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오 Apr 11. 2020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쳐주잖아요

뭔가를 아무리 잘해도, 인기 얻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곱창전골이 버너 위에 놓이자, 기다렸다는 듯 함께 잔을 기울였다. 고된 회사 일을 마치고 먹는 술은 언제나 옳았고, 조금 전까지 열심히 했던 헬스는 술맛을 더욱 높여주었다. 회사 일이 주는 정신적인 피로와 근력 운동이 주는 육체적인 피로는 그대로 두면 만성 피로로 발전했겠지만, 마음 맞는 사람과 술 한잔 기울일 때면 최고의 안주가 되곤 했다.


   D 형은 대학생 시절 문화기획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인연이었다. 청년 활동, 글쓰기, 인터뷰, 공모사업 등 흔치 않은 여러 접점으로 느슨한 인연을 이어오다 회사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 지적인 이미지, 나근나근한 목소리, 범상치 않은 글쓰기 실력,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매너와 센스까지. 멀리서 바라볼 땐 참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가까워지고 나니 이 모든 게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늘 고민이 많고, 의외로 소심하고, 자그마한 일에 분개하고,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늘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 자신이 무겁고 진지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D 형 앞에서는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거기다 인생사는 왜 그렇게 험난하고 파란만장한지, 그 절절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연민의 감정이 생기곤 했다. 바로 그 점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빠른 시기에 부쩍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


   그러니까 위대한 작품을 쓰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쓰라니까요. 답답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섞여 나왔다. 나의 집요한 노력 끝에 D 형은 올해 책 출간을 목표로 원고를 쓰고 있었다.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며 느낀 단상과 다양한 에피소드,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 등을 소재로 지난 3개월간 한 온라인 플랫폼에 연재 중이었다. 다만 D 형은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20대 후반부터 부산의 한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며 늘 좋은 글을 써오고 있는 만큼 글쓰기 실력은 입증되었지만, 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서툴렀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독자들이 정말 궁금해 할까, 자신이 책을 써도 괜찮을까, 스스로 해결되지 못 한 고뇌는 D 형이 쓰는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탓에 매주 한 편씩, 무려 12개의 글을 썼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해 글쓰기 이야기가 술자리까지 이어진 셈이다.


   곱창전골이 팔팔 끓어오르자 수북이 쌓인 야채를 국물로 천천히 적셨다. 술을 한 모금 더 마시자, 평소보다 빨리 술기운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운동 때문에 피가 빨리 돌아서 그런지, 술도 빨리 취하는 기분이었다. 형 진짜 글 잘 쓴다니까요. 제가 괜히 책 쓰라고 제안한 거 같습니까. 저 그렇게 가벼운 편집자 아닙니다. 연이어 잔을 기울였다. 오늘 같이 헬스 하고 왔으니까... 웨이트 트레이닝을 예로 들어 볼게요. 형은 지금 스쿼트 100kg을 들 수 있어요. 그런데 형이 헬스 트레이너고 고객 유치를 위해선 사람들 앞에서 영업을 해야 해요. 그땐 100kg 들 필요는 없어요. 대신 50kg을 멋지게 들어야죠. 정확한 자세로, 근육 잘 보이게, 사람들이 헬스장 등록하고 싶도록 말이죠. 괜히 100kg 들었다가 자세 무너지거나 실패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잖아요. 아, 안 그래도 오늘 스쿼트 90kg 들었는데 허벅지 터질 거 같다. D 형의 답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형한테 원고 뽑아내는 것보다, 운동시켜서 근육 붙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너도 편집할 때보다 운동할 때 더 즐거워 보인다. 더 적성에 맞는 거 같고. 그렇게 둘이 키득거리며 남은 술잔을 비웠다.


