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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임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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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Oct 31. 2024

임산부가 된 소회

임신을 했고 현재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이것을 뭘 어떻게 글로 써야 할까 막막했다.


내가 애기는 언제쯤?이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할 때

나만 몰랐고 이미 안에 있었다...


뭔가 나 좀 이상한데 설마? 했는데 설마였다.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결혼 후 1년 후부터 가져보자 합의는 했으나 그렇게 쉽게 예정대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남편 근무지가 불특정 해서 안정되는 내년 2월에나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꾸나 했는데 굉장히 빠르고 갑작스럽게 와있었다.


걱정이 많은 나는 안정기 이후에 말해! 했지만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남편이 전화를 돌리는 통에

양가 부모님은 바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내 주변사람은 우리 가족만 알고

남편 주위는... 다 아는 거 같다(ㅋㅋㅋ)


임신하고 발견한 의외의 사실

하나, 내가 꽤나 긍정적이라는 것

입덧이 심할 때 멀미를 하면서도 음 그래 잘 있나 보다 안심이다. 하고

배가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자고 계속 깨도 뚱땅뚱땅 쪼끄만 게 집을 짓고 있을게 대견할 뿐이었다.

내가 더 이상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고, 몸이 변하고 힘들어도 내 일상에서 그 어떤 것도 아기보다 가치를 둘만한 게 없었다.

예전에는 보행자 신호등 초록불이 10초만 남아도 열심히 뛰어서 건넜는데 이젠 기다린다.

생각해 보니 별로 급하지도 않았다.

쪼그려서 열심히 쓸고 닦고 청소하던 버릇도 이제는 조금 더러워도 흐린 눈 하고 내버려 둔다.

조금 더럽게 살면 뭐 어때 무리하지 말아야지.


또 다른 하나는, 남편이 꽤나 좋은 자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임신 증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긍정적으로 잘 버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바로 남편이었다.

결혼하고 박 터지게 싸우다 이제 좀 사이가 좋아졌는데  임신을 하고 나자, 그는 놀랄 만큼 다정해졌다.

(진짜 놀랐다... 이럴 거면 진작 그러지...)

내가 아기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런 나랑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매우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산부인과 굳이 둘이 갈 필요가 있나?

뭔가 유난 같고 혼자서도 진찰 볼 수 있다 했지만

병원부터 남편이 알아보고, 근무를 빼서라도 매 진료를 함께 가고 있다. (심지어 조리원도...)

첫 진료 때 나는 질 초음파의 수치심과 불편감으로 언짢을 뿐이었는데

남편은 "애기 심장 소리 들으면 이런 기분이구나"하고 매우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진료실을 나왔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 나는 군말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남편과 동행하고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임신 증상들로 매일 내 뱃속에 누가 있구나... 하는 다양한 느낌을 느끼고 있는데

남편은 오로지 병원 갈 때만 아기의 존재를 확연히 볼 수 있으니 그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 입장에서는 어떨지 신기해서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오빠 뱃속에 있지도 않은 이 아이를 내 애다 믿고 얼굴도 한 번 안 봤는데 바로 사랑할 수가 있어?"

(내가 뭐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짓을 한건 아닌데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다.)

남편은 뭐 그런 바보 같은 걸 묻냐는 표정으로 "당연히 내 애고 그러니까 사랑하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증상은 힘들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하다.

우리 부부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지켜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과 감정에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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