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Courage)와 객기(Recklessness)

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5)

by 알록

밤 11시 30분. 현관문을 열자 훅 끼쳐오는 정적은 낮 동안 사무실에서 겪었던 소음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거실 등 하나만 켜진 채 아내는 소파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랩으로 씌워진 식은 찌개와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적힌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낮에 박 대표와 주고받았던 날 선 대화들, 정 선임의 사직서, 그리고 구인 사이트를 몰래 뒤적이던 팀원들의 뒷모습이 식은 찌개 위로 어른거렸다. 넥스트 데이터는 이제 내가 알던 그 회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도박장이었고, 나는 그 도박판에서 내 팀원들의 인생을 판돈으로 걸고 앉아 있는 무능한 딜러 같았다.


“왔어?”


아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잠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감춘 불안을 금세 읽어낼 것 같은 예리함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대학 시절 창업 동아리를 할 때부터 내 곁을 지켰던, 나의 가장 오랜 동료이자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였다.


“응, 좀 늦었네. 왜 안 들어가고 왜 여기서 자.”


“당신 얼굴 보고 자려고. 요새 계속 얼굴이 안 좋잖아. 회사에 무슨 일 있지?”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이제는 말해야 했다. 이 고민을 혼자 짊어지고 있기에는 배가 이미 너무 많이 기울어 있었다.


“지은아, 나 퇴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니,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시작하고싶어.”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내는 찌개를 데우려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섰다. 1초가 1분처럼 길게 느껴지는 정적 속에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보다 앞선 ‘공포’가 서려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퇴사? 이 시국에?”


“회사가 정상이 아니야. 박 대표님은 도박 같은 게임에 올인하고 있고, 내가 지켜온 팀원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있어. 거기 남아서 버티는 건 그냥 서서히 죽어가는 거랑 똑같아. 나, 예전부터 생각하던 아이템이 있어. 출판사랑 독자를 연결하는...”


“그만해.”


아내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그녀는 내 열변을 칼로 베어내듯 끊어버렸다.


“당신 제정신이야? 우리 집 대출금이 얼마인지 잊었어? 서윤이 내년에 학교 가. 당신이 말하는 그 ‘가치’니 ‘업’이니 하는 거, 우리 가족의 생존보다 중요해? 당신 혼자 사는 인생 아니잖아.”


“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 하겠다는 거야. 회사가 망해서 쫓겨나듯 나오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라고. 나 이거 숫자로 다 계산해봤어. 여기 좀 봐봐.”


나는 수첩과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아내는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엑셀 시트의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매달 25일이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라는 확신이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당신이 창업한다고 나갔다가 실패하면? 그때 가서 ‘미안해’ 한마디면 끝나는 거야? 우리는 길거리로 나앉아야 해. 당신 열정을 위해 우리 가족 전체를 판돈으로 걸지 마. 난 이 도박 찬성 못 해.”


아내의 목소리는 애원조로 바뀌었다.


“당신 지금 그거, 용기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엔 그냥 객기야. 박 대표님한테 인정 못 받으니까 홧김에 뛰쳐나오겠다는 객기라고.”


“객기라니! 나 이거 숫자로 다 계산해봤어. 여기 좀 봐봐. 출판 시장 규모랑 우리가 가져갈 수수료 구조...”


“그 숫자가 당신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대체할 수 있어? 아니잖아. 당신은 지금 '내가 맞고 박 대표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우리 가족 전체를 도박판에 올리겠다는 거야. 실력도 대안도 없이 부리는 그 고집, 그거 객기 맞아.”


그날 밤,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나는 내 꿈의 정당성과 불가피함을 설명했고, 아내는 현실의 무게를 들이대며 나를 몰아세웠다. 거실의 시계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벽 3시, 우리는 등을 돌린 채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나는 천장을 보며 자문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인간인가. 내 자아실현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괴물인가.


아내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나는 그녀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의 미세한 떨림이 침대 매트리스를 타고 내 등까지 전달되었다. 그 떨림은 내가 가진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무겁고 아프게 나를 짓눌렀다. 넥스트 데이터의 위기는 이제 내 집 안방까지 침투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서윤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온 아내가 커피 두 잔을 내려 내 앞에 놓았다.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밤새 생각해봤어.”


아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 여기서 말려도 결국 할 사람이잖아. 그 성격에 억지로 회사 다녀봤자 지옥일 거고. 그런데 나한테 ‘무조건 믿어달라’는 소리는 하지 마. 난 여전히 무섭고 당신이 원망스러워.”


그녀는 식탁 위에 놓인 내 수첩을 툭 쳤다.


“딱 1년이야. 당신이 부리는 그게 객기인지 용기인지, 1년 안에 숫자로 증명해. 1년 안에 당신이 말한 그 ‘숫자’들 중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때는 내 말 들어. 군말 없이 안정적인 직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그 사이엔 우리 집 예금은 절대 건드리지 마. 오로지 당신이 가져올 투자금이나 정부 지원금으로만 해.”


그것은 허락이라기보다 비장한 ‘거래’였다. 아내는 나에게 자신의 미래를 빌려준 셈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나온 것은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약속할게. 1년 안에 증명해낼게. 아 그리고 당장 퇴사하는 건 아니야. 잘 준비해서 할께.”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뒤에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이 말하는 그 ‘업’이라는 거, 진짜로 세상에 필요한 건지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거야. 허튼짓하지 마.”

마지못한 아내의 허락은 응원이라기보다 엄중한 경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가장 보수적인 투자자로부터 1년이라는 소중한 ‘시드 머니(시간)’를 투자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이 결정은 내 머릿속의 망상이 아니라, 반드시 숫자로 증명해내야 하는 현실의 무게를 가진 ‘창업’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럼에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제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제 이 싸움은 나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내 등 뒤에는 눈물 맺힌 아내의 약속과 서윤이의 미래가 매달려 있었다. 박 대표의 독단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정작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모함이 용기로 바뀌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결과’뿐임을, 나는 늦여름 아침의 습한 공기 속에서 뼈저리게 실감했다.



[경영 수업 제5강] 용기(Courage) vs 객기(Recklessness)

창업은 설득의 과정입니다. 가족을 설득하고 동료를 설득하고 투자자를 설득하고 고객을 설득해야 합니다.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예비창업자 강팀장의 첫발은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이해관계자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ㅇ용기: 리스크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숫자)을 가진 채 나아가는 힘.

ㅇ객기: 리스크를 무시하거나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기대어 자신과 주변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

가족은 가장 보수적인 투자자입니다.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시장의 냉혹한 투자자들은 결코 설득할 수 없습니다. 창업은 나를 찾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내가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를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업'을 지키기 위한 용기가 '생존'을 위협하는 무모함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의 계획을 숫자로 검증하십시오.


자기성찰 포인트 (강 팀장의 관점): 강 팀장은 아내의 1년 유예를 '승낙'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장 무거운 '채권'을 발행한 것과 같습니다. 1년 뒤, 강 팀장은 아내에게 어떤 성적표를 보여줄까요. 강팀장의 판단은 옳았을까요.


당신이라면: 오늘도 당신은 "아자, 아자! 우린 할 수 있어!!" 파이팅을 합니다. 그건 용기입니까 객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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