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부지런함과 좋은 게으름

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9)

by 알록

분당의 새벽은 차갑고도 정직했다. 오피스텔 창밖으로 어슴푸레하게 동이 터올 무렵, 나는 어김없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오전 7시. 텅 빈 사무실에는 어제 미처 끄지 못한 서버의 팬 돌아가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넥스트 데이터라는 안정적인 동물원을 박차고 나온 지 벌써 수개월, 나는 매일 아침 이 정적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한다.


요즘 나는 늘 잠을 설친다. 6개월의 런웨이 중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4개월 남짓. MVP는 세상에 나왔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통장 잔고는 매일 아침 내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책상에 앉아 차가운 생수 한 모금을 마시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 출판사 미팅 준비, AI 알고리즘 수정 요구사항 정리, 투자자 리스트 업,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외주 작업 서칭까지... 내 머릿속은 이미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선수처럼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리더의 시간은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에, 나의 1분은 남들의 1시간보다 무거워야만 했다.


오전 8시 10분. 여전히 사무실은 고요하다. 이 고요함은 나에게 집중의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혼자만 이 배를 젓고 있는 것인가'라는 지독한 외로움을 선물한다. 나는 스스로를 '부지런한 리더'라고 칭송하며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에 위안을 얻으려 애썼다. 내가 이만큼 뛰고 있으니, 하나님도 나의 수고를 보고 자라게 하시겠지. 하지만 그 비장함이 깊어질수록, 사무실의 빈 책상들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오전 9시. 마침내 현관문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팀원들이 출근한다. 넥스트 데이터 시절부터 내 '객기'를 믿고 야생으로 따라 나온 정예 멤버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내가 가진 비장함이나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오늘 아침에 지하철 진짜 미어터지더라고요."


M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뒤따라 들어온 Sunny와 J도 자연스럽게 탕비실로 향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커피를 내리고, 어제 본 올림픽 경기의 명장면을 화제로 꽃을 피웠다.


"봤어? 어제 쇼트트랙 마지막에 역전하는 거? 와, 진짜 소름 돋더라. 우리나라 선수들 멘탈은 진짜 세계 최강인 것 같아."


"그러니까요. 저는 그거 보느라 12시에 잤다니까요. 오늘 오전엔 커피 두 잔은 마셔야 버틸 것 같아요."


탕비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와 커피 향이 사무실을 채웠다. 그 평화로운 일상의 소음이 나에게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다가왔다. 나는 모니터 뒤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지금 우리 서비스의 데이터 로직이 꼬여있고, 당장 다음 주면 서버 비용 결제일인데... 저렇게 한가하게 올림픽 이야기를 하며 30분을 보낼 때인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좋은 리더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스스로 알아서 잘해주면 좋겠는데, 어디에도 내 마음과 같은 것 따윈 없었다. 모른 척하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화를 낸다면, 그들은 나를 박 대표와 같은 독재자로 여길 것이 뻔했다.


오전 9시 40분. 수다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지만, 정작 업무의 엔진은 걸리지 않았다. J는 내 눈치를 살피며 메신저를 보냈고, M은 어제 내가 수정해달라고 했던 기획안을 다시 열어보며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오는 대신, 모든 결정을 나에게 미루고 기다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Brown, 어제 말씀하신 리포트 레이아웃 말인데요. A안으로 갈까요, B안으로 갈까요? 정해주셔야 디자인 최종본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Sunny의 질문에 나는 맥이 풀렸다. 나는 그녀가 출판 편집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최고의 디자인을 스스로 제안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리더의 승인을 기다리는 '작업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J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스템 아키텍처의 부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오는 대신,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를 쳐다봤다.


'왜 아무도 먼저 고민하지 않을까. 왜 아무도 이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나만큼 무겁게 느끼지 않는 걸까.'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향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지시를 내리고, 마감 기한을 못 박았다. 내가 부지런해질수록 팀원들은 점점 더 게으르고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새벽 7시에 나와서 준비한 모든 전략은, 그들이 처리해야 할 '숙제'로 전락해버렸다. 리더인 내가 모든 결정의 병목(Bottleneck)이 되고 있었다. 내가 바쁘게 움직일수록 그들은 더 깊이 의존했고, 내가 절박할수록 그들은 더 여유로워졌다.


"자, 다들 알겠지?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무조건 MVP 안정화 버전이 나와야 해. 내가 미팅 잡아놓은 출판사만 세 곳이야."


나의 비장한 선언에도 그들은 그저 "네, 알겠습니다"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을 남기고 다시 모니터 뒤로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지독한 고독을 느꼈다. 2015년의 그 봄날, 넥스트 데이터를 창업하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박 대표의 떠올랐다. 그때 그도 지금 나처럼 혼자 달리고 있었던가.


좋은 리더는 스스로를 태워 길을 밝히는 존재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태워 그들의 나태함을 가려주는 가림막이 된 것은 아닐까. 9시에 출근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동료들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책임'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가 되자, 사무실은 다시 적막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7시의 정적과는 다른, 무거운 '방관의 침묵'이었다. 나는 여전히 바빴고, 그들은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넥스트 데이터 박 대표가 왜 그렇게 고함을 질러댔는지, 왜 그렇게 혼자서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독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그리고 그 괴물은 자신이 가장 부지런하다고 믿으며, 사랑하는 동료들을 서서히 부품으로 만들어간다.


나는 다시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거기엔 내가 쓴 지시사항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의 '의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은 기적을 바라는 요행이었을까. 야생으로 나오면 사냥하는 법만 가르치면 될 줄 알았는데, 사냥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6개월의 런웨이가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7시에 출근할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9시에 커피를 마시며 들어올 것이다. 이 2시간의 격차를 메우지 못한다면, MiriBook은 결코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닿지 못할 것임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경영 수업 제9강] 나쁜 부지런함 vs 좋은 게으름


리더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리더의 부지런함이 오히려 조직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창업자와 직원의 열정 온도는 결코 같을 수 없죠. 창업자는 '내 인생'을 걸었지만, 직원은 '내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리더의 고독 관리는 시작됩니다.


ㅇ나쁜 부지런함: 실무에 매몰되어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것. 이는 팀원을 수동적인 부품으로 만듭니다. (Micro-management)


ㅇ좋은 게으름: 시스템이 스스로 돌아가게 하고, 팀원이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것. 리더는 실무에서 손을 떼고 '방향'과 '동기'를 고민하는 데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리더는 고독해야 하지만, 외로워서는 안 됩니다. Brown이 겪는 7시의 정적은 리더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지만, 9시의 소음을 '분노'가 아닌 '활력'으로 바꾸는 것 또한 리더의 실력입니다. 팀원들이 올림픽 이야기에 열을 올릴 때, 그 열정의 10%라도 MiriBook으로 끌어올 수 있는 '보상 체계'와 '비전 공유'가 선행되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이라면:

1. 당신이 새벽 7시에 출근하는 이유는 '불안'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략적 필요' 때문입니까?

2. 팀원들이 결정을 미루는 이유는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그들의 '결정권'을 빼앗았기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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