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조건

강팀장, 스타트업 대표로 살아남기 (11)

by 알록

어제의 숙취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남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었던 나의 오만함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온 밤, 나는 처음으로 리더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데이터들은 초점이 맞지 않은 채 흐릿하게 번져갔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넥스트 데이터 시절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고 따랐던 인생의 스승, 최 교수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수많은 벤처 기업의 탄생과 몰락을 지켜본 업계의 산증인이자, 차가운 자본의 논리 속에서도 사람의 가치를 잊지 않는 분이었다.


분당 외곽 한적한 대학에 자리 잡은 최 교수님의 연구실은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려왔고, 방 안에는 은은한 침향 냄새가 감돌았다. 어제의 소란스러웠던 삼겹살집과는 대조적인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나의 치부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새벽 7시의 정적 속에서 느꼈던 지독한 고독감, 9시에 출근해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팀원들을 보며 느꼈던 배신감, 그리고 '가족'을 외쳤던 나에게 '지분'과 '계약서'를 들이밀었던 J에 대한 서운함까지. 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교수님은 아무런 대꾸 없이 차를 따르고 찻잔의 온기를 느끼실 뿐이었다.


내가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고 한숨을 내쉬자, 교수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대표, 자네는 지금 '가족'이라는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네. 자네가 생각하는 가족은 뭔가? 무조건 참고, 무조건 믿어주고,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그런 막연한 공동체인가?"


"그게... 서로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나중에 잘 됐을 때 나누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들 고생하니까 지분이니 계약이니 하는 딱딱한 이야기가 오히려 서로의 신뢰를 갉아먹는 것 같았고요."


나의 대답에 교수님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틀렸네. 진정한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선'을 명확히 긋는 사람들이야.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때도 법적인 절차를 밟고, 부부가 공동명의로 집을 살 때도 계약서를 쓰지. 왜일까?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중에 혹시 모를 오해나 탐욕으로 인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비극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지. 지금 자네가 계약서를 피하는 건 동료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거라네. 자네의 그 막연한 '호의'가 동료들에게는 언제든 거두어질 수 있는 '불안'으로 읽힌다는 걸 왜 모르나?"


'책무 방기'라는 단어가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교수님의 말씀은 멈추지 않았다.


"J가 계약서를 쓰자고 한 건,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닐세. 오히려 이 배에서 내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지. '내 지분이 얼마인지, 내 권한이 어디까지인지'가 명확해야 비로소 이 회사가 남의 회사가 아닌 '내 회사'가 되는 법이야. 그래야 자네가 새벽 7시에 나오든 밤을 새우든, 그들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계를 회사에 맞추게 되는 거라네. 지금 그들은 자네의 비전을 대여해 쓰고 있는 '손님'일 뿐이야. 그 비전을 함께 공유한 '주인'이 아니고. 자네는 끝도없이 광활한 들판에 그들을 데려다 놓고는 왜 주인처럼 일하지 않느냐고 타박만하고 있는 셈이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7시의 정적 속에서 내가 느꼈던 그 지독한 고독은, 어쩌면 내가 스스로 만든 오만의 성벽이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내 비전을 따르는 충직한 추종자로만 여겼기에 그들은 9시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관찰자'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나는 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까지 독점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수님은 종이 한 장을 꺼내 구체적인 숫자를 적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경영학 교과서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동시에 인간적인 조언이었다.


"강 대표,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듣게. 우선 지분은 자네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져가되, M과 J, Sunny에게도 그들의 기여도와 미래 가치에 걸맞은 구체적인 숫자를 제안하게.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베스팅(Vesting)'이야. 지금 당장 주식을 주는 게 아니라, 3년 혹은 4년 동안 드림소프트를 위해 실제로 헌신했을 때 비로소 그 주권이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되게 하는 방식이지. 이건 '우리 끝까지 같이 가자'는 긴 약속의 증표이자,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남은 사람들의 노력을 가로채지 못하게 하는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라네. 이게 진짜 동료를 섬기는 리더의 방식이야."


"교수님, 만약 그들이 제가 제안한 숫자에 동의하지 않고 더 큰 요구를 하면 어쩌죠? 안 그래도 지금 런웨이가 얼마 남지 않아 예민한 상황인데요."


