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말고 그림
2009년, 나는 결혼하고 3년 만에 힘들게 아이를 가졌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큰 고통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던 차에 믿기지 않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 태명은 ‘삼백이’였는데, (영화 <300>처럼 건강한 아이로 자라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시험관을 하려고 모아둔 삼백만 원을 아끼고 태어나 장난삼아 ‘삼백이’라고 부르다 정감있는 어감이 좋아 그대로 태명으로 굳어졌다. 어느 날 남편은 아이에게 받는 선물인 셈이니 기념이 될 만한 것을 마련하라고 했다. 인생 플렉스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때이다. 이렇게 기쁜 인생의 순간은 어떻게든 기념해야 한다.
“여자들의 로망이 샤넬 가방이라던데 당신만 없는 것 같아. 마침 샤넬 가격도 삼백만 원이니 삼백이 출산 기념으로 딱이네.”
매우 오랫동안 샤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욕망의 정점, ‘위시’이자 ‘잇템’의 상징이었다. 15년 전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샤넬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심드렁했다. 아니 이렇게 역사적인 순간을 샤넬이 뭐라고, 겨우 그걸로 추억한단 말인가.
“음.... 정말 고마운데, 나는 샤넬엔 관심이 없어. 뭔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없을까? 정말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사도 된다면, 나 그림 사도 돼?”
남편의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그림’이라는 단어에 그는 당혹스러움과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마침 내가 일하고 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에서 예술인 복지기금 마련을 위해 자선경매(2009 예술인 사랑나눔 자선경매)가 열렸다. 미술품 옥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매우 낮았고, 글로벌 금융 위기로 경제는 나락이었던 시기였다. 나는 옥션 전시장으로 가 뒤뚱뒤뚱 그림 사이를 돌아다녔다. 백남준과 박서보, 이우환과 김창열을 지나, 매니큐어처럼 요란하게 반짝이는 야요이 쿠사마의 과일바구니 그림 앞에 섰는데, 갑자기 그림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소의 나라면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기다리던 아이가 생겨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나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듯, 화사하게 그림이 빛나보였다. 게다가 먹음직스런 과일이 가득 담긴 그림이라니, 입에 침이 고였다. 뱃속의 아이가 “엄마, 저거에요” 발을 차대는 것 같았다. 그림값이 치솟기 전이었지만 당시에도 야요이 쿠사마의 원화는 언감생심 꿈꿀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판화라면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옳지, 내 너로 찜했다!”
경매가 열리는 날, 강남 케이옥션 사옥의 경매장에 패들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경매 자체가 처음이라 매우 낯설었기 때문에 어리바리,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었다. 경매가 시작되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거침없이 일사분란하게 경매가 진행되었다. (화려한 언변의 경매사는 좌중을 휘어잡고 몰아붙이며 경매에 불을 붙였다.) 내가 점찍어둔 야요이 쿠사마의 그림 차례가 되었다. 150만원에서 시작된 경매 시작가는 금새 160, 170.. 200.. 250... 마구 호가가 올라갔다.
자칫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리면 이성을 잃고 폭주하다 한껏 한도를 초과하게 되고, 잠시 멈칫했다간 순간 비딩에서 낙오되어 구경꾼이 되고 만다. 광기와 이성 사이를 오가며 다른 응찰자에게 뺏기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패들을 들어 올렸다.
“더 안 계십니까? 야요이 쿠사마 <과일바구니>, 삼백만원! 삼백만원! 삼백만원! 348번 낙찰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경매 금액 세 번을 호가하고 경매봉을 두드리면 낙찰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패들번호가 348번이었다. 정말 삼백만원에서 가열찬 비딩이 끝났다. 거센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는데 시간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더니, 전장에서 승리했지만 막상 전리품을 손에 넣으니 겁이 났다. 이렇게 큰 돈을 순식간에 그림 사는데 써버리다니 과연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볼록한 배를 붙잡고 옥션장에서 갈지(之)자로 걸어 나왔다. 서늘한 밤공기에 현타가 왔다. 내 입에서 절로 ‘낙장불입, 낙장불입’이 염불처럼 튀어나왔다. 경매에서 낙찰을 철회하려면 30%의 위약금을 물어야만 한다. 만삭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차마 택시를 타지 못하고 지하철역을 찾아 들어갔다. 경매에서 그림을 낙찰받았다고 했더니, 남편의 입도 떡 벌어졌다. 나는 초췌하게 웃으며 낙장불입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림이 우리 집에 왔다.
야요이 쿠사마, 과일바구니 2, 실크스크린 54/60, 60x68cm, 1999년
야요이 쿠사마(b.1929)는 무한히 반복되는 물방울(dot)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쿠사마는 강박증을 앓았는데, 그 증세는 어떤 한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끝도 없이 펼쳐지며 질식할 만큼 그녀를 장악해 버리는 것이었다. 공포 속에서 작가는 미친 듯 점을 찍으며, 무한한 점 중에 자신을 점 하나로 존재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편집적인 강박증이 그대로 작업으로 연결되어 독특한 예술 세계를 창조한 셈이다.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미지로 쿠사마의 인기는 날로 커졌고,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가장 값비싼 작품가의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1999년 제작된 <과일 바구니>로 60점을 찍어낸 판화 중 하나이다. 야요이 쿠사마의 아이콘은 노란 호박이긴 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희소한 소재이며 삼원색의 강렬한 대비로 신비로운 환영을 창조한다.
이 그림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아이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의 배경에 함께 자리했다. 작가의 강박이 만들어낸 환영의 이미지는 나에게 와서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무한히 반짝이던 나의 마음을 비춰주는 그림이 되었다. 그림 앞에서 나는 늘 선물처럼 다가온 아이를 가졌을 때의 감사한 마음이 화수분처럼 차오른다. 우리 가족의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이렇게 첫 번째 컬렉션이 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쿠사마의 그림값이 얼마가 되었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