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문제일 때, 나는 죄인이 되었다

- 눈총과 침묵 속에서 무너진 인간관계

by 서니온

"○○이 어머님, ○○이가 등굣길에 친구를 때려서 그 친구 어머님께서 화가 크게 나셨어요.

○○이가 뒤에서 팔을 잡았고, 다른 아이가 배를 때렸대요.

조만간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것 같습니다."


"네? 심하게 다친 건 아니죠?

선생님, 제가 어머님 직접 찾아뵙고 사과드리고 싶은데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다친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이가 많이 놀랐어요.

제가 중간에서 중재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힘들 듯싶습니다."


늘 걱정하던 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끝내 피해 아이의 부모님 연락처도, 만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아들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항상 선생님 바로 앞자리에 앉고,

야외활동이 있을 때에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했다.

핸드폰에 담임선생님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작은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쳤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학폭위에,

그것도 가해자 학부모로 참석해야 한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그 친구를 때린 이유를 물어보았다.


"걔가 먼저 전에 기분 나쁘게 했다고!

그 얘길 했더니 ○○이가 같이 혼내주자고 한 거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분이 안 풀린 듯 씩씩거리며 화를 내었다.


'아...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갑자기 숨이 탁 막혔다.


그 후로 손쓸 방법도 없이 학교에서 연락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 채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평소 고민이 있거나 육아 상담이 필요할 때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20년 지기 절친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혼 후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나는 하루하루 삶이 고달프고 벅찼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나 학부모도 많지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휴직 후 우리 아이들과 동갑내기 아들 교육에 열성이었고 인맥도 넓었다.


'나 혼자만의 괜한 느낌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친구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사 후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에도,

내가 말을 이어가고 있는 내내 친구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울리는 카톡에만 바쁘게 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애정이 깡그리 식어버린 애인처럼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했다.


혹시 뭐 서운하게 한 게 있나 싶어 고심 끝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한참만에 '그런 거 없다'라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는 멀어져만 갔다.


학폭위 출석 통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

전부터 신청해 놓은 하루 일정 주말 캠프 날이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환불이 안 되는 터라 아들과 딸, 둘 다 예정대로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을 깨워 부랴부랴 버스 탑승 장소인 도서관 앞으로 갔다.

우리가 나타나자 먼저 나와있던 학부모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따가운 시선이 일제히 나와 아들에게 꽂혔다.


"엄마, 쟤야. 내가 때린 얘..."


철없이 무심코 툭 내뱉는 아들의 말에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모두 이해되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났지만,

가해 아이의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엄마예요.

진작에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이렇게 사과가 늦어졌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해서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교육시키겠습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피해 아이의 어머님께 고개 숙여 사과를 드렸다.

당시 그 어머님의 반응은 냉랭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캠프를 다녀온 후,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위원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혼자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주말 캠프를 떠나는 날 아침,

온몸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눈총 세례를 퍼붓던 사람들 가운데

내 20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그 친구의 난감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 친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차마 먼저 연락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 친구와의 오랜 인연은 이제 끝났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