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2)
대표실의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등에 닿는 사무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몇 도쯤 차갑게 느껴졌다. 넥스트 데이터의 핵심 기둥인 SI 1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노트북으로, 그리고 내 굳게 다문 입술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저 닫힌 문 너머에서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 결정이 내려졌음을.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자리로 돌아와 전원을 켰다. 화면이 밝아지자마자 내가 한 일은 메신저를 끄는 것이었다. 쏟아질 팀원들의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빈 문서를 하나 열었다. 제목은 '신규 사업 전환에 따른 리스크 검토 및 제언'.
박 대표는 '직감'의 신봉자였다. 그는 늘 '데이터는 과거의 잔상일 뿐이지만, 직감은 미래를 꿰뚫는 화살'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10년 전 그가 SI 사업을 시작해 이만큼 키워온 것도 분명 그 동물적인 감각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말하는 게임 사업은 '직감'의 영역을 넘어선 '망상'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경영자의 직감이 위대해질 때는 그것이 처절한 검증의 과정을 거쳐 확신으로 변할 때뿐이다. 하지만 그는 검증이라는 지루한 과정을 거치기엔 마음이 너무 급해 보였다.
"팀장님, 진짜로 게임 하신대요? 아까 사내 게시판에 신규 사업팀 채용 공고 떴던데..."
옆 자리 이 대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이 대리는 우리 팀에서 가장 손이 빠른 개발자이자,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아빠였다. 그의 눈에 서린 불안감을 마주하는 것은 고문이었다.
"일단 결정은 그렇게 났어. 하지만 내가 다시 의견을 정리해서 전달할 거야. 너무 동요하지 마."
'동요하지 마'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내가 지금 쓰려는 이 문서는 박 대표의 결정을 단순히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전속력으로 암초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배 위에서, 항해사인 내가 '우리는 지금 암초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지에 남기는 행위였다.
나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 회사의 현금 흐름을 엑셀로 정리했다. 현재 진행 중인 SI 프로젝트의 잔금 지급 일정과 게임 개발에 투입될 초기 비용, 그리고 박 대표가 영입하겠다는 스타급 인력들의 예상 연봉을 대조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게임이 출시되어 첫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최소 18개월. 그사이 회사는 현재 유보금의 2배가 넘는 현금을 태워야 했다. 그것은 SI 팀의 고혈을 짜내야만 가능한 수치였다.
나는 오후 내내 보고서를 다듬었다. 박 대표가 내린 '결정'에 대해 나는 '설명'을 하려 했다. 왜 이 결정이 위험한지, 왜 우리가 가진 기술 스택으로는 무리인지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들을 촘촘히 박아 넣었다. 자바(Java) 기반의 서버 개발자들이 유니티(Unity) 엔진을 익히는 데 드는 리스크, B2C 마케팅의 천문학적인 비용 지출 구조, 그리고 기존 공공기관 고객사들의 이탈 가능성까지.
하지만 보고서를 완성해갈수록 나는 기묘한 패배감에 젖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과연 '설득'인가, 아니면 단순한 '설명'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흔히 자신이 충분히 설명했으니 상대가 설득되었을 것이라 착각한다. 반대로 참모는 자신이 충분한 근거를 들어 설명했으니 리더가 생각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박 대표가 오전에 나에게 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일방적인 '설명'이었다. "시장이 변하고 있다", "SI는 한계다"라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을 뿐,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과 의구심을 녹여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 역시 데이터를 들이밀며 그에게 '설명'을 하고 있을 뿐, 그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그 위험한 열망을 잠재울 '설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밤 9시, 사무실에는 나만 남았다. 나는 완성된 보고서를 박 대표의 메일로 전송했다. 메일 제목 앞에 [필독 부탁드립니다]라는 머리말을 붙이려다 지웠다. 대신 [SI 1팀 강진우 팀장 의견서]라고 담백하게 적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것은 반대의 기록이다. 나중에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때, "거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비겁하게 외치기 위한 면피용 문서가 아니다. 리더가 직감이라는 환각에 빠져 항로를 이탈할 때, 적어도 누군가는 나침반이 고장 났음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증거였다.
다음 날 아침, 박 대표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그는 내 자리를 지나치며 짧게 목례를 건넸지만, 보고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신 그는 1시간 뒤 나를 다시 불렀다.
"강 팀장, 보고서 잘 읽었어요. 아주 정밀하더군. 하지만 말이야, 강 팀장이 놓친 게 하나 있어. 사업은 수식으로만 하는 게 아니야. 이 보고서는 우리가 '왜 안 되는지'는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낼지'에 대한 설득력은 없더군."
그의 말은 예리했다. 나는 그를 막으려 했고, 그는 나를 끌고 가려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논리를 '설명'했지만, 단 한 순간도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설득은 상대의 논리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의 두려움이나 열망에 공감하고 그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어야 했다.
박 대표는 내 보고서를 옆으로 밀어두고 책상 위에 놓인 화려한 게임 기획서를 집어 들었다.
"나는 강 팀장의 그 꼼꼼한 '설명'이 우리 게임의 보안과 시스템 안정성을 지켜줄 거라고 믿어요. 이제 그 논리들을 우리 게임을 '성공시키는 쪽'으로 써주면 안 되겠나?"
그는 여전히 나의 검증을 자신의 직감을 보조하는 도구로만 보고 있었다. 나의 반대는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내가 남긴 그 기록이 훗날 나에게 면죄부가 될지, 아니면 무능의 증거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기록은 나중에 '반대하던 사람조차 결국 참여하게 만든 리더의 결단'이라는 무용담의 배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비참한 예감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이에 '설명'은 넘쳐났으나 진정한 '설득'은 실종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퇴근길, 아내에게서 "오늘도 늦어?"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차마 "우리 회사가 조만간 망할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조만간 회사를 그만둘지도 몰라"라는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대신 "맛있는 거 사갈게"라고 적으며 핸들을 꺾었다.
밤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북극성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경영 수업 제2강] 설명(Description) vs 설득(Persuasion)
많은 리더와 참모가 논리적인 근거를 나열하는 '설명'이 곧 상대를 변화시키는 '설득'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경영의 현장에서 논리는 행동의 근거일 뿐, 행동의 시작은 마음의 동요에서 비롯됩니다.
ㅇ설명: 사실, 데이터, 논리를 전달하는 이성적인 과정. "무엇이 옳은가"에 집중합니다.
ㅇ설득: 상대의 가치관과 감정에 호소하여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감성적·통합적 과정.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에 집중합니다.
설명은 이해를 낳지만, 설득은 행동을 낳습니다. 박 대표는 비전을 설명했지만 팀장을 설득하지 못했고, 강 팀장은 리스크를 설명했지만 대표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데이터가 완벽할수록 설명은 명확해지지만, 때로는 그 명확함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려 설득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참모는 리더의 직감이 가진 '오류'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리더의 '열망'을 안전한 항로로 돌려놓는 설득의 기술을 발휘해야 합니다.
자기성찰 포인트 (강 팀장의 관점):
강 팀장의 보고서는 리더를 '가르치려' 한 것은 아닐까요? 리더에게 "당신이 틀렸다"는 설명은 가장 강력한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리더의 직감을 인정하되, 그 직감이 현실이 되기 위해 필요한 '안전장치'로서 자신의 검증을 제안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라면: 지금 상대에게 당신의 옳음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설득'을 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