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중요합니다

feat. 보험보험이 말한 나의 110만 원짜리 진실

by 하이라이라카페

ㅡ너무 보험 좋아하는거 아녜요?


백수 시절, 가고싶지도 않은 회사를 일단 붙어놓고 다른 회사에 계속 면접을 보러다니는 내게 K는 말했다. 가고싶은 회사에 당연히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내겐 돈 버는 수단이 한 군데 있다는 확신이 중요했다. 돈은 보험이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몸이 아플 때 나를 치료할 수 있는 돈, 내가 푹 쉬어도 될 수 있는 비상금, 또 돈, 그렇게 보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척수 종양을 진단 받고 걱정된 건 돈이었다. 척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돈 끊기면 어떡하지.' '대출빚은 어쩌지.' '옥정 분양은?' '수술비는? 500은 나오려나?' 머릿속엔 돈돈돈이 맴돌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엘지화학은 무급 휴가로 병가를 냈던 것 같다. 복직해서도 성과급은, 내가 휴직한 날을 제외하고 칼같이 일수를 계산되어 들어왔더랬다. 월세 정산하는것처럼.


MRI 찍는 데만 100만 원. 시작이었다. 다행히 보험 설계사는 말했다. "비싸도 일단 찍어요. 실비 되면 다 돌려받을 수 있어요." 그 말이 용기를 줬다.

보험은 대화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남자친구였고, 지금은 남편인 사람과 제주도에 갔을 때다. 조그만 카페에서 나눈 재테크 이야기. 만약 그 친구가 보험 설계사를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진통제만 먹고 버텼을지도 모른다.


ㅡ 왜 이 집을 구했어요?

ㅡ 싸서요


내 쏠메이트이자 인화원 룸메, 동네 친구, 지금은 1년에 한 두번밖 못 보는 그리운 전 직장 동료 W는 그 대화를 기억에 남아했다. W은 그래도 방은 깔끔해야한다,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기준이 있었지만 내게는 싼 게 제일이었다. 프랑스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돈이 없어서 조기 귀국을 한 경험때문이었을까. 피부로 와닿는 돈을 나름 절약하며 모았지만,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파서 큰 돈을 쓰는 건 또 처음이었다. 너무 아까웠다.


의사쌤은 말했다. MRI를 찍는 먼 병원은 싸고, 가까운 병원은 비싸다. 귀찮아서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다. 픽업비만 10만 원 들겠군, 하고 있는데 이미 병원 차가 오고 있었다. 물리치료 침대에 누워 있는데 시원하지 않고 아팠다. 안마인가 싶었지만, 고통이었다.


MRI 기계 안, 도넛 모양 장비에 들어가며 발라드가 흐르는 헤드폰을 받았다. 멜로디는 위로가 되었다. 30분간 허리, 또 30분간 엉덩이. 골반이 찌릿하게 아팠다. 그래도 참고 눕자. 영상 흔들리면 또 찍어야 하니까.

등에 뭔가 있다며 조영제를 넣겠다고 했다. 아, 돈 또 나가겠군. 말 없이 진행됐다. 검사 끝나고 10만 원 더 냈다. 씁쓸했다.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MRI 판독 결과, 종양이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 내가 연구하던 암에 내가 걸릴 줄이야. 작년 여름 파리에서도 허리가 아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110만 원 주고 진실을 샀다. 아픈 진실이지만 소중한 진실.


강서구에 살아서 척추 병원을 고를 수 있었다. MRI 결과지에 적힌 글자. "Intradura, extramedullary tumor."

회사에서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MRI 비용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디스크일 때는 안 됐는데 진단명이 있어서 됐다. 복지란 게 이렇게 절박한 순간에 진짜 빛을 발한다. 암은 아니라서 수술비는 지원을 못 받았다. 보험이라 종양이든 암이든, 심각성이 아니라 진단명에 따라 칼 같았다. 암은 Cancer로 Cancer은 Tumor와 달리 전이가 있다. 아픈 건 오히려 더했고, 내 쪽이 희귀병이라 맘고생도 몇 배는 했는데, 서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병원비 정산하려고 다시 서류를 챙긴다. 뭔가 굽신굽신하게 된다. 동냥하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그 돈 덕분에 잠깐이라도 패기가 생긴다. 전문가처럼 일 잘하고, 컨텐츠도 잘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치킨 쿠폰보다 더 좋은 의료비 지원. 고맙습니다, 엘지화학. 그런데 또 이런 회사가 내가 수술이 잘 끝나고 완치했어도 나를 복직 결재를 빠꾸시켰다는 건 또 반전.


애니웨이, 이놈의 돈 하면서도 보험 좋아라 했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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