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3)
월요일 아침의 사무실 공기는 평소보다 눅눅하고 무거웠다. 주말 사이 박 대표는 전 직원에게 예약 메일을 보내두었다. 월요일 오전 10시, 대회의실. 제목은 ‘넥스트 데이터의 새로운 도약: 비전 2026’. 탕비실에서 마주친 팀원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평소보다 진한 농도의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내 눈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은 어떤 고함보다도 시끄럽게 내 귀를 때렸다. 팀장인 나조차 설득당하지 못한 미래가, 이제 전 직원의 머리 위로 쏟아질 시간이었다.
10시 정각, 대회의실에 전 직원이 모였다. 박 대표는 평소보다 몸에 딱 붙는 남색 정장을 입고 단상에 섰다. 그의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화려한 원색의 캐릭터들과 ‘Global No.1 Gaming Platform’이라는 문구가 위풍당당하게 떠 있었다. 우리 회사가 지난 5년간 공공기관의 낡은 서버실을 드나들며 쌓아온 ‘데이터 전문 기업’의 로고는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박 대표는 상기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전환점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우리가 SI 사업을 통해 닦아온 기술력은 이제 거대한 임계점을 넘으려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남의 시스템을 대신 만들어주는 하청업체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저들의 일상을 점령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박 대표의 목소리는 대회의실 스피커를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지난주 영입한 게임 기획자와 총괄 이사를 한 명씩 소개하며 그들이 이전에 참여했던 ‘대박 성공작’들의 이름을 읊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고개를 숙였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기존 개발자들의 표정은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박 대표는 ‘폭발적 성장’, ‘J-커브’, ‘스톡옵션의 신화’ 같은 단어들을 마치 마법의 가루처럼 뿌려댔다. 그의 연설은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었고, 적어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는 이미 승리의 깃발이 꽂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단상 아래, 맨 뒷줄에 앉은 5년 차 백엔드 개발자 박 대리에게 머물렀다. 그는 박 대표가 ‘글로벌 진출’을 외칠 때마다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 대리는 지난 3년간 우리 회사의 가장 까다로운 지방세 정보 시스템 DB를 홀로 책임져온 친구다. 그에게 게임 캐릭터의 타격감이나 확률형 아이템의 밸런스는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만큼이나 멀고 낯선 것이었다. 박 대표의 화려한 수식어가 허공을 가를수록, 기존 직원들의 어깨는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비전에 대한 압도가 아니라, 철저한 소외였다.
“자, 질문 있습니까? 우리의 이 위대한 여정에 동참할 준비가 되셨나요?”
박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청중을 둘러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것은 동의의 침묵이 아니라 거부의 침묵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체념’의 침묵이었다. 리더는 질문이 없다는 것을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해석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단상을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팀원들의 뒷모습에서, 이 조직을 지탱하던 보이지 않는 신뢰의 끈들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를.
회의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메신저 알람이 비명처럼 울려댔다.
[팀장님, 진짜 게임 만드는 건가요? 그럼 저희가 하던 프로젝트들은요?]
[게임 쪽 새로 온 분들 연봉이 저희보다 1.5배 높다는 게 사실입니까?]
[저 퇴사 고민 중입니다. 전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여기 온 게 아니거든요.]
질문들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팀장으로서 그 화살들을 막아낼 방패가 없었다. 나 역시 동의하지 못한 미래를 팀원들에게 설명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박 대표의 방을 찾았다. 이번에도 그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대표님, 방금 미팅 말입니다. 직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차갑습니다.”
박 대표는 태블릿으로 실시간 주식 차트를 확인하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조금 전의 흥분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대표님. SI 인력들은 자신들이 쓸모없는 구세대가 된 것 같다고 느낍니다. 게임 팀과의 보상 체계 차이, 그리고 본인들의 커리어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박 대표는 태블릿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에 짜증이 서렸다.
“강 팀장, 당신은 너무 신중해서 탈이야. 지금은 전시에요. 전쟁 중에 장군이 진격을 명령하면 군사들은 뛰어야지, 왜 저 산을 넘어야 하는지 토론하고 있을 겁니까? 합의? 그런 건 배부른 소리에요. 일단 결과가 나오면 다들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내가 그들을 다 먹여 살리겠다는데 왜 반대만 합니까?”
