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극복을 위한 소고

by 알록

어찌어찌하여 강원도로 내려온지 어언 11년.

본의 아닌 직업병도 있고 자연스레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고민도 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청년이탈과 저출산, 그로인한 지역소멸일듯하다.

돌이켜보면 나도 청년의 때에는 어른들말 안듣고 떵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보고 후회했으니

저들을 탓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러니 그들의 시선에서 돌아보기로 하자.


먼저, '이탈 청년'은 때가 되면 한번 '회복', 그러니까 돌아올 기회는 온다.

나고 자란 고향이 부끄럽지 않고 부모 곁이 그래도 행복했노라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때, 그것이 금의환향이 아니어도 그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아줌은 물론

다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역의 권력자들은 그런데는 관심이 없고

그저 지금 떠나는 청년들 비난 하는데만 열심이다. 6월 선거가 끝나면 좀 나아지려나.


저출산은 더 심각한데 저출산 그 아래는 결국 청년들의 비혼주의, 즉 결혼을 안하니 출산은 언감생심이다.

내친김에 더 아래로 내려가 보면 결혼이라 함은 먼저 이성이 서로 만나 대화도 하고 연애도 해야 진도가 나갈텐데 주변에 연애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자발적 비혼이라 연애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더 많은 수는 이번 생은 틀렸다는 모쏠들의 비자발적 비혼 선언이다.

믿거나 말거나 저출산 해결은 모쏠탈출에서 시작된다.

탈모, 금연과 함께 모쏠 탈출도 3대 소확행 공약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비혼, 저출산의 근본원인이 미혼 청년들이 대체 만날 기회가 없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때도 모쏠은 충분히 있었다.

미팅만해도 정학을 쳐맞던 시절도 있었고, 제과점에서 우유시켜놓고 한시간을 그냥 탁자만 내려다보고있다 나온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암흑의 시간도 있었다.


비교적 범생과였던 나는 더군다나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 어디에서도 이성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날 친구따라 농구하러 간 교회에서 광명을 찾았다. 구원이 거기 있었다.


교회내 학생회, 청년회 등 여러 이름을 불리웠던 그곳은 이성에 대한 건전하고 건강한 관심을 키울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수많은 커플이 교회 오빠와 동생 간에 이루어졌고, 대부분의 교회는 토요일이면 하루종일 예식장으로 변했다.


그중 하나가 나다.

단언컨대 교회가 없었으면 이 나라 인구감소는 진작에, 훨씬 더 심각한 내리막을 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어떠한가. 건전한 교제는 개뿔, 청년이 교회를 떠난지 오래다.

그러니 교회는 각성하라.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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