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베를린을 '고위공무원 연하 남친'이라 하였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베를린 한인 민박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먹으며 시간을 나누었던 혜지 선생님과 귀국 편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재회를 약속했다. 스위스를 여행한 그녀와 독일 소도시들을 거쳐온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만나 이 여행의 마지막 밤을 찬란하게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마지막 밤 식사 자리에는 또 한 명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혜지샘이 묶는 민박에서 만났다는 앳된 얼굴의 아가씨이다. 놀랍게도 나와 같은 대학 독어독문과 후배였는데 얼마 전 독일계 은행에 취업해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상태였다. 그녀는 앞으로 이곳에서 혼자 집을 구하고 방을 꾸미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멋있고 대단해 보이던지, 동문을 보고 이렇게나 마음이 뿌듯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그날 밤 이 모든 만남이 ‘드라마’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쯤 되면 내가 독일의 이 도시들을 캐스팅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돌고 뢰머 광장을 거쳐 아이젠어 다리를 함께 건넜다. 독일 여정의 클로징 장면은 유난히 잔잔하고 따뜻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 떠난 여정이라 혼자 걷고 생각하는 시간이 위안이었고 고요함은 오히려 선물 같았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 내게 남은 건 뜻밖에도 ‘사람’이었다. 낯선 이들과 마주 앉아 나눈 말들,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배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순간들이 여행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문득 베를린을 설명할 수 있는 적확한 비유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나는 두 사람에게 넌지시 물었다.
“베를린, 어쩐지 ‘고위공무원 연하 남친’ 같지 않아?”
나의 엉뚱한 말에 두 아가씨들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라며 무릎을 치며 웃었다. 내가 느낀 베를린은 흔히들 말하는 밤의 퇴폐미나 무질서한 자유분방함이 아니었다. 나에게 베를린은 5급 공채를 패스한 엘리트 사무관 같다고 할까. 말수는 적고 표정은 건조하지만 그 무표정 뒤에는 치밀한 사유와 정당한 명분이 꽉 차 있는 남자처럼 느껴졌다.
결코 허술한 따뜻함을 내보이지 않고,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철학을 고집하는 단단한 태도를 지녔으며 그래서 때로는 “이게 진짜!” 싶을 정도로 융통성 없고 답답하지만 그 고집이 단순한 아집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신념이라는 걸 알기에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사람...
가만 보니, 내가 그토록 찾던 이상형을 사람이 아닌 이 도시의 모습에서 발견한 셈이었다. 내가 느낀 ‘섹시함’의 실체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감정을 말로 휘두르지 않고 오직 예술과 공간을 통해서만 조심스레 내면을 드러내는 절제미.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엄격한 원칙 안에서 발현되는 고도의 지성.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예술적 감수성이 오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날것의 자극적인 섹시함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지적인 섹시함이랄까.
그 후로 오랫동안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베를린 같은 남자’를 이야기하며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에서는 끝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일상에선 너무 가까워서 흐릿했던 것들이 거리를 두자 또렷하게 드러났다. 마치 파이너(Pinar)가 말한 ‘쿠레레’의 여정처럼 내 삶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자 비로소 해결되지 않은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무너졌던 자존감과 나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다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16년 만의 외출이었다. 긴 침묵 속에서 마주한 낯선 세계는 나를 나에게 다시 데려다주었다. 이 도시에서의 여정과 만남은 앞으로의 삶을 조용히 지탱해 줄 따뜻한 기억이 될 것이다. 다시 이 도시에 오게 된다면 나는 아마 이 마지막 밤부터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