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사, 나쁜 엄마

- 퇴근하면 난 무너져 내렸다

by 서니온

"선생님, 항상 신경 써 주시고 진심으로 ○○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있는데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가 밝게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늘 한결같이 우리 아이들 예뻐해 주시고 걱정부터 앞서던 초보 엄마 마음 헤아려

어떠한 질문에도 성의껏 답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가 '우리 선생님이야, ○○ 선생님이야.' 이렇게 말하고 '선생님 좋아, 사랑해'라고 자주 얘기해 줘요.

감사해요, 선생님. ○○의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선생님."


어린이집에서는 좋은 교사인 듯 보였지만, 정작 집에서는 나쁜 엄마였다.

그래서 난 늘 괴로웠고, 자책했고, 진심으로 웃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영어학원에서 1년 정도 일했다.

학원 일은 적성에 맞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수업이 저녁 9시에 끝났기 때문에 육아와 병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학원을 그만두고 친구 소개로 작은 공장에서 회계와 고객상담 업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장은 너무 멀었다.

서툰 운전 실력 탓에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 힘이 쏙 빠졌다.


월말 마감으로 일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발만 동동 애가 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내 인생처럼, 안개 자욱한 어둠 속에서

내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헤매며 아찔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제일 늦게까지 덩그러니 남아 있을 남매를 떠올리면 마음이 짠했다.

두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까지 챙겨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친정아버님께도 죄송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다시 일을 시작할 땐 가볍게 생각했다.

이혼이 뭐 별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싱글맘이 되고 나서야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건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는 걸.


이혼은 현대판 주홍 글씨와 같았다.

가까스로 지나온 과거가 낙인이 되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었다.


결국 11개월 만에 공장을 나왔다.

참고 버텨낸 보람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소문에 휘말리는 당사자가 되어버렸다.


사실과 다른 말들에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마저 믿어주지 않는 야속한 현실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그렇게 내 핸드폰에서 오랫동안 익숙했던 이름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문득 돌아가신 친정엄마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잘 살아야지 친구도 있는 거더라.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학교 때나 친구지,

나이 들면서 형편 따라 소원해지기 마련이야."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얻은 건 단지 상처만은 아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 뒤로는 말과 행동이 모두 조심스러웠다.

이혼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굳이 밝힐 일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일터를 찾아야 했다.

되도록 불필요한 오해를 살 일이 없는 곳이면 더 좋았다.


이혼 전 틈틈이 공부하여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경단녀로 재취업하기에 유용할 듯싶었다.


그건 신의 한 수였다.

호텔리어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인생 2막이 펼쳐졌다.


역시 어디나 돈 벌긴 힘들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매번 보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이들은 귀엽고 예쁘기만 했다.

물론 힘든 아이들도 있었지만 얼마든지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었다.


학부모님의 따뜻한 응원 덕분에 기운이 났다.

아이의 기질에 맞춰 상담도 정성껏 도왔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남의 집 아이들에게 남김없이 정성을 쏟으니

집에 돌아오면 흘러내릴 듯 녹초가 되었다.


제대로 숨 돌릴 새도 없이 아들과의 전쟁이 이어졌고,

난 미처 화를 추스르지 못하고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들은 더욱더 막강한 화력으로

온 집안을 초토화시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순식간에 난 허연 재로 변해버렸다.

한 줌의 가루가 되었음에도 내가 편히 쉴 곳은 없었다.


수백 번의 다짐과 달리,

난 정말 나쁜 엄마였고

한없이 미성숙한 인간이었다.