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고되고 힘든 일을 묵묵히 해야만 한다
행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음식이 하나씩 세팅되기 시작한다. 유부초밥이 먼저 나온다. 이어서 메밀소바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오코노미야키가 각 테이블에 놓인다.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스무 명의 저녁을 책임지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앞에 놓인 이 음식을 위해 누군가는 메뉴를 정하고, 누군가는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또 누군가는 요리를 했을 것이다. 또한 이 행사 준비하며 누군가는 주제를 정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피피티를 제작하고, 대본을 쓰고, 호흡을 맞추고, 테이블을 배치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수고를 단돈 만 원에 샀다. 그 덕분에 편안하게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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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행사를 기획할 일이 종종 있다. 대부분은 북토크다. 우리 출판사 저자님을 모시고 독자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다양한 참가자가 행사장에 발걸음 한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편하게 앉아 모든 걸 편안하게 누리는 참가자가 아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준비해야하는 기획자의 입장에 놓인다.
회사 행사가 하나 잡힌다. 디자이너분께 포스터를 만들어 달라며 소스를 제공한다. 참가 신청서 양식을 만든다. 여기저기 홍보물을 올린다. 행사 며칠 전 작가님과 통화하며 필요한 자료를 요청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리 입을 맞춘다. 행사 당일이면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한다. 포스터를 출력해 행사장 곳곳에 붙인다. 노트북과 프로젝터, 스크린, 스피커, 마이크 등 장비를 점검한다. 다과를 사 와 되도록 깔끔하고 예쁘게 세팅한다. 참가 인원, 강연 주제에 맞게 책상과 의자를 재배치한다. 작가님이 도착하면 오늘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참가자들이 하나둘 들어오면 안내를 시작한다. 곧 행사가 시작된다. 늦게 온 참가자들을 안내한다. 쉴 틈이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 행사 스텝 알바생이다.
행사장에서 뒷풀이가 있다고 한다. 미리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마트에 가서 술을 사 온다. 행사가 끝나면 단체 사진을 찍고, 설문지를 받는다. 급히 책상과 의자를 재배치한다. 배달음식이 도착한 걸 확인한다. 테이블에 세팅한다. 한숨을 돌리려던 차, 컵이 부족하다, 안주가 부족하다, 자리가 없다, 온갖 이야기들이 또 들리기 시작한다. 이들이 편하게 앉아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 서빙 알바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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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때, 한창 공모사업을 쳐낸다고 정신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겠다며 문화기획 일에 뛰어들었고, 뜻 맞는 사람이 몇 명 모였다. 열정과 패기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다들 문화기획 일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합을 맞춰 볼 시간도 부족했다. 더군다나 함께 일하는 법도 잘 몰랐다. 모든 게 서툴렀고, 그 서투름은 굴곡을 만들었다. 굴곡은 우리가 더 단합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각자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거나 서로를 비난하게끔 만들었다. 우리는 공모사업을 잘해내는 데도 실패했고, 그걸 해내는 과정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돈도 안 되고 남들에게 인정받기도 힘든 문화기획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였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실패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 해도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귀찮은 일, 힘든 일, 난감한 일, 하기 싫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일들은 남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창의적인 일보단 기계적인 일이 많으며, 굳이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웠다. 의미나 가치를 느끼기도 힘들뿐더러 무사히 끝나도 보람을 얻기 어려운 일이었다.
음식 하나를 해 먹기 위해선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돈으로 장을 봐야 한다. 누군가는 재료 손질을 하고, 누군가는 요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식사가 끝나면 누군가는 식탁을 치워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 떠나간 자리, 누군가는 그곳에 홀로 남아 설거지를 해야만 한다.
당시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 급급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재료를 구해오고 요리를 했는지, 이후 누가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할 건지에 대해선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 좋은 마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확신에 취해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은 되도록 안 하려 했다. 일을 일 같지 않게 했다. 그러니 일이 잘 진행될 리가 없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 엉망이 돼버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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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해 배가 무척 고프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챙기고 나면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있고, 내가 먹을 음식 따윈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오늘은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저자와 행사 참가자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나는 책 만드는 것과 조금도 연관이 없는 행사 스텝, 서빙 일을 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기획, 홍보, 참가자 관리, 연사와 사전 소통, 행사장 세팅, 행사 진행, 이후 뒷풀이 준비 및 뒷정리까지,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사가 제대로 열리지도, 진행되지도 않는다.
아직 뒷풀이가 진행 중이지만 설거짓거리가 한참 쌓여있다. 나라고 설거지가 하고 싶겠는가. 그보단 뒷풀이 자리에 끼이는 게 훨씬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다. 고무장갑을 착용한다. 물을 튼다. 수세미에 세제를 칠하고, 접시를 하나하나 닦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다. 대부분 참가자는 연사, 사회자, 그리고 우리 출판사 이름만을 기억할 것이다. 오늘 행사를 누가 준비했는지, 뒷정리를 누가 하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주는지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이 잡다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고되고 힘든 일을 묵묵히 해야만 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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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에 남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곧장 집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과 접시 등을 대충 정리한다. 다만 주방까지 들어가진 않는다. 오늘 행사는 스텝이 많다. 홀 정리하는 사람, 설거지하는 사람 등이 모두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 굳이 나까지 정리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 동준 씨, 먼저 가보겠습니다.
참가비를 내지 않았다면 눈치를 보며 뒷정리를 도왔을 테지만, 나는 만 원을 당당히 지불한 참가자였다. 누군가 준비한 행사에 편히 앉아 있다가 곧장 집으로 향할 자격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그 수고와 힘듦에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참가자로 왔으면 참가자답게 행동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 확신했다.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열린 행사라 해서, 함께 일하는 매니저 형이 기획한 행사라 해서 특별히 예외를 두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다 헛소리다. 그냥 치우기 싫었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가고 싶었다. 내 코가 석 자다. 암, 그렇고말고.
매니저 형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정오야, 가? 진짜 가?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네, 갈 겁니다. 뒷정리 깨끗이 잘하시고요. 다음 주에 봐요. 매니저 형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조만간 욕이 나올 것만 같다. 곧장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나선다. 뭐라 뭐라 하는 거 같은데, 잘 안 들린다. 듣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그 누군가는 매니저 형이다. 수고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