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만 너무 의식하고 살다보면 나를 잃는다
봄되면 생각나는 예쁜 드라마들이 있다.
그러다 '또 오해영'의 배경에 벚꽃이 워낙 많이 나와서 재주행 하기 시작했다.(초반엔 참 재밌다.)
극중에서 남주인공 에릭이 동생이 시나리오 쓰고 PD들에게 돌리는걸 엄청나게 반대하고 구박한다.
고생만하고 경멸당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동생이 안타까워서 하고 싶은일을 못하게 하며 자기 기술을 배우라고 강요하면서 "그런거 하지 말라고 니 시나리오 쪽팔리다고!"라고 말을 하는데
거기에서 에릭 동생역 배우가 그런말을 한다.
"쪽팔린게 뭐 어때서 사는건 원래 다 쪽팔린거야!"
그러면서 사는것도 숨쉬는것도 존재자체도 원래 인간은 쪽팔린거라면서 쪽팔려도 자기는 하고 싶은일좀 하겠다고 한다.
나는 이 대사가 요즘에서야 팍 와닿았다.
나는 꽤 자존심이 쎄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나는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이 쎄다고 한다 ㅎㅎ...)
내주제에...이런 식의 과한 겸손(?)마인드가 있어서 결코 잘난척쟁이는 아닌데
자기 프라이드는 있어서 내 밑바닥이나 힘든걸 다른사람한테 오픈하는게 너무너무 싫다.
그래서 내 상황에 대해 주위에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부끄럽고 항상 일정한 나만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꽤나 노력했다. 내 이런 성격으로 주위에선 '너는 니 얘길 잘 안해'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들어봤다.
스스로 꽤 직설적인 편이라 그때그때 생각을 툭툭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속깊은 내 얘기는 안하는 그런 사람이었나보다.
어차피 안될거 높은 곳은 쳐다도 보지 말자 떨어지면 쪽팔려
그래도 체면이 있는데 심하게 하향지원은 하지말자
내가 지금 이모양 이꼴이니까 친구들은 만나지말자 너무 초라하다
나는 주위에 참 신경을 많이 써서 스스로 피곤해지는 소심소심 소시민이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주위 시선 신경하나도 안쓰고 그냥 내가 너무 좋아서
쪽팔려 죽든말든 나만 좋다고 내 기분에 충실해서 달려들어본적이 있을까?
항상 남을 신경쓰고 잘나가는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호되게 채찍질하고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자존심 같은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지켰는지 모르겠다.
물론 살면서 자존심 필요하다. 꼭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지키려고 아둥바둥 했던 것들은 꼭 필요한 자존심과는 거리가 멀고 주위 시선을 신경쓰며 체면치레나 하다 혼자 숨고 불편하게 살아온 길 같다.
조금 다른긴 하지만 최근에 지적을 들어서 속상했다.
나는 남에게도 나에게도 너무너무 차갑고 방관적인 제3자의 태도만 취한다고
나는 정말 가까운 사람한테도 내 얘기를 바닥까지 터놓지 못한다고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세상에 나 말고 그 누구도 내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데 누구도 내 문제를 나만큼 생각해주지 않는데
결국 남은 남 나는 나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는 마인드가 강했다.
내 힘든 얘기를 해봤자 불쌍해지는 것은 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 허락하지 않은 내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거나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나 또한 남들에게 그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나름 칼같이 지켜왔다.
그래도 함께 그런 얘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를 온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에게는 나눠봐야 할 얘기였다.
내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속으로 비웃거나 앞에서만 동정할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나를 일으켜 세워줄 고마운 사람도 있다.
이건 내 일이니까 굳이 할 필요없는 얘기라고 치부했지만 상대방도 그렇다고 생각했던게 아니라
단지 이런 나를 알아서 내가 나서서 내 얘기를 해줄 때까지 기다려줬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금도 남에게 너무 많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가 관계에서 어떻게 벽을 만들고 있었는지, 스스로 그걸 어떻게 깰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고
내가 자존심 세울 상대가 아닌, 벽이 필요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의 나는 쪽팔려도 해보고 싶은건 달려들어 보고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아쿵 또 안됐네 쪽팔려라 라고 나가떨어져보고도 싶다.
그게 당연한거였는데도 나는 넘어지기가 싫어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겁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멋있기만 한 사람은 없으니까 태어나서 누구나 쪽팔리게 살아가니까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