가 분명히 실재한다는 사실을.


프랑스인 엄마가 보여준 ‘자연적 배려’와 낯선 이들이 보여준 따뜻한 환대 등 그곳에서의 기억은 내 안을 데워줄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었다. 교실 혹은 교무실에서 다시금 사람에게 지치고 냉기가 느껴질 때면 나는 베를린에서 마주했던 그 순수한 눈빛들을 조용히 꺼내어 나를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 그런 무해한 온기가 존재한다는 믿음 그 하나만으로도 내가 다시 학교에서 견뎌낼 이유는 충분하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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