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박증세가 있는 파워 J이다.
어릴 때부터 계획을 세워 실행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아주 어린시절 기억나는 게 친구집 가서
장난감 어지르고 놀고
친구가 다른 장난감 어지르는데
전에 놀던 거 다 집어넣고 정리해야 한다해서
친구엄마를 무척 놀라게 만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강박, 통제성향은 무디긴 해도
남들보단 강하게 남아있다.
나의 남편은 매우 즉흥적인 성격이다.
연애시절 만나서는 갑자기
"순대 먹으러 병천 갈래?" 하길래
재밌다 따라갔는데 정말 순대만 먹고는
"이제 집에 가자!" 해서
"뭐야 여기 온 김에 뭐 다른 거 계획은 없어?"
하니 없다고... 순대 먹으러 온 거잖아!
하는 남자친구에게 계획도 없이 왔냐고 엄청 뭐라고 한 기억이 있다.
그러다 보니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나는 집안에서도 나만의 규칙이 많이 있었는데
침대에서 바깥옷 입기 금지, 먹기 금지
수건 다 쓰고 빨래통에 던져놓기
집안에서 속옷 안 입고 돌아다니기 금지
밤에 너무 소리 크게 핸드폰 하지 않기 등등...
나에게는 통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것들을 남편과 맞추면서 살아야 하다 보니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가 많았다.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나도 성인인데 통제 좀 그만해!"
나는 이 말을 듣고 벙 쪄서 충격을 받았다.
이게 왜 통제지...?
당연한 것들,
지키면 좋은 것들인데?
그래서 초반에 많이 다퉜다.
그리고 현재 깨달은 점은
내 남편은 고의성은 없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는 잊는다.
그리고 내가 강하게 말할수록
반항아적 기질을 발휘해서 반발심이 엄청나다.
역효과다.
지금은 어머님이 당신 아들을 나에게 보내셨구나....
나중에 내 자녀와의 갈등을
남편을 통해 선행학습 하는구나 하며
자식이 어찌 내 맘대로 되겠는가
보살의 마음을 익히고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쉽지 않다.
나도 언제나 보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남편과 사는 게
가끔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남편이 교대근무자라 정기적으로
밤샘을 하고 집에 들어온다.
밤새고 다음 날은 휴무인데
나랑 다음 날 아침부터 나가서
같이 뭐도 하고 뭐도 하고
말은 늘 그렇게 한다.
내가 "그게 되겠어? 피곤하잖아."
라고 해도 굳이 본인이 된다고
아침부터 할 계획을 빼곡히 세운다.
그래놓고 정작 밤새고 들어오면
뻗어서 오후까지 쿨쿨 잔다.
그럴 거면 애초에 말을 말지...
짜증도 나고 나 혼자 준비 다하고 기다리면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면 남편은 밤새고 왔는데
뭐라고 한다며 화가 나서 싸웠다.
지금은 남편이 아침부터 나가서 브런치 먹고 장보고
등등 거창한 계획 얘기하면
응 그래 알겠어~라고 대답하고
남편이 들어와서 뻗으면
혼자 아침 차려서 먹고 집안일을 한다.
기다리는 시간에 내 할 일을 하고
충분히 잔 것 같으면
소화할 수 있는 오후 일정 몇 개만 같이 한다.
유도리..(융통성)
나에게 정말 없는 것 중 하나인데 결혼 후에 얻고 있다.
남편 덕에 나한테는 없던 많은 것들이 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