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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Sep 24. 2019

어느 편집자의 작가 탐방기

첫 단행본 출간과 함께, 온갖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첫 번째 타협, 이과를 선택했다. 두 번째 타협, 공대로 진학했다. 세 번째 타협, 문화기획자를 꿈꾸며 청년문화 활동에 뛰어들었다. 네 번째 타협, 취업을 했다. 우연한 기회로 편집자 직함을 달게 되었지만, 사실 편집자를 꿈꾼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편집자 직함은 작가의 꿈을 꾸다가 결국 포기하며 현실과 타협한 결과에 가까웠다. 작가와 가까운 존재이지만, 작가는 아닌 존재. 지난 2년간 열심히 일하며 수많은 작가를 만났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잠깐 접어두었던 꿈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글로 썼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며 첫 단행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취업을 하면 작가의 꿈이 끝날 거라 확신했는데, 오히려 회사에 들어오고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직장인 이야기로.


   *


   지난 2년간 원고를 독촉하고, 최대한 수정 없이 빠르게 가자고 얘기하는 게 내 업무였다. 매번 원고를 늦게 주거나 요구사항 혹은 수정사항이 많은 작가들을 보며, 내가 책을 쓰면 절대 저렇게 안 할 거라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아니, 충분히 얘기해서 합의한 일정인데 그것도 못 맞춰? 처음부터 제대로 해서 주시지, 출간 일정도 빠듯한데 수정사항이 왜 이렇게 많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홀로 삭히곤 했다. 작가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해진 출간 일정 못 맞춥니다. 이렇게 늦게 주시면 저희가 야근해야 합니다. 아뇨, 작가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 문제라니까요. 그러면서 조금은 뼈가 담긴 이야기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곤 했다. 그러다 내가 작가의 입장이 되었다. 원고 마감이 몇 주나 늦었다. 수정을 몇 번이나 했다. 최종 교정을 본 원고를 한 번 더 고쳤다. 표지 디자인을 두 번이나 바꿨다. 그 탓에 출간 일정이 많이 늦어졌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


   예전에는 글만 잘 쓰면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출판의 세계에 들어오고 깨달은 게 있다면, 글쓰기 실력은 작가에게 필요한 여러 능력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글을 잘 쓰는 저자보다, 인맥이 넓은 저자가 더 매력적이다. 그것도 책이 출간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100권, 200권을 사줄 인맥이라면 더더욱. 꼭 물질적인 가치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저자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출간 결정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책 홍보는 물론, 책이 나온 이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많으면 출판사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출판사가 돈이 많거나, 오로지 작가의 재능만 믿으며 작심하고 투자할 상황이 아니라면, 글쓰기 실력은 어쩌면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최근에 첫 단행본을 냈다. 과도한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나의 글솜씨에 열광한 게 아닌, 나라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 게 아닐까 싶다. 작가를 꿈꿔왔던 입장에서 조금은, 얼떨떨하다.


   *


    책 한 권 나온다고 삶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책을 출간한 작가들을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이들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책에 대한 환상에 빠지기엔 이미 보고 느낀 게 많은 상태였다. 실제로 이번 단행본 출간이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 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책이 나온 기쁨도 잠시, 좀처럼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거고,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창고에 틀어박혀 빛 한 번 제대로 못 보는 책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될 테고, 허울만 ‘작가’일 뿐, 뭐 하나 내세울 거 없는 모습에 스스로 한심해할 테고, 혹여나 내 글이 재미없었다는 혹평 혹은 악플에 몇 날 며칠이고 기가 죽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는데, 책은 괜히 사람을 기대하게 만드는 듯하다.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주문을 외워도 나는 분명 기대를 할 것이고, 반드시 실망할 거라는 걸 충분히 짐작했다. 나의 예언은 100% 적중했다. 지금 내가 딱 그러고 있다.

 

   *


   책이 출간된 그 시점부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 책을 검색하고 있다. 언론 기사가 새롭게 올라오지 않았는지, 책 리뷰가 올라온 게 없는지 확인한다. 알라딘, YES24,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판매지수를 확인한다. 내 책은 왜 이렇게 안 팔리는 걸까, 판매지수가 왜 이렇게 낮은 걸까. 내 책, 생각보다 재밌는데, 관심 좀 가져주면 안 되나? 몇 권 좀 사주면 안 되나?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다른 책들을 보며 괜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내 책이 더 나은 거 같다며 홀로 투정을 부린다. 예전에는 판매고 뭐고 일단 책 한 권을 쓰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우연한 기회로 책을 내니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싶다.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싶다. 무럭무럭 자라난 욕심은 어느새 나를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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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서 오랜 기간 글을 써왔다. 하루 방문자 수가 몇 명이든 이웃이 몇 명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다른 블로그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뿐이었다. 그러다 첫 단행본인 출간되자, 온갖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판매량, 판매 지수 등을 매일같이 확인했다. 다른 책들과 내 책을 비교하고, 다른 작가들과 나를 비교했다. 내가 책을 낼 만한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나만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곤 했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비교와 자격지심, 열등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글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어느 작가 지망생의 머릿속은, 오히려 작가의 꿈을 이룸과 동시에 피폐해졌다. 부족한 글솜씨에도 감히 작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며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책으로 돈 벌 생각, 책으로 유명해질 생각만이 가득해졌다.


   *


   편집자는 오로지 창작 영역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아무리 글이 좋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도 팔리지 않는 책을 기획하긴 어렵다. 다만 창작자라면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사회 흐름을 파악하며 이 시대 독자들이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야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타협할 수 없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작가다. 요즘 출판 트렌드가 어떻다는 둥 요즘 독자들은 이런 글을 좋아한다는 둥 요즘엔 이런 책이 인기 많다는 둥 주위 얘기에만 빠지다 보면 자신의 주관이나 가치관을 잃기에 십상이다. 편집자는 트렌드를 쫓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작가가 편집자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 작가라면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좀 더 무게를 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보다는.


   *


   책 출간이 목표인 게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그 지점에서 머무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그저 책을 많이 팔아서 떼돈을 벌거나 책으로 유명해져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먹고살고 싶었던 건지, 책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자신의 주장 혹은 지식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건지,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가 책을 낸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 혹은 명사형의 직업으로 남아선 안 된다. 작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자 써야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동사형 직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작가는 제자리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책 출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그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하는 순간,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내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참 멋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들의 모습이자,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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