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면 큰 일을 해야 된다고 난린지
ㅡ 꽈학 꽈학. 카이스트 거위들은 그렇게 운다면서요?
동료의 이런 인사치례는 애교다.
ㅡ 카이스트면 더 큰 일 해야하는거 아닌가?
최종 면접에서 대기업 대표가 너스레를 떨며 물었던 말이었다.
ㅡ 아니 카이스트면, 국가를 위해 뭔가 해야하는 거 아닌가 해서요
남편 군 동기이자 이웃사촌인 강형이 했던 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버린 카이스트 동기들을 떠올린다. 마음 안에서 그들을 되새긴다 속으로 긴 독백을 한다.
동굴에 들어간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카이스트면 연구해야된다? 백이면 다 백 연구원을 해야한다?' 카이스트 프레임이다. 물론 카이스트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내는 건 사실이다.
연구는 쉽지 않다. 돈도 별로 안 준다. 그래서 학계에서 성과를 꾸준히 내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다. 나는 매 학년 여러 랩(연구실)을 다니며 연구 주제를 바꿔봤지만 연구는 재미가 없었다. 논문 서치를 하고 실험을 계획하고 보면 가설부터가 잘못됐을 때도 있다. 내 친구 현철은 석사때 곧잘 생물학을 전산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랩에 있었다. 연구를 좋아했지만 교수가 별로였다.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시달리다가 결국 연구를 그만뒀다.
카이스트 남학생들이 한 번쯤 고민하는 건 군대를 가느냐, 군대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느냐다. 그 친구는 군대보단 대학원이 나을 것 같아 대학원으로 갔지만, 교수를 잘못 만나 도중에 민간 업체에 병특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또 온갖 다른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없는 월급도 깎이고 매일 퇴근도 새벽 한 시넘어 했다.
ㅡ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다 사기야.
우리학교 같은 과를 나온 동기가 스타트업에 오래 있다가 삼성전자로 간 친구가 한 마디로 일축한 스타트업 경험담다. 스타트업에서 구현하려는 기술은 수익을 내기가 그만큼 힘들기에, 큰 포부를 갖고 시작한다. 그러나 그걸 실현하기 어렵다는걸 실무자들은 직감적으로 한다. 특히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결국 현철은 B*B라는 회사에서 2년도 못 채우고 공익으로 빠졌다. 그게 그 사람 잘못인가? 아니다. 그 친구는 다른 내 동기처럼 위트있고, 명석한 친구인데 곁사람을 잘못 만나 꼬였다. 많은 악재가 겹쳤다고밖에 할 수 없고, 의사가 된 친구와 만나면 그 친구를 동정한다.
다른 동굴로 들어간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스타트업을 같이 창업했던 친구 S
카이스트는 스타트업 프로그램이 많다.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기회를 많이 주고 실패할 기회를 많이 준다. 나와 함께 창업했던 S는 매력적인 친구였다. BCG에서 인턴할 땐 회사 안에서 누굴 만났던 것 같고, 카이스트로 유학 온 외국인 남자와도 사귀기도 하고, 증권회사에서도 썸 타는 남자가 있었다. 데이트하거나 만나는 사람들 얘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말을 아주 예쁘게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동굴에 있다. 이유는? 많은 일들이 있으니까 보통 사람들처럼 이런 저런 상처로 이젠 나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물론 카이스트를 나와 연쇄 창업을 하고 삼양기업에 보직을 꿰찬 카이스트 동문도 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면접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두문불출하는 카이스트 친구도 없지 않다. 조용히, 프사를 지운 채 연락도 받지 않고, 랜선 안부만 오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잘 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의사 친구들
카이스트생도 당연히 여느 사람들처럼 대출을 끼고 살아간다. 의사 길로 빠진 은숙은 전문의를 거쳐 펠로우까지 하여 내과의 페이닥으로 일하고 있다. 그 친구는 의대를 다니면서도 음식점에서 알바를 했다. 서른 여섯이 된 그녀는 저금리라서 전략적으로 학자금을 갚지 않았다.
화숙이란 영상의학과 과 후배도 있다. 바이오및뇌공학과는 이름도 길지만 무튼 특이하고 소수라서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가웠다. 회사에서 소개글을 보고 선톡을 날려 학번은 멀지만 밥을 같이 먹었다. 화숙은 나같이 뇌를 연구하고 싶어 우리과에 진학했다. 아산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하다가 지금 전문의 사태때문에 사기업으로 흘러 온 것이었다. 우리는 신나게 그때 그시절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그가 장학금을 뱉어냈다는 얘길 듣게됐다. 장학금을? 학비를 뱉어냈다고? 의사가 됐다고 해서?
은숙은 적어도 09학번이기에 우리가 학사때 받았던 장학금을 뱉어내진 않았을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카이스트 학비가 없는 걸로 알았지 모든 전학생이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는 걸 나중에 S 자소서를 받아봐서 알았다. 그만큼, 우리는 아무 계약서를 쓰지 않고, 장학증서도 받지 않고 입학한다.
카이스트는 육관사관학교나 교대와는 결이 다르다. 이미 몇 십년에 걸쳐 백이면 백, 군인이나 교사를 배출하는 것처럼 연구원만 배출하지 않았다. 다른 보통의 학교처럼 의사, 변호사, 연구원, 직장인, 사업가 등 자유롭게 배출했다. 앞으로 너네는 꼭 연구원만 배출해내라. 라는 것도 할 수 없다. 국익에는 또 사업을 해서 고용 창출하는게 훨씬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니 말이다.
박정희 때 과학인을 키우자고 카이스트를 세웠다지만, 과학은 엘지화학도,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에서도 한다. 과학은 의사가 되어서도 할 수 있다. 과학은, 부엌에서도 한다. 그런데 왜, 무슨 잣대로 공무원들은 카이스트생들에게 다시 장학금을 뱉어내라고 하는가? 차라리 서울대처럼 조금이라도 돈을 받고 이런 뒤끝을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될 줄도 몰랐다. 이게 과학인을 키우겠다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사가 되라고, 치과 의사가 되라고, 법조인이 되라고 대학원을 열어준 것은 나라인데. 왜 그 피해를, 그 쪽 길을 걷는 사람이 피해를 봐야하는가. 심지어 화숙은 억대 연봉을 받는 팀원들이 있는 의료 스타트업에서 "최저 시급정도 될걸요?"라며 박봉인 걸 알았다. 전문의는 돈이 없다.
"국가를 위한 직업군이 아닐 시에, 학자금을 반납한다."
"더 큰 일을 도모한다."
이런 말이 써져있는 카이스트 포탈 공지문은 단 한 군데에도 없다. 다만 우리 10학번 시절에는 서남표 총장의 "장짤"이 있긴 하였다. 평균 학점이 3점 이하면 장학금이 짤리는 제도였다. 난 연극동아리 연습이 새벽 한시에 끝나고 24시간인 교양분관 도서관에가서 새벽 3시쯤까지 매일 공부를 했다. 선행학습을 했던 과고 애들을 따라잡긴 힘들었다. 물리는 C인가 맡고. 그때 챗GPT만 있었어도 물어가면서 이해했을 텐데, 그냥 영어 원서를 독파해야 했다. 21학점을 소화 가능한 15학점으로 낮추면서 그나마 장짤을 면하게 되었다.
의사도 논문을 쓴다. 케이스 스터디도 한다. 사회적 기여도 크다.
평범한 카이스트 사람도 여러 걱정과 불안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민폐가 아닌 것에도 노력과 에너지가 든다.
카이스트라고 가스라이팅 좀, 제발 그만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