   *


   곱창전골이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겨오자,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이모님, 이거 먹어도 돼요? 한참 전부터 다 익었었다는 대답에 살짝 머쓱해져, 곧장 국자로 각자 앞 접시에 적당히 덜었다. 짠 합시다. D 형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나 봐. 그래서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은 거 같고. 책조차 안 쓰면 당장 해야 하는 일만 하면서 제자리에 머무르는 느낌이 들 거 같은데, 막상 책을 쓰려니까 또 고민이 많아지네. D 형의 진솔한 이야기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책을 쓰라고 다그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글은 참 잘 쓰는 데 책을 내려고 하니 일이 참 복잡해졌다. 마치 노래를 참 잘하는데, 앨범을 내지 못 해 계속 거리를 방황하는 어느 이름 모를 뮤지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이모, 여기 진로랑 테라 한 병씩 더 주세요- 무거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술이 금세 사라졌다. 팬을 가득 채우던 야채와 곱창도 어느새 빨간 국물 위에 듬성듬성 떠 있었다. 형, 있잖아요. 저도 편집자 생활을 겨우 2년 하고 책을 냈잖아요. 아니, 원고를 쓰던 시점으로 보면 겨우 1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기장 같은 글을 썼다고 욕할지 모르고, 글쓰기 실력이 한참 부족한데 너무 일찍 책을 냈다고 비판해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요. 근데 있잖아요. 그런 논리라면 평생 책을 못 낼 거 같더라고요. 편집자 생활을 1년 하든, 10년 하든, 그보다 더 많이 했으면서 책을 안 낸 사람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글쓰기 실력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 평가하는 건 제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막상, 제가 책을 내든 뭘 하든 사람들은 거의 신경 안 쓰더라고요. 제가 책 냈다고 뭐가 달라졌습니까. 회사에서 똑같이 허드렛일도 많이 하고, 퇴근하면 헬스하고,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이랑 술 한잔하고. 맞지, 맞지. D 형은 적극 맞장구를 쳤다. 책 출간의 의미도 예전이랑 많이 달라진 거 같아요. 그냥 자기 삶이나 생각을 한 번 정리하는 행위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으로 삼는 거죠. 더군다나 미래가 항상 불안정하고 막막한 문화예술계에서는 더더욱 필수죠. 누가 챙겨주는 거 없이 자기가 알아서 일 배우고 성과 내면서 유명해져야 하잖아요?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D 형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우리 진짜 답 없다. 어떡하냐. 먹고살 수 있겠나. 진짜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자. D 형의 갑작스러운 넋두리에 절로 힘이 빠졌다. 아, 그러려면 책 써야 한다니까요, 형...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것일까. 오늘 또 환상이 깨지려나 보다.


   *


   국물이 바닥을 보이려 하자, 급하게 버너 불을 껐다. 테이블에 소주병과 맥주병은 점점 쌓여갔다. D 형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소녀시대 태연, 다들 좋아하잖아요. 아이돌로 데뷔했는데 노래 실력이 탄탄해서요. 저는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요. 만약 태연이 소녀시대가 아니라 솔로로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물론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지금만큼 인기가 없었을 거라 확신해요. 아무리 노래 잘해도 인기 얻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소녀시대로 데뷔해서 인기를 얻고 나니까,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반응이 좋잖아요. 블락비에 지코도 마찬가지고요. 저희 세대로 치면... 음, 지오디랑 핑클에서 각각 솔로 데뷔한 김태우, 이효리가 그렇겠네요. 그렇지. 걔네들 성공했지. D 형이 맞장구를 쳤다. 조금 속된 말일 수도 있는데, 일단 유명해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유명한 사람은 똥만 싸도 박수 쳐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형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말랑말랑한 글이나 진솔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써야 유명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형이 진짜 뭘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가슴 한쪽에 간직해서 까먹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윽고 D 형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유명해져야지. 그러려면 사람들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 하고. 힘 없이 수긍하는 D 형의 모습에서 대중과 타협하는 개성 강한 어느 예술가의 이미지가 겹쳤다. 순간 내가 이제까지 내뱉은 말과 D 형을 기어코 저자로 데뷔시키려는 행동이 한없이 무겁게 다가왔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발굴하는 걸까, 아니면 대중성을 핑계로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색을 없애며 예술성을 돈에 물들이는 걸까. 우선 유명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소리치는 나는 정작 유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글쓰기 실력이 아닌 유명세에 기대는 작가들을 늘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다만 출판사 차원이나 작가 차원이나, 책이라는 상품을 판매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얻는 건 무척 중요했다. 고로, 유명해지는 건 분명 필요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던 차, D 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2차로 맥주 한잔 더할까. 좋죠. 바닷가 가서 먹자. 자리를 정리하고 술집을 나오자 광안리 해변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검은 바다와 그 위로 반짝거리는 광안대교, 또 그 위를 지나가는 노란 불빛들. 오늘 보름달이네요. 그렇네.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둥근 물체가 검고 푸른 하늘에 한 폭의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달은 캄캄한 하늘을 비추고 있었고, 먹먹한 미래에 발을 디디는 어느 두 청춘에게도 달빛이 은은하게 닿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등바등 살아서 그렇지, 그리 불행할 이유는 뭐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