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와 모두의 문제

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7)

by 알록

분당의 작은 오피스텔, 창밖에는 칼바람이 불었지만 방 안은 4명의 숨소리와 노트북 팬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했다. 퇴사 후 한 달, 우리는 매일 아침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긴다"는 비전을 낭독하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정작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 앞에서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MiriBook' 아이템에 대해, 가장 먼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은 이번에 개발 파트로 합류한 J였다. J는 넥스트데이터 시절부터 시스템 아키텍처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꼼꼼하고 논리적인 개발자였다. 동시에 뜬금없이 마케팅 아이디어도 툭툭 던지던 독특한 친구였기에 기억에 남았다.


"Brown, 솔직히 여쭤볼게요. 출판 시장, 그거 사양 산업 아닌가요? 네이버, 유튜브가 세상을 점령했는데 왜 하필 종이책이고, 왜 하필 리뷰 데이터입니까? 이게 정말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맞긴 한 건가요?"


J는 나의 문제인가 모두의 문제인가를 묻는다. 차가웠지만 정확했다. 경영 수업에서 말하는 'Problem-Solution Fit'의 근간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나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커다란 원 세 개를 그렸다.


"J, 우리나라에서 매년에 발행되는 신간이 몇 종인지 알아? 7만종이 넘어. 권수로는 1억권, 관련 매출로는 11조원이나 되. 출판 산업이 성장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급격히 축소되는 것도 아니라는 거야. 문제는 7만종 중에서 80%는 초판 1쇄도 다 못 팔고 창고에서 폐기된다는 거야.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나는 원 안에 '편집자의 감'이라고 적었다.


"지금까지 출판은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었어. 대표나 편집자의 직관에 의존해 수천만 원을 들여 책을 찍어내지. 하지만 독자가 정말 뭘 원하는지는 책이 나오고 나서야 알아. 이미 늦은 거지. MiriBook은 이 순서를 바꾸려는 거야. 출판 전에 AI와 독자 리뷰어를 통해 '팔릴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는 것, 그래서 출판사의 실패 리스크를 줄이고 좋은 원고가 사장되지 않게 하는 것. 이게 우리가 해결할 사회적 문제야."


묵묵히 코드를 짜던 M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AI 엔진의 핵심 로직을 담당하는, 드림소프트의 기술적 기둥이었다.


"형 말은 알겠는데, '감'을 어떻게 '데이터'로 바꿔요? 문학적인 감성이나 지식의 가치를 AI가 점수로 매긴다는 거, 그거 출판인들이 보면 질색할 텐데요. 그들은 자기들의 전문성이 침해받는다고 느낄 거예요."


M은 늘 호칭이 다르다. 대표님이라고도 하고 형이라고도 하고. Brown으로 하라고 해도 잘 안된단다.


"맞아, M. 그래서 우리가 하는 건 '평가'가 아니라 '연결'이야. M 네가 만드는 AI 엔진 'Miri-Alpha'는 독자들의 파편화된 리뷰를 분석해서, 이 원고가 어떤 독자층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지 찾아내는 거지. 편집자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편집자의 눈을 더 밝게 해주는 안경이 되는 거야."


이때 디자인과 유저 경험을 담당하는 Sunny가 가세했다.


"그럼 우리 서비스는 단순한 분석 툴이 아니어야 해요. 출판사와 작가, 그리고 독자가 원고를 매개로 소통하는 '따뜻한 커뮤니티'의 형태를 띠어야죠. 데이터는 차갑지만, 그 데이터가 흐르는 공간은 드림소프트의 비전처럼 '섬김'의 미학이 있어야 해요."


토론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J는 여전히 플랫폼의 확장성과 수익 구조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고, M은 데이터 학습의 기술적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 치열한 부딪힘 속에서 MiriBook의 모습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단순히 리뷰를 모으는 사이트가 아니라, '출판 리스크 관리 솔루션'이자 '독자 참여형 출판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된 것이다.


