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4)
박 대표의 ‘고독한 결단’이 선포된 이후, 사무실은 묘한 활기로 넘쳤다. 아니, 그것을 활기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비명이 들리지 않는 아우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무실의 불은 꺼질 줄 몰랐고,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빌딩 숲 사이에서 우리 층만은 등대처럼 밝게 빛났다. 배달 음식 봉투가 복도 구석에 쌓이고, 개발자들의 기계적인 타자 소리가 정적을 메웠다. 겉으로만 보면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열기의 기저에 깔린 서늘한 공허함을 보았다.
“팀장님, 이번 주에만 제가 처리한 티켓이 40개가 넘습니다. 게임 캐릭터 스킬 쿨타임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전 공공기관 시스템 보안 패치까지... 그런데 말이죠, 제가 지금 뭘 만들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 팀에서 가장 꼼꼼하기로 소문난 최 대리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내 자리로 찾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에너지 음료 캔이 성곽처럼 쌓여 있었다. 그의 말은 우리 조직이 처한 비극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일(Job)’의 홍수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
일(Job)이라는 것은 무서운 속성을 지녔다. 그것은 명확한 철학이나 방향이라는 둑이 없으면, 스스로를 무한히 복제하며 인간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괴물이 된다. 박 대표는 끊임없이 일을 가져왔다.
“이 기능도 추가해봐”, “저쪽 게임에서 잘 나가는 시스템인데 우리도 도입하자”, “기존 고객사에는 적당히 대응해주고 게임 쪽에 집중해.”
그의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우리에겐 새로운 ‘할 일’이 생겼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업(Work)’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업’이란,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이자, 우리가 세상에 제공하는 유일무이한 가치였다. 넥스트 데이터가 그동안 SI 사업에서 자부심을 가졌던 업의 본질은 ‘복잡한 데이터를 투명하게 연결하여 행정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었다. 비록 지루하고 느린 작업이었지만, 우리가 짠 코드 한 줄이 시민들의 세금 행정을 정확하게 만들고 공무원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밤을 새우며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알지도 못하는 게이머들의 말초적 재미를 위해 확률형 아이템의 수치를 0.1% 조정하고,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화려한 이펙트를 넣는 일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는 일일지 모르나, 데이터의 정합성과 신뢰를 업으로 믿고 살아온 우리 팀원들에게는 영혼 없는 노역에 불과했다.
“최 대리,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일단 결과가 나와야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나조차 믿지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최 대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 대리는 대답 대신 쓴 커피를 들이켰다. 그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어 있었다.
나는 박 대표의 방으로 향했다. 여전히 반쯤 열린 그 문 사이로, 그는 새로 영입된 게임 기획자들과 함께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온통 ‘리텐션’, ‘BM(비즈니스 모델)’, ‘가챠 확률’ 같은 용어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지난 5년간 공들여 쌓아온 ‘데이터 무결성’이나 ‘사용자 편의성’ 같은 단어들은 그 어디에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팀원들이 위험합니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박 대표 앞에 섰다. 그는 피곤한 듯 넥타이를 풀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강 팀장, 또 무슨 문제예요? 지금 다들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저기 게임 팀 좀 봐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잖아.”
“그게 문제입니다. 바쁘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겐 ‘일’은 넘쳐나지만 ‘업’은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왜 이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 게임이 우리 회사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 전문성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시키니까, 안 하면 도태될 것 같으니까 억지로 쥐어짜고 있는 겁니다. 이건 성장하는 조직의 열기가 아니라, 타들어 가는 양초의 마지막 불꽃 같아요.”
박 대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강 팀장, 당신은 항상 그게 문제야. 너무 철학적이고 너무 이상적이야. 업? 가치? 그런 건 배부른 소리예요. 당장 다음 달 월급 줄 걱정, 서버 비용 걱정하는 나한테 그런 한가한 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일단 매출이 나고 회사가 살아야 업도 가치도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과물이지, 고상한 철학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논리적으로 완결성을 띠고 있었지만, 현장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일’은 지시(Command)로 강제할 수 있지만, ‘업’은 공감(Empathy)을 통해서만 전이된다. 리더가 업의 본질을 놓치는 순간, 조직은 거대한 ‘잡무 처리 센터’로 변한다. 아무리 뛰어난 개발자라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 쓰레기라고 느끼는 순간, 그의 코드는 생명력을 잃는다.
실제로 우리 SI 팀원들이 짜내는 게임 로직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명세서에 적힌 대로 기계적으로 기능을 구현할 뿐, 이 게임이 유저에게 어떤 경험을 줄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반대로 새로 온 게임 팀원들은 기존 SI 시스템의 안정성이나 보안 규정을 무시하며 속도만을 강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고, 박 대표는 그 위에 다리를 놓는 대신 양쪽을 향해 더 빨리 뛰라고 채찍질만 해댔다.
어느 날 밤, 나는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야근 중인 한 개발자의 모니터에는 코드가 아닌 구인 구직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그는 내가 다가오자 황급히 창을 닫았지만, 그의 눈에 서린 서글픈 빛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가, 자신의 ‘업’이 이 무의미한 ‘일’의 반복 속에서 마모되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바빴다. 너무나 바빠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바쁨은 성장이 아니라 소모였다. 목적지 없이 노를 젓는 사공들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박 대표는 더 큰 채찍을 휘둘렀고, 더 많은 ‘일’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업’의 불꽃은 꺼져갔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나 역시 이 거대한 바쁨의 톱니바퀴 속에서 한 점의 부품으로 갈려 나가고 있었다. 넥스트 데이터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공유했던 그 단단한 소속감은 이미 증발해 버렸다.
일은 있었으나 업은 없었다. 이 짧은 문장이 우리 회사의 몰락을 예고하는 가장 잔인한 묘비명처럼 느껴졌다. 조직원들이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게 된 순간, 회사는 이미 서서히 멈춰 서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거대한 관성 때문에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 창밖으로 비치는 차가운 새벽달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경영 수업 제4강] 일(Job) vs 업(Work)
많은 리더가 '바쁨(Busy)'을 '생산성(Productivity)'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가치가 결여된 바쁨은 조직의 에너지를 낭비시키는 독이 됩니다.
ㅇ일(Job): 생계를 위해 수행하는 기능적 노동. 지시와 통제에 의해 움직이며, 보상이 유일한 동기입니다.
ㅇ업(Work): 자신의 일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존재 이유. 자발적 몰입과 자부심의 근원입니다.
업(Work)이 정의되지 않은 조직은 일(Job)의 홍수에 빠집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면, 구성원들은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영혼을 거둡니다. 즉, 시키는 것만 하는 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리더의 진정한 실력은 일을 배분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일에 숨을 불어넣어 '업'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자기성찰 포인트 (강 팀장의 관점):
강 팀장은 리더에게 '업'의 상실을 지적했지만, 정작 팀원들에게 새로운 '업'을 제안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나요? 리더가 방향을 잃었을 때, 중간 관리자인 팀장은 그 안에서라도 팀만의 작은 '업'을 정의해 주어야 합니다. 비판하는 관찰자로 남을 것인지, 대안을 만드는 조율자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1. 당신의 조직원들은 지금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업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2. 당신은 그들에게 '할 일'을 주었습니까, 아니면 '일의 의미'를 주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