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8)
분당의 오피스텔 창밖에도 기어코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드림소프트의 내부 온도는 계절과는 반대로 영하를 넘나들고 있었다. 창업 2개월 차. 동물원을 나온 사자들의 근육에는 슬슬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6개월이라는 짧은 런웨이(Runway) 중 이미 3분의 1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렀다.
우리는 지금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 개발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최소'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네 사람의 방식은 각기 달랐고, 그 차이는 매일 밤 치열한 논쟁으로 번졌다.
"Brown, 이건 안 돼요. 이건 MVP가 아니라 그냥 '부실 제품'이라니까요?"
J가 모니터를 돌리며 소리를 높였다. 화면에는 그가 공들여 짠 시스템 아키텍처 구조도가 떠 있었다.
"지금 Brown이 요구하는 일정에 맞추려면, 데이터 무결성 검증 로직을 다 빼야 해요. 나중에 사용자 늘어나면 DB 다 깨질 텐데, 그때 가서 절 원망하실 건가요? 저는 설계자예요. 무너질 게 뻔한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앞에는 내가 출판사들을 돌며 약속한 '리스트'가 있었다.
"J, 내 말 좀 들어봐. 출판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이 원고가 몇 권 팔릴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예측 리포트야. 리포트 페이지가 우선 나와야 그들이 돈을 낼 가치를 느낀다고. 기초 공사도 중요하지만, 당장 보여줄 '집'이 없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어."
묵묵히 서버 코드를 짜던 M이 퀭한 눈으로 거들었다.
"형, 저도 J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봐요. 지금 Miri-Alpha 엔진의 정확도가 70% 수준이에요. 데이터를 더 정제하고 알고리즘을 고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포트 양만 늘리면, 그건 데이터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거예요. 엔지니어로서 양심에 걸려요. 최소한 엔진 고도화에 한 달은 더 주셔야 해요."
이때 디자인 시안을 수정하던 Sunny도 한숨을 내쉬며 가세했다.
"두 분 말씀도 맞지만, 서비스 얼굴이 이래서야 누가 쓰겠어요? 출판 편집자들은 미적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이에요.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UI가 투박하면 신뢰를 안 한다고요. 지금 Brown이 줄이자는 이 인터랙션 디자인들, 이거 우리 브랜드의 핵심이에요."
회의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식은 커피 종이컵들이 널려있었다. '섬김'과 '가족'을 외치며 시작했던 우리였지만, 자원(시간과 돈)의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선 각자의 전문성이 곧 서로를 겨누는 창이 되었다.
나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가 'MiriBook'이라는 글자 옆에 커다랗게 'CORE(핵심)'라고 적었다.
"자, 다들 진정하고 본질로 돌아가자. 우리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뭐야? 예쁜 디자인? 완벽한 DB? 아니야. '이 원고가 시장에서 팔릴지 미리 알려주는 것'이야. 그 가치를 증명하는 데 10장짜리 리포트가 꼭 필요할까? 아니, 단 한 장의 리포트라도 그 숫자가 출판사의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게 진짜 MVP야."
나는 마커를 들고 기능 리스트에 과감하게 엑스표를 긋기 시작했다.
"J, 확장성은 나중에 고민하자. 당장은 동시 접속자 10명만 버텨도 돼. 수동으로 처리해야 할 부분은 내가 밤새서라도 엑셀로 노가다 뛸게. M, 엔진 정확도 70%? 괜찮아. 부족한 30%는 독자들의 생생한 리뷰 텍스트로 보완하자. Sunny, 화려한 애니메이션 다 빼. 정보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레이아웃 하나면 충분해."
방 안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자신의 작업물이 '최소화'라는 명분 아래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자기 살점을 베어내는 고통과 같다. 특히 완벽한 설계를 추구하는 J와 기술적 자부심이 강한 M에게는 더욱 그랬다.
"Brown, 이건 나중에 기술 부채(Tech Debt)로 다 돌아올 겁니다. 제가 경고했어요."
J는 결국 체념한 듯 키보드로 손을 옮겼다. M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화면 속 알고리즘으로 시선을 돌렸다. Sunny는 묵묵히 시안에서 화려한 효과들을 지워나갔다.
겉으로는 합의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기능의 축소'가 누군가에게는 '역량의 부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며칠 뒤, 드디어 '다이어트'를 마친 MVP의 첫 시제품이 모니터에 떴다. 그것은 화려했던 우리의 구상과는 달리 앙상하고 초라했다. 리포트는 단 두 페이지로 요약되었고, 복잡한 통계 차트는 단순한 막대그래프로 대체되었다. J가 그토록 강조했던 데이터 암호화 로직도, M이 고집했던 딥러닝 고도화 모델도 빠진 상태였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J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게 우리가 한 달 동안 밤잠 설쳐가며 만든 결과물입니까? 이건 그냥 게시판 수준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부끄럽습니다."
J의 발언은 내 가슴 깊숙한 곳을 찔렀다. 그의 눈빛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J, 이건 과정이야. 이 초라한 화면으로 출판사의 결제를 끌어내는 게 진짜 실력이야. 기술적으로 완벽한 걸 만드는 건 누구나 해. 하지만 자원이 없을 때 뭘 포기해야 할지 결정하는 건 경영자만 할 수 있는 거야."
M도 이어서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형, 저는 이 데이터 못 믿겠어요. 학습량이 부족해서 오차가 커요. 이걸 보고 출판사가 수천만 원짜리 제작비를 결정한다고요? 만약 결과가 틀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지죠? 저는 이 서비스에 제 이름을 거는 게 두렵습니다."
팀원들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야생으로 나오면 사냥하는 법만 배우면 될 줄 알았는데, 사냥에 앞서 동료들의 굶주린 마음부터 채워줘야 한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갈등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시장'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자부심'을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기능의 합의를 이뤘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었다.
6개월의 런웨이, 그 압박 속에서 나는 팀원들의 '정서적 상실감'을 케어하는 대신 내 '비전'을 우리의 것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그것이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사자가 선택한 '우선순위(Prioritization)'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첫번째 봄이 지나고 있었다.
초기 창업팀이 MVP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모든 기능을 조금씩 다 넣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ㅇ프로토타입: 내부적으로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한 시제품. (작동만 하면 됨)
ㅇMVP: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 (부실한 것이 아니라 '핵심'에 집중한 것)
스타트업 초기에는 속도를 위해 완벽한 설계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팀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나중에 갚아야 할 빚(Tech Debt)'임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합니다. 더 위험한 것은 '심리적 부채'입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깎아 먹으며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보상과 비전의 확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경영은 끊임없는 '선택'과 '포기'의 과정입니다. Brown의 과감한 '엑스표'는 사업적으로 옳았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팀원들의 마음속에 생긴 균열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리스크로 쌓이고 있습니다. 이제 이 MVP가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느냐에 따라, 이 균열이 메워질지 아니면 더 크게 벌어질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1. 당신의 MVP에서 '이 기능이 없으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라는 관점에서 반드시 살려야 할 기능은 무엇입니까?
2. '속도'와 '퀄리티' 중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