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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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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Jun 17. 2024

14.결혼하고 보니 엄마랑 단짝친구가 되었다.

어릴 때 엄마는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우리를 키워주셨다.

우리가 커서 엄마가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도

할머니는 매일 우리 집에 오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집 근처에 사셨다.

신문을 읽으러 와서는 엄마와 오랫동안 수다를 떨다가 갔다.

엄마는 미주알고주알 할머니한테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둘은 모녀지간보다는 친구 같았다.

할머니는 무조건 엄마 편,  엄마가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나도 충격을 받았지만 남겨진 엄마를 걱정했다.


결혼하고 보니 나도 엄마가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제야 매일 조금씩 엄마가 그때 이래서 그랬구나 이해하게 된다.

남편이랑 싸웠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해도 

남들에게는 흉이 되고 약점이 되는데 

가족이니까 말할 수 있고 엄마는 얼른 화해해!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

하다못해 나 오늘은 뭐 만들어 먹었다 이런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도 남들은 안 궁금한데 엄마는 궁금해하고 잘 들어준다.

무조건적인 내 편

이 존재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남편은 안 하는데 나 혼자 집안일 다~하는 거 같고

무심하게 퇴근하고는 내 얘기는 들으려고도 안 하고

피곤하다고 쓰러져버리면(나는 돈 안 버냐!!)

난 뭐여 일하는 기계여? 이런 생각에 화가 빡 난다.


시가족,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내였고

맞벌이를 했던 엄마와

기혼자가 되어 공감대가 생기고 보니

이런 얘기할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다.

집안일 혼자 다 하면서 고생하는데

그거에 대한 감사함도 모르고 당연한 줄만 알던 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있을까?

엄마도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싶었을텐데 

그때 엄마에게 할머니는 그런 존재였던 거 같다.


지금 엄마는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홀가분해 보인다.

연락해 보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있고

어디 좋은데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는다.

그런데도 아직도 내가 보자고 하면

만사 다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와준다.

왜 아직도 내가 일 번일까


내 인생에서도 엄마가 일 번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한테는 다른 재밌고 소중한 게 너무 많고

엄마의 귀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더 많다.

엄마라는 존재는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왜 같이 있으면 또 짜증을 쉽게 낼까


할머니가 우리를 키워주다시피 하며 

정말 사랑해 줬지만 나에게 했던 말 중 

유난히 기억에 선명한 말이 있다.

"내가 니가 아무리 예뻐도, 내 딸 힘들게 하면 싫다."

아 할머니가 우리를 사랑하는 건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식들도 사랑해 주는 거구나

그러니까 할머니는 우리보다 엄마가 먼저구나

당연한 이치인데 그 마음을 그때 듣고서야 알았다.


정말 사랑은 물줄기처럼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일까?

내가 아무리 버둥거리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해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비할 수 없이 작다.


같이 살 땐 고마움도 모르고 참 많이 싸웠다.

떨어지고 보니 애틋함도 생기고 챙기는 거 같다.

(거리와 사랑의 아이러니함)


엄마는 뭐든지 나보다 잘하는 어른이었는데

이제는 나보다 아이가 되어서 못하는 거 투성이고

내가 가르쳐주는 게 더 많아졌다.

한 번에 못한다고 화내지 말고

차근차근 잘 알려주고 도와줘야 하는데

누굴 닮아서 이렇게 안착한 거야


엄마와 나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런 막막한 생각을 하면 눈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런데도 막상 눈앞에 있는 엄마에게는 못된 딸

자기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는 이기적인 딸

엄마는 그걸 다 알아도 내가 밉지 않은가 보다.

언젠가 나도 내 자식이 생기면 

더 깊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스스로를 효년이라고 칭한다.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서 엄청 챙기는 효녀인척 하다가

또 금방 해이해져서 못된 년이 되기도 한다.


마음의 기울기가 한쪽이 월등히 크긴 하지만

지금 나한테 엄마라는 인생 친구가 있어줘서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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