"그럼 더 치열하게 토론하게. 그 과정이 바로 '팀 빌딩'의 진짜 핵심이야. 서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리더가 짊어진 사업적 리스크를 멤버들이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시간. 그 진통을 겪어야 비로소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우리'라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거지. 술잔을 비우는 회식 백 번보다, 주주간 계약서 한 장을 놓고 밤새 논쟁하며 서로의 한계와 기대를 확인하는 게 훨씬 더 건강하고 밀도 높은 소통이라네. 막힌 숨통은 술기운으로 트이는 게 아니라, 선명한 약속으로 트이는 법이야."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내 가슴을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조금씩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섬김'이라는 단어를 내 편한 대로 해석해왔다. 내가 희생하면 남들이 알아주겠지, 내가 부지런하면 남들도 따라오겠지라는 생각은 얼마나 유아적인 리더십이었던가. 진정한 섬김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계약서는 차가운 법률 문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존중하고 보호할 것인지 적어 내려가는 가장 뜨거운 '동행 선언문'이어야 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연구실 밖의 밤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더 이상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가움이 정신을 맑게 깨워주었다.


나는 차에 올라타 핸들을 잡으며 내일 아침 팀원들에게 내밀 서류의 조항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단순히 지분율 몇 퍼센트를 나누는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가 MiriBook이라는 배에 함께 올라탄 선원으로서, 풍랑을 만났을 때 누가 키를 잡고 누가 돛을 올릴지,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 열매를 어떻게 나눌지를 명확히 하는 과정. 그것은 리더인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이자 사랑이었다.


'J, 미안하다. 네가 내민 손이 나를 의심하는 칼날이 아니라, 진정한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M, 네 기술이 단지 기능으로 소비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위대한 자산으로 보호받게 해줄게. Sunny, 네 디자인이 드림소프트의 얼굴이 되어 가치를 증명할 때 그 결과를 온전히 누리게 해줄게.'


나는 이제 다시 7시에 출근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에 나와서 동료들의 출근 시간을 체크하며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이 9시에 활기차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어서 와, 여기서부터는 자네들의 영역이고 자네들의 권리야"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리더가 될 것이다.


진정한 가족은 문서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나의 어설프고도 낭만적인 정의는 오늘 밤 최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무너졌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선명한 약속'이라는 새로운 기둥으로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그 소중한 마음이 변질되거나 다치지 않도록 단단한 울타리를 치는 것.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경영의 길이었다.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며, 비로소 MiriBook의 데이터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닌 우리의 운명으로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경영 수업 제11강] 좋은 멘토의 조건

리더는 결정하는 사람이기에 늘 고독합니다. 이때 멘토는 리더가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11화에서 최 교수가 보여준 모습은 훌륭한 멘토링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1. 비판적 경청 (Critical Listening)

최 교수는 강 대표의 하소연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청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었습니다.


ㅇ현상 너머의 본질 파악: 강 대표는 '팀원의 태도'를 고민했지만, 멘토는 '리더의 책임 회피'라는 본질을 짚어냈습니다.


ㅇ침묵의 힘: 멘토의 침묵은 리더가 자신의 말을 스스로 되씹어보게 만듭니다.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충분히 듣는 것이 좋은 멘토링의 시작입니다.


2. 개념의 재정의 (Reframing Concepts)

좋은 멘토는 리더가 갇혀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줍니다.


ㅇ가족 vs 파트너: "가족은 계약서가 필요 없다"는 강 대표의 서툰 정의를 "사랑하기에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진짜 가족"이라는 논리로 재정립해주었습니다.


ㅇ계약서의 본질: 차가운 법률 문서를 '신뢰의 마침표'이자 '동행 선언문'으로 승화시켰습니다.


3. 현실적인 대안 제시 (Practical Solution)

단순히 "잘해봐라"는 식의 위로가 아니라, 즉시 실행 가능한 도구를 쥐여주어야 합니다.


ㅇ베스팅(Vesting)과 80%의 법칙: 스타트업의 생리와 투자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지분 구조를 가이드 함으로써, 리더가 현장으로 돌아가 팀원들과 협상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4. 그럼에도 훈수는 쉽습니다.

훈수꾼에게 책임을 묻지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훈수꾼을 자처하는 멘토는 멘토가 아닙니다.


리더가 멘토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멘토가 아무리 훌륭해도 리더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11화에서 강 대표가 보여준 태도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ㅇ취약성의 노출 (Vulnerability): 자신의 옹졸함과 실수, 서운함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리더가 가면을 쓰고 있으면 멘토는 가짜 얼굴에 대고 조언할 수밖에 없습니다.


ㅇ즉각적인 수용과 성찰: 비판을 받았을 때 방어 기제를 세우지 않고, '내가 오만했구나'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습니다.


ㅇ실행으로의 연결: 상담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팀원들에게 내밀 서류 조항을 정리하는 모습이야말로 멘토링의 완성입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오만함을 꾸짖어 줄 '최 교수' 같은 멘토가 있습니까?


당신은 멘토 앞에서 리더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바닥을 보일 용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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