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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Apr 27. 2021

시간의 탑

대학 친구들


- 벌써 혜경이가 10주년이 되네.

- 보고 싶다.

- 금방이라도 우리 이름 부르면서 나타날 것 같아.









 대학생 신입생으로 만나 지금은 할머니가 된 다섯 명의 친구들.

20대, 30대, 40대, 50대를 지나  60줄에 들어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자식도 비슷한 시기에 두 명씩 낳아 키웠다. 자식을 키우는 그 낯설고 서툰 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고, 자신을 닮은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이모라는 공동체 속에서 잘 자라줬다. 아이들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대 초반을 지나 우리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것처럼 아이들도 결혼해서 올망졸망 자신을 닮은 자식들을 낳았다. 인생의 마디마디의 변곡점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여정과 자식들의 여정이 오버랩되면 흐뭇함과 동시에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자식들이 낳은 그 자식들이 할머니의 친구들을 매개로 그들도 같이 길을 걸어가면 좋겠다는 소망을 은근히 품어본다.


 40년 동안 함께 걸어왔으니 배우자보다 더 오랜 시간의 탑을 쌓아 온 것이다. 인생에서 서로를 뺀다면 아마 3분의 2 이상은 싹둑 잘려 나갈 것이다. 그 시간들을 빼 버린다면 우리의 청춘은 어디서 찾을 것이며, 서로의 의미는 어디에 새겨야 하며, 무엇으로 삶의 기쁨을 얘기할 수 있을까. 허물어지지 않게  단단히 쌓아 올린 시간의 탑이 우리의 평면적 삶을 입체적으로 양각(陽刻)해 놓았으니 어찌 소중하고 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푸르던 시간에 만나 아름다운 저녁놀이 깃드는 이 시간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잇대고 있다.


 우리 남은 친구들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것에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혜경이 친구50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밝고 긍정적인 친구였다. 특히 노래를 불러서 우리는 캠퍼스에 앉아 그녀의 노래를 자주 청해 듣곤 했다. 3대 독자의 집에 시집가서 애가 생기지 않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10년 만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얻은 아들 하나. 귀한 아들의 중학교 졸업도 보고 암으로 눈을 감아야 했던 친구. 인생의 처음으로 친구의 죽음을 봐야 했던 두려움과 슬픔은 지금도 가슴을 서늘케 한다.  6명의 젊은 패기들은 늙지 않을 알았는데, 아니 젊음의 오기와 오만의 무기만 있으면 죽음도 피해 가리라 생각했는데, 세월은 우리의 오만 앞에 늙음과 죽음을 데려다 놓았다. 이제는 늙음도 죽음도 받아들이며 백발의 세월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그녀의 빈자리는 여전히 쓸쓸하다.


우리가 공들여 쌓아 올린 시간의 탑.

누구도 허물 수 없고 

허물어서도 안 되는 빛나는 탑이다.

이제는 비록 낡고 헤지고 변형되고 이끼가 끼고 누렇게 변한 탑이 되었다 할 지라도 

그 속엔 사람이 있고, 인생이 있고, 역사가 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폐기 처분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친구들이여.

병도 아픔도 잘 넘기고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

앞으로는 가볍게 그러나 품위는 잃지 말고 

우리답게 또 걸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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