“대표님, 명령만으로 움직이는 건 군대지 회사가 아닙니다. 대표님 혼자 깃발 들고 달린다고 배가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노를 젓는 건 저 친구들입니다. 저들이 노를 놓아버리면 이 배는 그냥 표류하는 겁니다.”
박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피로와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는 조율형 리더(Alignment Leader)를 우유부단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듯했다. 조율형 리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 팀의 역량과 비전의 접점을 찾아내고, 구성원들이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납득하게 만든다. 속도는 느릴지 모르나,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파괴력은 돌격형 리더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박 대표는 그 소중한 과정을 생략해버렸다.
“대표님, 혼자서 깃발을 든다고 군대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뒤를 보십시오. 아무도 따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결단이 아니라 고립입니다.”
박 대표는 대답 대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는 자신의 고독을 리더만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결국 주인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 하지만 경영은 드라마가 아니다. 리더의 잘못된 확신이 조직의 객관적인 역량과 충돌할 때, 그 피해는 오롯이 현장에서 발을 구르는 직원들의 몫이 된다.
오후가 되자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팀의 핵심이자 내 오른팔이었던 정 선임이 사직서를 들고 내 앞에 섰다.
“팀장님, 저 못 하겠습니다. 대표님 말씀 듣는데, 제가 여기서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어요. 우리가 5년 동안 밤새워 만든 시스템들을 ‘돈 안 되는 하청’ 정도로 치부하시는데, 더 이상 이 조직에 제 미래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정 선임의 눈에는 깊은 배신감이 가득했다.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어떤 미사여구로도 리더가 뱉어낸 무시의 언어를 덮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박 대표는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칼을 휘둘렀고, 그 칼날에 가장 먼저 베인 것은 조직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사람’이었다.
그날 밤, 나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박 대표가 보낸 비전 선포서 메일을 다시 읽어 보았다. 화려한 그래프와 장밋빛 전망들이 가득했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가 함께 흘린 땀방울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오직 리더의 개인적인 야심만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확인했다. 설득이 멈춘 곳에서 정치는 시작되고, 합의가 사라진 곳에서 조직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화려했지만, 내 마음속의 넥스트 데이터는 이미 어두운 심해로 가라앉고 있었다. 리더의 결단이 조직의 동의라는 엔진을 잃었을 때, 배는 관성으로 잠시 움직일 뿐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그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내일 아침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언제 설득을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박 대표의 대답은 ‘지금’이었지만, 나의 대답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였다. 하지만 이 평행선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임을,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인 정 선임의 빈 의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경영 수업 제3강] 돌격형 리더(Charge) vs 조율형 리더(Alignment)
리더의 결단은 고독하지만, 그 고독이 '독선'이 되는 순간 사업은 악수로 치닫습니다.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방향으로 움직일 '동력'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ㅇ돌격형 리더(Charge):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돌파구를 찾습니다. 속도는 빠르지만, 조직의 숙련도나 현실을 무시할 경우 내부 붕괴를 초래합니다. (박 대표의 현재 모습)
ㅇ조율형 리더(Alignment): 비전을 구성원의 가치와 정렬(Align)시킵니다.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 길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직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합니다.
고독함은 리더의 훈장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신호입니다. 리더가 자신의 결정이 고독하다고 느낄 때, 그것은 대개 주변과의 소통이 끊겼거나 조직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단(Decision)은 리더의 몫이지만, 실행(Execution)은 조직의 몫입니다. 조직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단은 추진력이 아니라 저항력만 키울 뿐입니다.
자기성찰 포인트 (강 팀장의 관점):
강 팀장은 박 대표의 '고독'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까? 무작정 '악수'라고 비판하기 전에, 리더가 느꼈을 생존에 대한 공포에 공감하며 '조율의 기술'을 먼저 제안했다면 어땠을까요? 비판하는 참모는 많지만, 리더의 고독을 실행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조율자는 드뭅니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결단은 조직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분산'시키고 있습니까? 당신은 외로운 영웅입니까, 아니면 무책임한 선장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