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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Mar 30. 2020

일을 더럽게도 못하는, 나는 애송이였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참 애매한 지점. 그러다 화살은 다시금 나에게로 향했다

   목적지는 부산역 근처에 있는 어느 떡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행사 시작 20분 전. 이 짧은 시간 안에 2km 떨어진 어느 떡집에 가서 사람들이 먹기 좋게 개별 포장된 떡을 40개 정도 사 와야만 했다.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을(乙)의 입장이었고, 그 어떤 부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군말 없이 마땅히 처리해야만 했다.


   밖을 나서니 10월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시간 동안 분주하게 움직인 덕분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 회사 업무와 연관이 있으면 상관없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일이 삶을 훅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라며 심드렁하게 넘기기엔, 돈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과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임무를 받았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 정상적인 서사다. 나에겐 행사 다과 준비가 그런 일이었다. 어느 아카데미에 참여한 40여 명의 수강생의 요깃거리를 준비하는 것. 과자와 과일, 김밥, 샌드위치 등과 접시 몇 개만 대충 세팅해놓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행사 시작 20분 전에 다시금 요깃거리를 사러 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린 파리바게트 샌드위치는, 누가 봐도 파리바게트에서 사 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지적받았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50~60대 어르신이라는 걸 감안해 시장에서 구입한 각양각색의 떡은, 사람들이 집어가기 불편하다고 혼이 났다. 각종 과일과 과자는 요것거리 취급도 받지 못했다. 마트와 다이소를 돌아다니며 구입한 테이블 천과 장식용 물품들은 끝없이 이어진 지적 끝에 결국 모조리 치워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공들여 준비한 케이터링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지적을 받았고, 결국 ‘제대로 된 요깃거리’를 사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떠난 것이다. ‘보기 좋아 보이는 개별 포장된 고급스러운 떡’과 ‘시장에서 파는 떡’의 그 엄청난 간극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


   무슨 케이터링 대회라도 나가는 건가, 그냥 수강생들이 먹고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럴 거면 진작 케이터링 업체 부르라고 하지, 홀로 투덜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만, 뭔가 이상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떡집이 있을 만한 장소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온갖 화물들이 큼지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숨은 맛집인가, 어플이 잘못될 리는 없다는 확신에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100m 앞, 50m 앞, 5m 앞, 근방. 어플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커다란 컨테이너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뭐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플에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다. 이내 충격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왔고, 내가 찾은 곳은 여기서 10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왜 위치를 수정해놓지 않았느냐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혹시 부산역 근처에 떡집이 있냐고 묻자, 이내 한 곳을 안내해 주었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이미 행사 시작 시간을 훌쩍 넘은 때였다.


   떡집은 여기서 또 1km 정도 떨어진 부산역 안에 있었다. 최단 거리를 검색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화물 사이를 계속 거닐다 보니, 부산역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다. 다만 높게 담장이 쳐져 있었고, 그 밑에는 수풀로 우거져 있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니, 시간이 한참 걸릴 거 같아 결국 담을 뛰어넘기로 했다. 나무를 기어 올라, 담장 위에 간신히 팔과 다리를 올렸다. 담장의 반대편이 생각보다 높아 놀랐지만, 단단히 각오를 하고 뛰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에 자그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만 떡집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마감 10분 전에 들어 온 어느 이상한 청년이, 떡을 무려 6만 원어치 구입해 허겁지겁 다시 뛰어가니 이상한 시선을 받는 건 당연했다. 힘은 진즉에 빠졌지만, 주어진 업무를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행사장으로 향했다. 2km 넘게 떨어져 있는 데다 짐까지 많아,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부산역 근처, 택시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를 이야기하자, 기사님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보냈다. 거기 코앞인데, 걸어가면 안 됩니까. 아, 지금 땀도 많이 흘리고 짐도 많아서요. 아니, 손님 태우려고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10분 거리에 기본요금만 받으라는 겁니까. 눈앞이 아득해졌다.


   *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등이 서늘해졌지만, 두 손 가득 짐을 든 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간신히 도착한 행사장. 시각은 이미 7시 40분이었다. 어차피 행사를 위해서도 아니고, 수강생들의 요깃거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갑(甲)의 횡포에 맞서 을(乙)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었다. 잠시 땀을 식히며 지금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 담당자의 잘못인가. 아니었다. 담당자 역시 이 행사를 책임지고, 누군가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 을(乙)의 입장이었다. 나는 욕은 먹을지언정 책임을 질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 잘못인가. 이제까지 회사에서 여러 행사를 하면서 케이터링으로 지적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샌드위치와 떡, 빵, 각종 과일과 과자까지. 수강생은 충분히 만족하는 다과였다. 결국 담당자가 원하는 다과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건데, 그렇게 개개인의 욕구를 완벽히 맞추는 건 케이터링 업체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케이터링 업체도 아니었다. 출판사 편집자였다.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 거기다 편집자 이야기를 담은 책도 출간해서 여기저기 강연도 하고 다니고 있는데, 왜 이렇게 욕을 먹고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의문에 대한 답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좋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현실 감각이 떨어진 걸까. 조금은, 안일했던 걸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대의 끝자락. 자그마한 성과에 취해 달콤함에 빠져 있기엔 너무 이른 시기. 지금의 너는 별거 아니라고, 아직은 구를 때라고, 한창 깨지고 넘어질 시기라고 누군가 말을 건네는 듯했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참 애매한 지점. 그러다 화살은 다시금 나에게로 향했다. 그래, 내가 잘했으면 아무 문제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일을 더럽게도 못하는, 애송이.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이러한 분노와 무기력함, 억울함, 서러움마저 무덤덤하게 느껴질 때, 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참으로 어리구나.


   *


   강의가 끝나자 수강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나왔다. 들어올 땐 없었던 개별 포장된 고급스러운 떡이 테이블 위에 가득 있으니, 이내 너나 할 거 없이 떡을 두세 개씩 집어 들었다. 아, 아직 담당자가 확인 안 한 건데, 가져가면 안 되는데. 흠칫 놀랐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애초에 수강생들의 요깃거리로 준비한 다과이니,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담당자가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떡이었다. 결국 두 손 가득 땀을 뻘뻘 흘리며 가져온 떡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고맙다고, 잘 먹겠다는 몇몇 어르신의 인사만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이윽고 강의실 너머로 담당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떡 사 오라 했더니 한 시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였던, 결국 빈손으로 와 시간이나 축 내고 있는, 일을 더럽게도 못하는 어느 청년의 모습이 그 무서운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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