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얜 아들일 거 같다!'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원래 내 입맛과 전혀 달랐다.
달고 살던 빵 과일 야채를 안 좋아하게 변하더니
기름지고 맵고 짜고 자극적인 걸 선호하며
전형적인 아저씨(남편) 입맛으로 변했고
시어머니가 내 남편을 임신했을 때 좋아하던 음식이라던 거랑 비슷했다.
한편으로 '딸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됐다.
딸이 싫었던게 아니라 입맛이 너무 아재스럽고
여자애면 술을 잘 마실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들일 경우 아빠의 Y염색체가
엄마에게 넘어와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한다.)
또 다른 느낌으로는 초반 입덧 중
나는 음식 냄새에 역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화장품, 향수, 디퓨저 냄새만 맡으면 토할 거 같았다.
얼굴에 선크림 바르면서도 냄새가 역겹고
향 좋다고 산 핸드크림도 토나와서 못 발랐다.
길 가던 사람이 향수 냄새가 나면 구역질이 나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슬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왜 이렇게 화장품 냄새가 싫지... 남자앤가? 생각했다.
그 외에 주변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면
"너는 아들 엄마일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온다!"라는
말을 종종 들으며 세뇌를 당해서 그런가
나 혼자 거의 90%는 아들이라고 확신했다.
(근데 아들이 어울리는 엄마는 어떤 엄마인가요...?
나는 내가 예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아니라며 너는 아들맘 재질이라 한다...)
와중에 남편은 그렇게 확신하다 딸이면 어쩌려고
주기적으로 얘가 딸일 수 있다!! 딸 타령을 했다.
사실 그때도 난 코웃음을 쳤다.(절대!)
성별은 원래 초음파 상 16주에 알 수 있지만
요즘엔 12주에 니프티 검사를 하면
2주 뒤에 결과가 나온다.
이때쯤 거의 99% 아들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1%로 반전이 있을까?
이게 궁금해서 나 홀로 직접 병원까지 갔다.
"산모님한테 Y염색체가 있네요. 아들입니다."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었다.
한편으론 여아의 희망을 버리지 않던 남편이 떠올라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생각난 사람은 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었다.
시어머님은 아들 사랑이 극진하신 분이었다.
언제나 "우리 아들~우리 아들~"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큰 아들인데도 늘 걱정하고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성인인데도 어쩜 아이처럼 대하시는지 신기했다.
나는 우리 엄마도 자식 애정이 남다른 성격이라
매우 귀한 아들이구나 생각해서 남편에게 종종
어머니랑 통화하고 가서 밥도 먹고 와라 했다.
아 어머님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첫아들 임신해서 소중하고 애지중지 키우고
천방지축 유년기 잘 키워서
질풍노도 청소년기 보내고
지 밥벌이하는 성인까지 만들고
아들 장가보내서 며느리 손주 보고
갑자기 어머님의 인생이 슉 그려졌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그렇게 부르시는 게 이해가 갔다.
어머님이 이렇게 아기 때부터 키웠겠구나
그러니 다 큰 아들도 여전히 애 같구나
아들이 생기고 보니 나도 별로 다르지 않을 거 같다.
전혀 살갑지 않은 성격이지만
시어머니한테 좀 다정스레 잘해드려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들이야!라고 하니까 가까운 친구들은
"너 아쉽겠다."이런 말을 한다.
워낙 꾸미는 걸 좋아하고 아기자기 귀여운 걸 좋아해서 딸내미였으면 예쁘게 치장하고 키웠을 텐데
아들이라 어쩌냐...라고 한다.
나는...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한다.
딸을 키웠다면 나는 파산의 지름길로 빠졌을 거 같다.
차라리 아들이라 내심 안도했다.
남편을 좋아했던 이유는 남편의 심플함과 해맑음이
나에게 너무 편했기 때문인데 그의 직설적인 언어가
다소 당황스러우면서도 명확해서 좋았다.
눈치가 빨라서 늘 남의 기분이 읽히는 나에게
겉과 속이 같은 남편은 너무 편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혼자 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남편 성격의 아들이라면 대환영이다.
물론 딸이어도 그럴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몸이 힘들지언정 마음은 편할 거 같았다.
물론 내가 딸이기 때문에 딸이 해주는 섬세함과
생각과 표현의 차이를 알기에 일부 아쉽긴 하다.
내가 부모님한테 하는 센스를
아들한테 기대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건 아기를 만날 때 나 좋자고,
나의 노후 대비를 위한 의도는 아니었기에
내가 다른 좋은 거 하며 스스로 채워야 할거 같다.
+)딸 아들 누구의 우월함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아기가 어떤 성별이었던 정말 나는 상관없었고
아들이라 하니 기왕 아들의 좋은 점을 더 떠올리자 했을 뿐이다.(딸이었음 또 딸 장점만 찾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