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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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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Jun 03. 2018

01. 나이가 드는 것이 좋은 점

이게 뭔 소리야 나이 드는 게 왜 좋아! 할 수도 있다.

사실 늙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내일모레부터 정당하게 술 마실 수 있는 수능 끝난 고삼 말고 거의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그렇다고 내가 늙었다곤 생각 안 하지만) 

나는 지금 인생에서 막 나이가 든다는 게 뭔가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길락 말락 하는 단계이다.


첫째, 더 현명해졌다.

예전에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했다.

그래도 모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누적된 데이터와 경험으로 아 이건 이러겠구나... 어느 정도 지혜가 생겼다.

특히 사람을 파악하는 게 예전보다 빨라졌다.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사람의 말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고 말속의 뼈도 느낄 수 있다.

예전보다 내가 더 현명해졌다.


둘째, 나를 꾸밀 줄 알게 되었다.

이십 대 초반 사진은 끔찍해서 꺼내놓고 싶지도 않다.

촌스러운 유행 화장, 나와 어울리지 않는 튀는 옷 

어려서 예쁘다고 봐주기엔 지금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어떤 화장을 해야 어울리는지, 어떤 옷이 어떤 자리에 더 적합한지, 어떤 머리스타일이 맞는지

이제는 알고 있기에 변화는 크지 않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유지하고 있다.


셋째, 나와 더 친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과 달리 건강이 마냥 붙어있고 체력은 그냥 기본 스텟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육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빠지고, 가만히 있어도 굶으면 살 빠지던 때와 달리 굶어도 살은 안 빠진다.

소모적인 인간관계가 얼마나 나를 불행하게 하는지 알아서 이젠 불필요한 관계는 정리했다.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이 뭔지 고민해서 이뤄준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를 위해 예전보다 더 노력한다.


넷째, 잘 나이 드는 법에 대해 고민한다.

어릴 땐 그저 나이 들면 어른인 줄 알았다.

서른이면 완전 어른이라 나는 다 성숙하고 다 알고 당장 엄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냥 나이만 먹으면 그건 개 어른이라는 걸 안다.

내 속을 채우지 않으면 그냥 나이만 든 인간이 된다.

제대로 나이 들지 않은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아 나이를 잘 드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배웠다.

젊은 애들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적어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존경받을 수 있는 현명한 나이 듦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다섯째, 지금의 소중함을 조금 느낀다.

어릴 때부터 유한함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부모님의 나이 듦을 느낀다.

그분들은 나를 지켜줬던 어른이 아니라 차츰 내가 돌봐드릴 노인의 단계가 되어감을 느낀다.

우리 가족이 지금의 형태로 사는 것,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지금처럼 모이는 것

이런 시간들의 유한함을 알 것 간다.

아기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의 노화를 보면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거라는 것을 안다.

지금 행복하지만 언젠가 회상했을 때의 지금이 좋은 시절이었다고 추억될 시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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