게다가 출판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일본을 첫 번째 타켓으로 글로벌로 진출한다는 로드맵도 함께 공유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명확히 정의하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Brown: 서비스 기획과 대외 협력, 그리고 사업 총괄. (The Visionary)

Marin: AI 엔진 Miri-Alpha의 고도화와 백엔드 핵심 로직 개발. (The Heavy-Lifter)

Jay: 플랫폼의 전체 아키텍처 설계 및 프론트엔드, 그리고 데이터 무결성 검증. (The Architect)

Sunny: 사용자와 출판사가 만나는 접점의 모든 경험(UX/UI)과 브랜드 디자인. (The Artist)


"좋아, 이제 목표는 명확해졌어."


나는 팀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돌아봤다.


"우리는 6개월 안에 실제 출판사와 협업해서 '데이터가 선택한 베스트셀러'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해. J, 네가 걱정하는 수익성도, M 네가 우려하는 데이터의 신뢰도도 결국 시장에서 결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10년 후, 우리가 네이버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꿈, MiriBook에서 시작해보자."


열띤 토론이 마무리될 무렵, J가 조심스럽게 서류 봉투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B, 사업 모델도 정해졌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데, 우리 지분 배분이나 보상 체계는 어떻게 할까요? 주주간 계약서 같은 것도 미리 써두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요. 나중에 투자받을 때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베스팅(Vesting) 조건 같은 것도 넣고..."


순간,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까지 '세상을 바꾸자'며 뜨거웠던 열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J. 우리가 넥스트 데이터에서 박 대표 밑에서 같이 고생하며 나온 형제들인데, 벌써부터 그런 딱딱한 이야기를 꺼내나? 우린 가족이잖아. 지금은 지분 몇 프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6개월 뒤에 이 배가 떠 있을지부터 걱정해야지. 지분은 나중에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때 기여도 보고 공정하게 나누자고. 내 성격 알잖아, 나 절대 누구 하나 챙겨주는 거 소홀히 하지 않아."


M도 거들었다.


"맞아요, J. 지금은 코딩 한 줄 더 짜는 게 급해요. 우리끼리 믿고 가는 거지, 계약서 쓰느라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잖아요."


J는 입을 뗐다가 이내 다시 다물었다.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의 성장 가능성과 각자의 역할을 고려해 지금 보상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Sunny 역시 "지분은 나중에 잘 되면 생각하자"며 밝게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주주간 계약서 작성을 미뤄버렸다. 베스팅 제도를 통해 기여하지 않는 사람이 지분만 챙겨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경영의 기본 원칙도, 회사가 잘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도, '신뢰'라는 이름의 안개 뒤로 숨겨버렸다.


"좋아, 그럼 지분 이야기는 나중에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다시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이만 해산합시다!"


나의 이 결정은 당시에는 호탕한 리더십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훗날 드림소프트의 심장을 겨누게 될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서로를 섬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서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계약'은 생략한 채 더 깊은 광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경영 수업 제7강] 나의 문제 Vs. 모두의 문제

강 대표는 출판분야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템을 사업모델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것이 모두의 문제인가라는 도전을 받는다.


실제로 많은 실패한 스타트업은 나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착각하면서 시작됐다. 시장이 원하지 않는 사업이 실패원인의 1, 2위를 다투는 통계 수치도 있다.


이거 불편하지 않은가요?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쓰실 건가요?


가장 많은 실수가 20~50명 정도, 나름 유의미한 숫자의 고객이 문제에 대한 공감이 있다고 해서 믿어버리는 경우다. 그들이 문제 해결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창업자는 끝없는 질문을 통해 이것이 모두의 문제임을 확인해야 한다.


이 문제를 참고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존재하는 대안은 무엇이며, 왜 그것이 불충분한가

이 문제를 정기적으로, 반복적으로, 비용을 치르며 겪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왜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도 검토해야 한다.

-수요가 없어서인가

-빈도가 낮아서인가

-기존 대안으로 만족하기 때문인가

-문제는 있지만 견딜한해서인가


강 대표는 위와 같은 질문을 수도없이 던지고 답을 찾음으로써 MiriBook이 드림소프트의 창업 아이템이라고 확신했다.


당신의 창업 아이템은 정말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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