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사랑 8
수진의 편지4
준호 오빠,
원고를 읽었어요.
단번에 읽었어요. 다섯 매짜리라 금방이겠다 했는데, 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또 읽었어요. 두 번째는 더 천천히. 세 번째는 오빠 목소리로 읽어봤어요. 청년부 시절 오빠 목소리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해요. 조금 낮고, 서두르지 않던 목소리. 그 목소리로 읽으니까 글이 또 달랐어요.
오빠, 글이 참 좋아요. 그러니까 20년 동안 마지막 페이지가 기다려졌겠지요.
그런데 나는 글보다 먼저 이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이 이런 외로움 속에서 이 글을 썼구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불을 끄고, 혼자 아침을 여는 그 시간을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었구나.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상처를 언어로 꿰매는 사람이라는 걸, 오빠 글에서 다시 알았어요.
부끄럽다고 했지요. 하지만 오빠, 이 글에 부끄러울 것은 하나도 없어요. 진짜인 것은 부끄럽지 않아요.
둘째 아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요.
축하해요, 라는 말. 그 짧은 말이 얼마나 큰 말인지. 나는 그 말을 오빠 입에서 들은 것처럼 따뜻했어요. 오빠가 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다는 것도, 기쁘면서 미안했다는 것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나는 사실 읽으면서 조금 부러웠어요. 솔직히.
우리 딸은 아직 거기까지 오지 못했어요. 지난번 다녀간 뒤로 전화가 뜸해졌어요.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건지, 아니면 단지 바쁜 건지. 나는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재촉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리면 올 거라고, 아이도 제 나름의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어요.
그런데 오빠 편지를 읽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어쩌면 나도 아이에게 더 많이 열어줬어야 했는지 몰라요.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어떤 밤들을 보냈는지. 나는 늘 괜찮은 엄마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걱정 끼치지 않는, 잘 견디는, 혼자서도 충분한. 그런데 그게 오히려 아이한테 나를 멀게 만든 건 아닐까요.
딸이 조심하라고 한 건, 어쩌면 그냥 낯설어서 한 말일 수도 있어요. 오빠 말처럼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요. 나는 그 말을 믿어볼게요.
오빠가 보내준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혼자 산다는 것은 거울 앞에 서는 일과 같다. 꾸밀 수도, 외면할 수도 없이 그냥 거기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피아노 앞에 앉았어요. 거울 앞에 서는 일. 피아노도 그런 것 같아요. 치다 보면 내가 다 드러나요. 속임이 없어요. 손이 기억하는 것, 몸이 기억하는 것, 감정이 기억하는 것이 전부 나와버려요.
그날 나는 오랫동안 쳤어요. 슈베르트도, 쇼팽도, 그냥 손 가는 대로. 치다가 어느 순간, 청년부 시절에 우리가 같이 하던 곡 멜로디가 나왔어요. 의식한 게 아닌데, 손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손을 멈췄어요.
참 이상하지요. 머리는 잊어도 손은 기억하더라고요.
그 멜로디를 다시 천천히 쳤어요. 오빠 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박자를 맞추던 그 시간이요. 우리 참 잘 맞았었지요. 음악도, 템포도.
오빠,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점점 가벼워져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오빠 편지를 받으면서 오히려 무게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나쁜 무게가 아니에요. 뿌리 내리는 것 같은 무게요. 단단해지는 것 같은.
오래 혼자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얇아지거든요.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 내가 여기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오빠가 편지를 쓸 때마다 수진아, 하고 부르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아 내가 여기 있구나, 해요.
그 '수진아' 한 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요.
오빠, 봄이 오면 만나요.
겨울이 지나고, 편지가 조금 더 쌓이고,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면. 그때 만나요. 부담 없는 곳에서, 부담 없는 시간만. 오빠가 먼저 제안했던 그대로요.
나는 이제 그 문을 열 준비가 조금씩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천천히요.
그 사이에 편지 계속 써줘요.
2024년 12월 겨울 입구에 서서
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