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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언덕 Mar 28. 2024

어쩌다가 집에서

하우스갤러리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은 어쩌다 집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며 우리의 삶은 무섭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등교를 할 수 없는 아이를 가정보육하면서 나도 집에 갇혔다.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임효영의 선장 아저씨 그림 <Weird Beard>이 집에 오고 난 후였으므로, 나는 그림이 있는 나의 일상에서 많은 위안을 받고 있었다. 곰곰이 집의 의미를 생각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1.5배로 늘면서 집은 일터, 학교, 헬스장, 까페, 파티장 그 무엇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 극장과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문화센터 등 고유 목적의 수많은 문화기반시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주변 예술가 지인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집콕으로 지루함이 극에 달한 사람들이 수백번 커피를 저어 크림커피를 만들던 시절, 임효영 작가의 그림을 문의하는 주변 지인들 덕에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호주에 있는 작가에게 연락을 했다. 자연스레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작품을 이해하는 폭은 커졌다.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렇게 그려진 수많은 그림들이 얼마나 많이 작가의 책상 서랍에 쌓여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너무 자주 작가에게 연락을 하다보니 작업을 방해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럴 바에야, 작가의 그림뭉치가 들어있는 서랍이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림들이 우리 집으로 와야겠는걸? 그럼 기왕, 집에서 전시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집은 정말 좋은 전시장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범접할 수 없는 또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갤러리에서도 미술관에서도 일해본 적이 있는 나도 간혹 느꼈던 지점이다. 반면 나는 그림이 있는 공간에 거주하면서, 즉 나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그림이 훨씬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묘하게 집에서 보는 그림은 어떤 마력이 있었다. 


먼저 작가에게 거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작가의 작업실에 그림이 묵혀 있는 것보단, 서울의 우리 집에서라도 전시를 해보자는게 요지였다. 세상에, 사람이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하는 전시라니 웃기지만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어차피 코로나로 기존의 전시장들이 문을 닫아 작가는 전시할 장소가 없고, 관객은 그림을 보러 갈 곳이 없었다. 하루에 한 명씩, 석달 동안 총 백 명 관객을 모아보겠다고 했다. 전시의 목적은 그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시가 그렇듯이 즐겁게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을 잘 보여주겠는 것을 의미삼겠다고 했다. 집을 전시장으로 쓰니 공간 임대료도 인건비도 들지 않으니 뭐하나 밑질 게 없는 기획이 아닌가! 


이제 와 생각하니 임효영 작가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런 엉터리 제안을 그녀는 재미있어했다.


그 다음 산을 넘어야 했다. 작가만큼이나 무엇보다 가족들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했다. 조심스레 남편에게 호주에 있는 임효영 작가의 그림을 우리 집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집을 전시장으로 쓰고, 낯선 이들이 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남편의 첫마디는 ‘당신 미쳤어? 제정신이야?’였다. 말도 안된다는 남편의 반대에 나는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되고 끈기있게 전시의 컨셉과 의도를 이야기했다. 나의 똘기와 고집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내 눈에서 조용한 광기를 읽고 마침내 그는 굴복했다. 첫 취업보다 어려운 재취업의 경력단절을 그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보고 싶으면 ‘한 번’ 해보던가”


훗날 남편은 당시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가 될 것이라고. 두 번째 전시 계획을, 세 번째 전시 계획을, 그러다 열 번째 전시 계획을 얘기할 때마다 남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또, 전시를 한다고?”


그렇게 2020년 6월, 하우스갤러리2303의 개관전이 열렸다. 구상에서 실현까지 약 3개월이 걸렸다. 임효영 작가의 그림책 원화 전시 <밤의 숲에서>였다. 작가는 생애 첫 개인전을, 안하느니만 못할지도 모를 집 전시장으로, 무려 그림책 원화 42장과 초고 원고, 스케치 더미들을 바다 건너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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