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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Oct 15. 2024

오랫동안 다닌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청년은 이제까지 그랬듯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텼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음에도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어느 청년은,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출판사에 입사했다.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글과 관련한 일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에 청년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돈을 받을까, 청년은 월급날이면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힐 정도로 일에 빠져들었다. 아, 나는 편집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구나. 평생 책 만드는 일을 할 거라고, 청년은 홀로 다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편집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위에 많이 알리고 다녔다. 


청년은 입사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편집자 이야기를 담은 단행본을 출간했다. 작가의 꿈을 이루면서 동시에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을 세상 밖에 당당히 드러낸 셈이다.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관심을 얻었고, 덕분에 청년은 작가로서 종종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기획 도서 종수가 늘어났다. 자연스레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콘텐츠를 주로 기획하는지 편집자로서 색깔이 만들어졌다. 청년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설렘과 기쁨을 느꼈다. 입사 초기만큼의 엄청난 에너지는 없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열정만은 그대로였다. 


멋모르고 출판사 편집자 직함을 달았던 20대 후반의 청년은 어느새 30대 중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출판 경기와 이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 무엇보다 결혼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때론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청년은 이제까지 그랬듯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텼고, 일주일을 버텼고, 한 달을 버텼고, 한 해를 버텼다. 


그랬던 청년은, 

편집자가 자신의 천직이라 여겼던 청년은, 

그리고,

편집 일은 나와 맞지 않다며,

책 만드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오랫동안 다닌 출판사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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