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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pr 06. 2020

아등바등 살아서 그렇지, 그리 불행할 이유는 뭐 있나

우리 모두 의외로 행복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햇살은 포근한 봄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곧장 사무실로 향하기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와 봄을 알리는 향기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빨리 식사를 마친 덕분에 점심시간이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저희 오랜만에 산책 갈까요. 누군가 먼저 이 말을 꺼내기 기다렸다는 듯, W 형과 C 선배님은 곧장 좋다고 대답했다.


   배부르고 날씨도 따시겠다, 무언가 마실 게 필요해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봄을 맞이해 다양한 신메뉴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먼저 카드를 내밀려던 차, C 선배님이 선수를 쳤다. 돌아가면서 음료나 아이스크림 등 군것질거리를 사고 있긴 했는데, 요새 자주 얻어먹은 느낌이라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다음엔 꼭 제가 살게요. 누가 얼마만큼 더 샀는지 따지고 또 따지다 보면 이 감정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효율의 논리를 떠나서도 지금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따스하게 다가왔다. 만약 내가 오늘 샀다면, 다른 두 명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는 확신은, 통장 잔고의 두둑함이 결코 줄 수 없는 특별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각자 음료 하나씩 손에 쥐고 카페를 나오니, 광안리 해변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햇빛에 반사돼 찰랑거리는 바다, 이따금 만나는 물고기 떼, 해변에서 장난치는 아이들, 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커플의 모습. 매일 보는 풍경이었지만, 매일의 바다와 매일의 물고기, 매일의 아이들과 매일의 커플은 엄연히 달랐다. 그 자그마한 차이는 늘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매일의 햇빛, 매일의 바람, 매일의 냄새, 또 매일의 행복.


   *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었고, 그 영향은 회센터와 횟집이 즐비하게 이어진 민락동 한구석에 위치한 자그마한 회사, 그곳을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세 명에게도 미쳤다.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집 밖을 못 나가면 책을 많이 읽을 줄 알았더니, 웬걸, 매출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대신 넷플릭스 가입자가 많이 늘었다는 소식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출간 일정이 밀리고, 계약도 밀리며 일이 계속 엉키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유독 좋지 않은 대표님의 표정 속에서 경기가 좋지 않음을, 사업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의 어려움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직원의 불안과 걱정으로 전이되었다. 출판사에 들어온 지 어느새 3년, 2년이 된 C 선배님과 나 역시 사무실의 무거운 공기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좀처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혼자 생겼다가, 또 홀로 사라지곤 했다. 이러한 사정은 공간 매니저이자 문화기획 일을 하는 W 형도 마찬가지였다. 문화기획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좁히는 행위였기에, 현 사태를 맞아 매출이 떨어지는 정도를 넘어 일이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고,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미래는 더욱 막막하고 암울해지는 처지였다. 내색하지 않아도, 각자가 처한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이러한 기분은 화창한 날씨와 사뭇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물이 참 맑네요. 고기도 많이 보이고. C 선배님의 말에 나와 W 형의 시선은 일제히 발밑으로 향했다. 물고기가 떼를 이루어 바닷속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었다. 그 몸짓이 오늘따라 힘차게 느껴졌다. 전 세계 공장은 대부분 가동이 중단되었고, 도로를 가득 메우던 차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덕분에 하늘은 맑아졌고, 물은 깨끗해졌다. 그 덕분일까,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에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어붙은 경기와 어려워진 회사 사정 탓에 고민이 깊어진 우리에게, 그나마 낙이 있다면 깨끗해진 자연과 힘이 넘치는 생명을 어렵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이따금 그 광경 속에서 자그마한 위로를 얻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뿐이었지만, 한편으론 소중한 감정이기도 했다.


   *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W 형이 문득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은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작년에 철학 관련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진행한 주인공다운 질문이었다. 이럴 때 어영부영 대답을 못하면 삼류, 멋진 대답을 척척 해내면 이류, 그리고 공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레 넘기면 일류였다. 형은요? 나의 역질문에 W 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W 형은 돈 욕심도 많이 없고, 그냥 이렇게 바닷가 보면서 음료 마실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멋진 대답이었다. 그 말을 하는 지금, W 형은 바닷가 보면서 음료 마시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이런저런 사정으로 돈도 없다고 했는데, 그럼 행복을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된 셈이다. 그럼에도 W 형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거짓말인가 보다.


   이어서 C 선배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C 선배님은 누구 놀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놀릴 상대가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상처 잘 안 받아야 하고, 받더라도 빨리 회복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그런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머릿속에 당장 두 명이 떠올랐다. 회사 일이 많거나, 연인과 다투거나 헤어졌거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거나, 그 외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셋이서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다만 처음엔 서로를 위로해주는 듯하다가도 이내 서로를 필사적으로 놀리곤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다 보면 고민이 금세 사라지곤 했다. 이러한 과정이 재미있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놀릴 때만 행복하다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확실한 건, 그렇게 마음 편하게 놀릴 수 있는 상대는 나와 W 형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요, 힘들 때 술 한잔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으면 행복하더라고요. 이야기하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이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다른 사람 푸념 듣다 보면 내 고민이 가벼워지는 거 같고요. C 선배님이 중간에 훅 들어왔다. 다른 사람 불행한 거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아픔을 나누다 보면 괜찮아진다는 거죠. 대놓고 말할 수 없어 급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C 선배님의 말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크게 싸워 하소연했더니, 웬걸, 두 명 모두 가정사의 스케일이 달라 힘들다고 말한 내가 무안해지곤 했다. 그 외 다른 고민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며, 더욱 더 깊고 내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곤 했다. 다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그런데도 왜 저렇게 해맑을까, 절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저희 10분만 더 있다가 들어갈까요, 오늘 대표님 늦게 오시겠죠? 정오 씨, 또 그러다 대표님 오면 제일 열심히 일하는 척할 거잖아요. 저 그런 거 엄청 잘하지 않나요? 정오가 이러는 거 대표님이 알아야 할 텐데... 그렇게 셋이서 깔깔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하늘, 푸른 바다를 뒤로하고 다시금 사무실로 향했지만,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처음 품었던 의문이 다시금 불쑥 앞으로 다가왔다. 그게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 의외로 행복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서 그렇지, 그리 불행할 이유는 또 뭐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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