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갤러리2303의 씨앗이 된 연필 그림
2019년 봄, 아이 방 장난감 더미를 정리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 작은 아이가 많아도 너무 많은 물질에 둘러쌓여 있구나. 곧 열 살이 되는 아이 생일 선물로 또 무언가를 얹어야 된다면, 레고 말고, 게임기 말고, 뭔가 다른 걸 준비해보자! 열 번째 생일이니 뭔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없을까? 모든 것이 넘치게 풍족해진 세상이다. 요즘의 아이들이란 좀처럼 선물에 설레하지 않는다. ‘라떼’는 책이나 학용품, 옷, 심지어 양말까지 선물을 가장한 생필품마저도 설레는 선물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를 설레이게 하지 못한다면 나라도 설레게 해볼까? 그러다 불현듯 그림을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에 야요이 쿠사마의 판화를 샀으니, 해마다는 아니어도 십년 주기로 그림 선물은 해볼만 하지 않겠는가. 나는 멋진 생각을 해낸 나 자신을 칭찬했다.
예산이 넉넉할 리 없었다. 젊은 작가의 그림을 골라야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심히 보고 있던 임효영(Myo Yim) 작가에게 DM을 보내 그림을 사고 싶은데 가능한지 문의했다. 작가는 흔쾌히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림은 실제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법, 직접 보고 구매를 결정하려 했는데 작가는 저멀리 호주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1. 왜 그림을 사려고 하는지, 2. 누구를 위한 그림인지, 3. 어떤 공간에 걸 계획인지, 4. 예산이 얼마인지를 이야기하고 작가에게 후보를 추천받고 그림 파일을 받았다. 후보작 파일들을 놓고 가족회의를 열었고 우리는 만장일치로 한 점의 그림을 골랐다. 임효영의 <Weird Beard> 작품은 그렇게 바다를 건너 우리 집으로 왔다.
임효영(b.1983)은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호주 멀럼빔비(Mullumbimby)라는 작은 바닷가마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임효영, <Weird Beard>, 종이에 연필, 40.5x57cmx2peices, 2018
그림 속에는 선장아저씨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파도처럼 휘날리고 있는데, 삶의 여정 속 다양한 이야기가 머리카락과 수염에 가득 숨겨져 있다. 커다란 배와 기차, 보물상자, 물고기, 숲, 호랑이, 무덤, 새, 별 등등. 숨어있는 그림을 찾다보면 절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상상의 폭도 늘어난다. 수염이 어찌나 긴지 한 장의 종이에 이야기를 펼치기 어려워 종이 두 장을 이어그려 가로로 긴 그림이 되었다. 이렇게 두 장이 한 세트가 된 그림을 딥티크(diptyque)라고 부르는데, 2단접이 화판을 뜻한다.
이 그림의 또다른 특징은 종이에 연필 그림이라는 점이다. 원래 임효영 작가의 주된 작업은 모션그래픽이었으나 연필을 집게 된 건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다.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느라 충분한 작업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보니 부엌 식탁에 앉아 조각조각 시간을 써야했고, 심플한 연필이 최고의 미디어가 되었다. 그렇게 컴퓨터 마우스 대신 연필을 잡게 된 작가는 곧 연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어린 시절엔 우리 모두 누구나 작가였다. 소박한 흑백 연필이 주는 담백한 느낌은 향수에 가까워,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서 오히려 편안한 안식처의 느낌을 준다. 게다가 팔레트 속 다양한 색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색과 톤, 질감을 표현해내는 무한한 연필선의 감성이야말로 임효영 작가의 큰 장점이다.
이 그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이의 성향 때문이었다. 아이의 성정을 표현하는데 고양이와 강아지 중 비유하자면 우리 아이는 고양이과에 속한다. 신중하고 생각이 깊지만, 활동적이라기보다는 모험에 주저함이 있는 편이었다. 나는 아이가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장아저씨처럼 진취적이고 용감하게 자라나길 바랐다. 엄마의 바람을 슬쩍 그림에 담아 책상 위 아이 눈높이에 그림을 걸어 주었다. 아이의 책상에는 그림과 스탠드 불빛만이 자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비어있는 공간, 그저 앉아서 사색하고, 꿈꾸고, 그러다 어쩌다 공부도 한다면 땡큐.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나 역시 끊임없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이 그림이 있는 아이의 방은, 이래도 되나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시각적 장치가 되기도 한다. 엄마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않을 것, 다그치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지지해 줄 것.
이 그림이 집에 오고 나서 나는 임효영이라는 작가에게 더욱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집에 놀러온 지인, 아이의 친구,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이 그림을 보고, 임효영 작가를 궁금해하고 집에 그림을 놓고 싶다고 하기 시작했다. 전시를 하고 있거나 한국에 작업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작가와 구매자 사이에서 그들을 연결하는 일을 즐겁게 수행했다. 구매자의 상황이나 원하는 지점을 작가에게 전달하고 그에 맞춰 그림을 제시했다. 국제우편으로 종이 그림이 한국에 도착하면 충무로와 청담동의 액자집으로 달려가 액자 옷을 해 입히고 구매자에게 전달하며 그림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즐거웠다. 그림들은 마치 운명 속 자신의 주인을 만난 듯, 자기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려 임효영 작가의 그림 다섯 점이 자신의 집을 찾았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다. 그림이 걸려있어야 하는 곳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 삶의 맥락에 놓여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그림의 최종 종착지는 미술관이 아니라 결국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그림은 이렇게 하우스갤러리2303의 씨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